곽상도 뇌물 무죄 … 암초 만난 대장동 수사

2023-02-09 11:17:08 게재

재판부 "의심은 가지만 증명 안돼"

정영학 녹취록 기댄 검찰 '의문의 1패'

이재명 수사에 영향 줄 수도

곽상도 전 국회의원이 아들의 퇴직금 25억원(세후)을 받은 뇌물 혐의에 대해 1심 재판에서 무죄 판단을 받았다. 곽 전 의원은 이른바 '50억 클럽'으로 지목돼 유일하게 기소됐다. 의혹이 제기된 '50억 클럽' 관계자들의 수사는 물론 기소를 하더라도 유죄 판단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8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2부(이준철 부장판사)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과 알선수재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곽 전 의원에게 무죄로 판단했다. 다만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벌금 800만원을 선고하고, 5000만원 추징을 명령했다.

선고 공판 마친 곽상도-남욱 | 곽상도 전 국회의원(오른쪽)이 8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을 마친 후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은 법정 나서는 남 욱 변호사. 사진 연합뉴스


이에 따라 뇌물 제공 혐의를 받은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인 김만배씨도 무죄 판단을, 곽 전 의원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한 남 욱 변호사는 400만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퇴직금 이례적으로 과다" = 곽 전 의원은 대장동 개발사업 과정에서 하나은행이 컨소시엄을 이탈하지 않도록 알선한 대가에 대해 아들의 퇴직금 명목으로 25억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해 2월 재판에 넘겨졌다.

곽 전 의원과 김씨는 화천대유에 근무한 곽 전 의원 아들의 업무실적이 탁월하고 건강문제로 인한 보상이었다고 주장해왔다.

재판부는 "곽 전 의원 아들의 나이 경력 건강상태 업무 등을 비춰 (퇴직금은) 사회통념상 이례적으로 과다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하나은행의 컨소시엄 이탈로 대장동 개발사업 위기 상황이 존재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면서 "김씨가 컨소시엄 유지를 위해 곽 전 의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거나 곽 전 의원이 하나금융지주를 상대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공소사실 중 핵심 내용인 '영향력 행사'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해 뇌물 혐의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또 "김씨가 '곽 전 의원 아들을 통해 곽 전 의원에게 50억원을 줘야 한다'는 말을 해왔고, 구체적 지급 방안에 관해 논의한 사실은 인정된다"면서도 "김씨 (발언이) 신빙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대장동 사건의 '스모킹 건'으로 거론된 회계사 정영학씨의 녹취록에 김씨 발언이 상당수 공개됐는데 진위 여부에 대한 문제가 지적돼 왔다.

재판부는 "곽 전 의원이 받은 돈은 뇌물을 수수한 것으로 의심 드는 사정이 존재한다"면서도 "독립적 생계를 유지한 아들의 성과급이 곽 전 의원을 위해 사용됐다고 볼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의심이 들지만 유죄로 판단할 만큼 혐의가 입증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검찰 "항소 계획" = 검찰은 "객관적인 증거 등에 의해 확인된 사실관계에 비춰 재판부의 무죄 판단에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판결문을 상세히 분석한 후 적극 항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곽 전 의원은 이날 재판 직후 "없는 걸 만들어서 이렇게 치졸하게 보복하는데, 정치 보복도 어느 정도껏 해야하지 않겠나"라며 "무죄가 나오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곽 전 의원은 정치자금법 위반에 대해서 항소하겠다는 입장이다.

곽 전 의원 외에 '50억 클럽'에 거론된 인물 중 직간접적으로 돈 거래가 드러난 것은 권순일 전 대법관과 박영수 전 특별검사, 홍성근 머니투데이 미디어그룹 회장 등이 있다. 권 전 대법관은 퇴임 후 고문 자격으로 급여를 받았고, 박 전 특검은 곽 전 의원과 마찬가지로 화천대유 직원으로 근무한 딸이 대장동 아파트 한채를 분양받았다. 검찰은 홍 회장도 김씨와 적지 않은 돈 거래를 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들의 혐의도 입증되기 쉽지 않다. 대가성과 관련한 의심은 대장동 일당의 진술에 기반을 둔 것인데, 대부분이 김씨의 발언이다. 당사자들은 부정한 돈 거래가 아니라고 주장해 왔고, 검찰에서는 직접적인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아직까지 기소를 못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김씨 자금 흐름을 계속 들여다보고 있다"며 "50억 클럽과 무관치 않다"고 말했다.

◆수사·재판 모두 비판 = 검찰의 입증이 부족했다는 비판도 있지만 1심 재판부의 무죄 판단에 대한 문제제기도 상당하다.

검찰 안팎에서는 이전 수사팀의 부실수사를 원망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정영학 녹취록 대화를 가지고 수사를 벌여온 검찰로서는 대장동 사건 몸통으로 지목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혐의 입증에도 다양한 증거를 제시할 필요가 생겼다.

재판부는 녹취록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지만, 김씨가 곽 전 의원과 그 아들에 대한 말에는 신빙성을 의심했다. 그동안 대장동 사업을 벌인 김씨는 법정에서 자신의 발언이 사실이 아니라는 취지의 답변을 이어온 바 있다.

대개 공동정범을 구성하는 범죄 요건에서 녹취록이나 정황 증거는 폭 넓게 인정되는 추세다. 하지만 이날 판결은 크 차이를 보인다. 특히 국회의원 자녀가 독립생계를 유지한다는 이유로 이례적인 금전에 대해 무죄 판단을 해서는 안된다는 지적도 있다.

김한규 전 서울변호사회 회장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아버지가 곽상도가 아닌 경우에도 무려 50억원을 퇴직금으로 줬을까. 일차적 책임은 혐의를 충분히 증명 못한 검사에게 있지만, 독립생계인 아들에게 돈을 준 경우는 뇌물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법원 판단도 이해가지 않는다"며 "이 사건이 뇌물죄로 처벌받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에 커다란 후유증으로 남을 것"이라고 수사와 재판을 모두 꼬집었다.

오승완 안성열 기자 osw@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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