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극복 의료대책
"공공의료 강화-민간자원 아우르는 매뉴얼 갖춰야"
코로나 환자 급격한 증가 때마다 '병상-인력 부족' 반복 … "위중-응급환자 우선 진료, 법적 강제 필요"
4일 오후 세계보건기구가 '코로나19 비상사태' 해제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우리나라 방역당국도 이달에 방역단계를 완화 조정할 것으로 전망된다. 3년 4개월에 걸친 코로나19 팬데믹 경험은 뼈아프다. 4월 16일 기준 전세계 7억6366만5202명이 코로나19에 확진됐고 691만2080명이 사망했다. 국내는 4월 28일 0시 기준 확진자 3114만2861명, 사망자 3만4471명으로 나타났다.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하는데 공중보건전문가들은 또 다른 세계적 유행 가능성이 높은 감염병 출현을 예견한다. 공중보건 전문가들은 다가올 다른 팬데믹에 대비해 의료대응력을 높여야 한다고 일치된 주장을 한다.
코로나19 시기 우리나라는 인구 1000만명 이상 고소득 주요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사망자가 발생했다. '우수한 성적표'라 볼 수도 있지만 들여다보면 3만5000여명에 이르는 사망자가 생기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반성이 나온다. 많은 환자들이 적절한 의료조치를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는 분석도 있다. 부족한 공공의료를 위주로 한 의료대응조치가 낳은 결과이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다 병상수를 자랑하는 국내 민간의료기관들이 코로나 의료대응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행태와 방역당국의 늦은 대응 등이 한몫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에게 다른 감염병 대유행에 대응할 수 있는 의료대책을 물었다.
5월 중 국내 코로나19 방역대응 단계 조정 작업이 진행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코로나19 시기 의료대응조치를 되짚어보고 머지 않은 시기 발생할 다음 팬데믹을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들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공공의료를 강화하고 민간자원을 아우르는 의료대응 매뉴얼을 만들고 시스템을 미리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 윤 서울대의대 교수는 1일 "공공-민간병원을 아울러 시도 단위로 감염병 환자를 책임지고 진료하는 감염병 진료체계를 갖춰야 한다"며 "위중증-응급환자를 우선 진료하도록 병상과 인력을 배치해야 하며 이를 법적으로 뒷받침하고 충분한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주경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장기간에 걸친 코로나19 감염병 환자 대응이 공공병원 위주로 진행되면서 공공병원 의료인력이 소진(burnout)되었고 팬데믹을 기점으로 경영수지가 악화되었다"며 "다음 팬데믹을 대비하려면 보건소에서 상급종합병원에 이르는 각급 보건의료기관의 인력 등 자원동원 방식을 공중보건위기 단계별로 보다 구체적인 매뉴얼화가 필요하며 비상대응 체계로의 신속한 전환을 위해 교육ㆍ훈련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적은 공공병원 위주 의료대응 한계 뚜렷 = 코로나19 환자를 위한 의료대응은 주로 공공병원이 맡았다. 우리나라 의료대응의 성과를 말한다면 그 공은 공공병원이 차지할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의료대응의 주역인 국내 공공병원의 대응력은 그 한계가 뚜렷했다.
주영수 국립중앙의료원 원장은 지난해 보건복지포럼 9월호에서 "전문적인 중환자 진료능력(인력-시설-장비)이 부족한 대부분의 공공병원은 자신들의 기관을 격리시설로 제공한 채 하염없이 소진됐다"고 밝혔다.
'2020년 한국 민주주의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공공병원 병상은 전체 병원의 9.6% 수준이고 병원 수도 5.6%에 불과하다. OECD) 회원국 공공병원 평균 병상 73.1%의 1/7 수준이다. 공공병원의 비중이 적은 미국 25%, 일본 30%에 비해서도 매우 적다.
또 전국을 70개 진료권으로 나눴을 때 응급진료가 가능한 35개 지방의료원이나 6개 적십자병원같은 공공병원이 하나도 없는 진료권이 많다.
공공병원 부족 문제는 재난시기 민간병원 동원의 어려움을 낳았다.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할 때마다 공공병원만으로 대응하기 어려웠고 운영할 수 있는 병상과 인력 부족은 사망자 증가의 배경이 됐다.
전국적인 코로나19 의료대응에 사용할 의료자원 부족사태는 국립대병원과 민간병원의 일반 병상과 중환자실을 사용해야 해결될 문제였다. 하지만 정부의 협조 요청에도 공공병원 중심으로 거점병원을 만들라고 요구하면서 사보타지를 행하는 등 정부의 준비 부족을 극복하는 길을 더욱 악화시키곤 했다.
정부는 뒤늦게 42개 상급종합병원 병상 1%에 해당하는 중환자병상을 동원하는 행정명령을 내렸으나 일반병상은 동원하지 않았고 병상 전환이 지체되면서 환자의 초과사망은 더해졌다.
주 원장은 "대다수 민간병원들은 팬데믹 상황에서조차 최소한의 병상 자원만을 내놓은 채 염치없는 평판과 과도한 수익을 챙겼다"며 "지금이 공공병원 기능에 자체 완결적 진료 능력을 장착할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고 밝혔다.
◆OECD 최다 병상수에도 코로나환자 병상은 부족 = 코로나 환자의 증가 시기마다 나타난 병상 부족은 실제 병상이 없어서가 아니라 병상을 체계적으로 동원할 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 윤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 병원의 급성기 병상 수는 약 32만개에 이른다. 인구 1000명당 6,4병상으로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많다. 병상수는 OECD 평균의 2.6배다.
