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극복 복지대책
아프면 쉴 수 있는 고용-소득보장 시스템 만들자
상병수당 즉각 시행, 유급병가 제도화 필요 … "코로나19 재난 경험, 복지체계 전환 요구"
코로나19 대유행 경험은 국민의 일상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비대면-거리두기-다중이용시설 사용법 등 생활양식과 재택-유연근무, 비대면회의 등 근무방식도 다양화졌다. 하지만 감염 대응으로 이뤄진 사회적 거리두기-격리-출입·이용 제한 조치 등은 기존의 일자리-소득-사회적 돌봄에 균열을 일으켰다.
지난 3년 동안 정부와 지자체는 국민의 소득감소와 돌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나름의 대책을 추진했다. 일부 성과를 냈다. 하지만 중소 상공인-자영업자, 비정규직 노동자 등은 극심한 소득감소 타격을 받았다. 요양병원-시설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등의 돌봄 기능은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못했다. 소득이 적거나 1인가구일수록 충격이 컸다. 재난 시기일수록 정치·경제·사회적 취약계층이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이번 팬데믹이 끝이 아니라고 한다. 최근 20년 동안 인류는 거의 5년 주기로 팬데믹을 경험했으며 이번 코로나19는 새로운 시대 진입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재난에도 사각지대가 없이 복지정책이 정상 작동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코로나19 시기 추진된 복지대응을 살펴보고 전문가들의 대안 제시를 공유한다.
5월 세계보건기구 등이 '코로나19 비상사태' 해제 등을 논의할 예정인 가운데 재난시기 작동한 국내 복지시스템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진석 서울여자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4월 4일 발행한 보건복지포럼에 게재한 '코로나19시대의 도래와 한국 복지국가의 대응' 글에서 "코로나19는 유행처럼 왔다가 지나가는 사건이나 일회성 경험이 아니고 앞으로 우리 인류가 반복해서 경험하게 될 새로운 미래의 시작점"이라며 "일자리와 소득, 돌봄의 공백 발생에 대응하기 위한 해법을 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교수에 따르면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 시기에는 소득 상실과 감소 등에 대응할 수 있는 고용-소득보장체계가 갖춰져야 한다. 사회적 돌봄을 담당하는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가 정상 운영되지 않아 발생하는 사적 돌봄 부담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공적 인프라도 갖춰야 한다.
재난시기에는 소득활동과 돌봄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공적 차원에서 의료대응과 더불어 효율적인 복지인프라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완전한 새로운 코로나19시대 한국 복지국가의 해법은 역설적이게도 소득의 일시적이거나 급격한 변동에 대응하기 위한 '전국민 고용보험' 혹은 '소득보험' 그리고 '상병수당과 유급병가 즉각 실시' 같은 오래된 과제"라고 밝혔다.
◆사각지대 없는 소득보장제도 갖춰야 = 재난시기 소득보장을 위한 단기적이고 일시적인 지원책이 아니라 사각지대가 없는 소득보장제도를 확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태환 보사연 빈곤·불평등연구실장과 이주미 전문위원은 '코로나19 범유행 이후 소득보장 영역 대응과 평가'보고서에서 "코로나19 시기 여러 소득보장제도는 각종 기준을 완화 혹은 확대하며 위기가구를 보호하고 위기 극복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면서도 "여전히 차상위나 새로운 취약계층 등에 대한 지원이 미비했다"고 밝혔다.
김 연구실장 등에 따르면 코로나19는 오랜 기간 소득보장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근로빈곤층, 영세 소상공인 등에게 더 큰 위기를 가져다줬다.
코로나19 발생 후 정부는 여러 소득보장 조치를 했다. 2020년 7월 한국판 종합뉴딜 계획 발표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부양의무자기준을 전면 폐지했다. 이로써 2019년 12월 기초생활 수급자가 188만명에서 2020년 12월 213만명, 2021년 12월 235만명으로 늘어났다. 기준중위소득을 개편해 수급자와 수급가구에 최저생활 보장이 강화됐다. 2015년 7월에는 기준중위소득 43%만이 주거급여를 받았지만 2023년 47%로 늘었다. 현 정부는 50%까지 올릴 계획이다.
하지만 여전히 지원이 필요한데도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생활고를 겪는 가구, 고립은둔자, 이주민, 북한이탈주민 등 새로운 취약계층에 대한 대응에도 한계가 있다.
코로나19 위기가구를 지원하기 위해 정부는 한시적으로 긴급복지지원 조건을 완화하고 지원 대상을 확대했다. '위기가구 긴급생계지원제도'도 시행했다. 하지만 취약계층은 소득 감소에 대한 증빙에 어려움이 있고 지원급이 3∼4개월 후에 지급되는 등 한계가 있었다.
무엇보다 기준중위소득 30% 초과 75% 이하 위기가구에 대한 긴급복지지원이 필요하다.
정부는 노인대상 기초연금을 단계적으로 조정해 월 30만원을 2020년 4월 40%에서 2021년 70%로 지급 확대했다. 현 정부는 40만원으로 올릴 계획이다.
근로장려금은 2020년 약 4조4300억원 지급됐다. 하지만 근로장려금 급여가 150만∼300만원 정도고 일시적인 위기극복만 가능한 수준으로 장기간 재난시기에는 효과가 제한적이다.