코로나19 1차 유행지였던 대구·경북지역은 약 4만개의 병상이 있었지만 2월 당시 확진자 2000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입원하지 못했다. 이들 중 일부는 병실이 나오길 기다리다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사망했다.
동원된 병상도 중환자 병상이 부족해 집중 치료를 받아야 하는 코로나19 중증환자 가운데 절반은 일반병동에서 치료받았다. 일반병실에서 치료받은 중증환자 사망률은 중환자실에서 치료받은 환자에 비해 25% 더 높았다. 당시 코로나19 사망환자 중 인공호흡기 치료를 받은 환자는 약 30%에 불과했다.
같은 시간 대학병원 중환자실은 비응급환자로 채워져 있었다. 비응급환자 진료를 1주일만 연기해도 전체 병상의 약 40%에 해당하는 약 1000개 이상의 중환자실 병상을 중증 코로나19 환자를 위해 쓸 수 있었다.
입원치료를 받아야 할 중증도가 중간 수준이 환자 1/3은 중환자 치료를 제대로 하기 어려운 작은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증상이 급격히 나빠져 응급대처를 하지 못하는 작은 병원에서 진료받은 환자는 종합병원에서 치료받은 환자보다 사망률이 15% 높았다.
반면 입원할 필요가 없어 생활치료센터로 가면 되는 환자 3000명이 실제 병원에 입원했다. 이들 중 40%는 중증환자가 치료받아야 할 병상을 차지했다.
◆방역 성과 속 의료대응은 부진 = 이런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의 조치는 뒤늦게 이뤄졌다. '2021 한국 민주주의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일일 신규 확진자가 대체로 3000명이 넘어서면 병상부족 현상이 나타났다.
미국 일본 프랑스 독일 등에서는 코로나 유행기 민간병원들을 공공병원과 동일하게 동원했다. 2020년 초기 1차 대유행 시기 의료붕괴가 일어난 것을 제외하고 1일 신규환자가 5만∼10만명이 되어도 병상부족 현상을 반복하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2021년 가을 겨울 4차유행시기 1일 신규 확진자 수가 다른 나라에 비해 10∼20배 적음에도 불구하고 치명률은 4∼5배 많았다. 이는 충분한 병상과 의료인력 확보 없이 시행한 10월 단계적 일상회복 조치의 결과이기도 했다.
우석균 '건강권실현을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운영위원장에 따르면 위드코로나 조치 이후 병상부족 상황은 더 크게 벌어졌다. 대형병원의 3% 병상만으로는 늘어난 환자를 감당할 수 없었다. 정부는 100병상 이상의 중소병원을 동원했으나 중환자를 진료하기에는 적절치 못한 치료병상이 다수였다.
우 위원장은 "국민들은 대다수 의사들이 코로나 진료에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대형병원 의사 대부분은 참여하지 않거나 최소한으로 참여했다. 중소병원이나 개원의도 마찬가지다. 민간대형병원에서는 상당수 코로나 진료는 감염내과나 호흡기내과 의사들만의 몫이였다"며 밝혔다.
이어 우 위원장은 "전체적으로 공공의료의 절대적 부족 그 와중에 민간병원의 공공성 부재 등이 코로나 의료대응에 심각한 장애를 줬다"며 "지난 정부는 부족했지만 공공병원을 늘리는 정책을 폈지만 이번 정부는 공공병원 구조조정이나 민간병원을 더욱 상업화하는 정책을 내세워 매우 우려된다"고 말했다.
◆지방소멸 대비 공공의료 인프라 확충도 = 최근 이태원 참사 때도 재난대응의료체계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상황이 되풀이됐다. 참사 현장에 가장 먼저 나타난 재난대응의료팀은 서울대병원 팀이었다. 최초로 중환자를 입원시킨 병원은 국립의료원이었다. 경기 인천지역까지 환자들이 이송됐으나 정작 서울 빅5병원은 서울대병원을 제외하고 환자가 1명도 이송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지 않았는데 국가중앙의료원인 국립의료원 신축 예산이 삭감됐다. 의료원 직원들은 의사까지 1인시위를 했다.
우 위원장은 "공공병원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고 민간병원의 공공성을 강제할 법적 제도덕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공공의료 인프라를 확충해야 할 또 다른 이유는 지방소멸 현상이 지역 의료인프라 부실로 인해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김주경 입법조사관에 따르면 2022년 10월 기준 인구 44.8%가 수도권에, 6대 광역시까지 합치면 69.6% 인구가 집중됨으로써 나타나는 지방소멸 위기는 지역 의료인프라의 부실의 원인이자 결과이다. 2022년 응급의료분야 의료취약지는 98개 시·군·구이다.
지역 내 필수의료 미충족은 비수도권 지역의 인구 유출과 고령화를 촉진해 지역소멸 우려로 이어진다. 악순환을 끊기 위해 지방의료원·지역보건소 기능을 강화해 주민 생명 안전과 직결된 양질의 필수의료서비스가 지역 안에서 충족되도록 해야 한다.
김 입법조사관은 "코로나19 시기에 소진된 지방 공공병원의 의료인력을 확충하기 위한 정부와 지자체의 노력이 시급하다"며 "의료인력 유치에 파격적인 인센티브가 마련돼야 하며 지방의료원 신설·운영과 고가 장비 도입 등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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