◆공적 돌봄 인프라 확충 필요 = 코로나19 확산에 대응해 정부는 긴급돌봄과 아동돌봄쿠폰 등 한시적 대응조치로 돌봄 공백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일상에서 돌봄의 보장성을 높이는 제도 개선은 더디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형용 동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코로나19 범유행 이후 돌봄서비스 영역 대응과 평가'보고서에서 "정부는 재난 상황에서 돌봄을 유지하고자 사회서비스 긴급 지침과 개선 방안을 마련하는 등 적극 대응에 나섰지만 지침과 방안은 제도 개혁보다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에서 시설운영이라는 한시적 성격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사회적 거리두기는 가족부양에 필수적인 돌봄서비스를 중단시켰다. 어린이집 학교 방과후교실 등 보육과 교육기관의 갑작스러운 휴교-휴업으로 돌봄 공백이 발생했고 많은 여성들이 돌봄때문에 노동시장에서 이탈했다.
육아정책연구소 조사 결과 낮시간 자녀를 돌봄 사람을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가구는 2020년 3월 36.2%, 7월 37.5%로 나타났다. 맞벌이 여성은 하루 평균 1시간 40분 이상, 전업주부는 하루 3시간 이상 더 돌봄에 헌신했다. 코로나19 이후 일·가정양립 어려움으로 퇴직한 여성이 2020년 21.3%에 이르렀다.
현 돌봄시장의 실패로 공공돌봄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대구시 사회서비스원의 긴급돌봄서비스로 2021년까지 사회복지시설 의료기관 재가돌봄 등 615곳에서 2만2761건, 서울시 사회서비스원의 긴급돌봄SOS서비스로 2021년까지 896일 동안 1만8418시간을 제공했다. 하지만 긴급틈새돌봄은 전체 돌봄 수요를 주도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2020년 시행된 초기 긴급돌봄에는 전국 초등생의 0.9∼2.9%가 참여했다. 6월 이후에는 6.7∼6.9% 약 18만명 정도 참여했다. 교육 정상화에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된다.
지역아동센터와 같은 아동이용시설은 코로나19로 인한 돌봄 위기에서 피난처 역할을 했다. 이용자 수가 증가했다. 하지만 별다른 운영상 보완이나 인건비 지원이 이뤄지지 않았다.
온종일돌봄에서 학교-마을의 연계와 마을돌봄 인프라 확충이라는 방향은 사라졌고 학교돌봄 시간을 늘리는 늘봄학교정책으로 선회했다.
장애인활동지원은 긴급돌봄을 시범사업으로 유지하고 있으나 탈시설을 위한 투자는 미흡한 상황이다. 코로나19 시기에 적용한 특별급여와 가족활동지원급여,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 노인수급자의 지원시간 감소에 대응한 산정특례 등 한시적 지원제도를 어떻게 안정적으로 제도화할 것인지도 과제로 남았다. 코로나19 시기에 적용한 한시적 급여들은 중증장애인들에게는 일상적인 욕구였다.
김 교수는 "코로나19는 분절된 돌봄사업별 통합체계 구축의 중요성을 보여줬다"며 "학교돌봄과 마을돌봄은 제각기 학년, 소득기준, 시설, 부처, 제공 주체별로 따로따로 진행되고 각 주체의 이해에 따른 요구에 의해 혼란이 가중됐다"고 밝혔다.
이어 김 교수는 "돌봄서비스 제도 개선에서는 국가와 지자체의 역할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 돌봄의 보장성 강화와 산업 진흥 사이에서 좌충우돌하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상병수당, 소득보장 기능 갖춰야 = 우리나라는 세계 흐름과 달리 법정 유급병가와 공적 상병수당제도가 아직 없다.
상병수당은 업무외 상병에 대한 충분한 치료와 회복기간을 확보하게 함으로써 취업자의 건강권을 보장한다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몸이 아파도 출근해 일할 경우 개인의 건강 악화는 물론 작업장 안전사고로 이어지거나 업무 효율 저하로 노동생산성 저하에 영향을 준다.
코로나19 유행으로 아프면 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사회분위기 속에 보건복지부는 2022년 7월부터 6개 지역에서 상병수당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다. '아프면 쉴 권리'를 뒷받침하는 상병수당 등을 신속히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명희 국립중앙의료원 정책통계지원센터장은 '코로나19 범유행 이후 상병수당 도입 경과와 함의' 보고서에서 "공무원 교원은 복무규정을 통해, 기업은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으로 업무외 상병에 대한 병가나 휴직을 받을 수 있지만 불안정 영세사업자·노동자나 자영업자들은 보호를 받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 센터장은 상병수당 신속한 도입을 위해 제도 설계 초기단계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점을 제시했다. 먼저 상병수당 도입과 더불어 법정 유급병가제도를 확립해야 한다. 또 노동자의 병가를 빌미로 사업주가 불리한 처우나 해고를 하지 못하도록 법적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
상병수당의 소득보장 수준도 높여야 한다. 현행 2단계 시범사업은 적용대상을 저소득 취업자로 한정함으로써 보편성이라는 중대 원칙을 훼손했다.
시범사업에 적용한 급여수준도 국제노동기구가 권고한 하위기준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최저임금 60% 수준의 정액 급여다. 최대 보장기간도 120일에 불과하다.
만약 낮은 급여수준이 유지된다면 고용이 안정된 노동자들은 사업장의 복지제도나 민간의료보험에 의존할 여지가 생겨 상병수당제도가 저소득층만을 위한 제도로 전락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센터장은 "재원조달이 건강보험재정을 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상병수당 재정에 대한 국고지원, 저소득 취업자를 위한 보험료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