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박돌봄' 간병살인으로 이어진다

2023-10-06 12:08:58 게재

동반자살 시도 후 부친 살해·유기 … 유사 사건 잇달아

지난해 6월, 20대 남성이 아버지를 살해한 뒤 냉장고에 시신을 보관하고 있다가 검거됐다. 숨진 남성(부친)은 60대, 아들은 20대였다. 건물 관리인이 이사준비를 하던 아들을 도와주다 냉장고에서 부친 시신을 발견하면서 사건이 알려졌다.

SBS '궁금한 이야기 Y'가 방영한 서산 냉장고 시신 유기사건 장면. A씨가 살던 원룸 앞에 냉장고가 놓여져 있다. 사진 방송 캡쳐


부인과 이혼한 A씨 부친은 2015년 말부터 당뇨병을 앓아왔다. 가족은 아들 A씨가 유일했다. 서산에 자리잡을 때까지만 해도 상속받은 재산이 좀 있었으나 이내 바닥을 보였다. 2019년부터는 A씨 수입이 유일한 소득원이었다. 병이 악화되더니 2021년 치매까지 겹쳤다. 부친 증상이 악화되자 A씨는 간병을 위해 다니던 회사도 그만 뒀다. 2022년이 되자 부친은 혼자서 음식을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나빠졌다.

상태가 악화됐지만 어느 누구도 A씨와 부친의 어려움을 알고 도와주지 않았다. 서산으로 오면서 친척들과 연락은 모두 끊었다.

아들은 혼자 상황을 감당할 수 없었다. 경제적 상황도 어려운데 홀로 간병을 해야 했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2018년 2021년 2022년 모두 세차례나 부친과 동반자살을 시도했다. 감정 조절을 하지 못할 때는 부친을 폭행하기도 했다.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이 2022년 4월부터 세차례나 A씨 집을 방문했다. '복지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을 돕기 위해 전수조사에 나선 상황이었다. 공무원이 복지서비스를 받을 것을 권했지만 A씨는 이를 거부했다. 이미 동반자살을 결심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2022년 5월 A씨는 '아버지가 스스로 죽기를 바라고 있고 경제적으로 힘드니 사망하도록 내버려 둬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숨지기 일주일전부터 음식을 제공하지 않았고 당뇨병 약도 못 먹게 했다. 자신의 손으로 아버지 목을 조르기도 했다.

하루는 부친이 침대에 소변을 보자A씨는 부친을 씻기기 위해 화장실로 옮겨갔다. 부친이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자 A씨도 모든 생각을 내려놨다. 그는 샤워기로 뜨거운 물을 부친에게 뿌렸고, 부친은 화상과 당뇨 합병증 등으로 숨졌다. 4일쯤 지났을까. A씨는 부친의 시신을 냉장고 안으로 넣었다.

이 사건은 전형적인 간병살인 요건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경제적 상황 악화, 장기간 주변의 도움 없는 '독박간병' 등이다. 여기에 A씨는 지적장애 증상까지 있었다. 결국 1심 재판부는 징역 9년이라는 중형을 선고했고, 이 형량은 상급심에서 유지됐다.

2020년 5월 대구에서 벌어진 사건도 유사하다. 50대 아들 B씨는 조울증 등 정신병을 앓고 있었다. 80대 모친은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었다. 아들 역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지만 형제들은 분가했고 미혼인 B씨가 홀로 모친을 모셨다.

B씨의 병은 40대 들어 호전되는가 했더니 50대 들어 경증치매 진단까지 받았다. 하루는 모친이 돈이 없어졌다며 B씨를 나무랬고, B씨는 분에 못이겨 모친을 살해했다.

경찰이 B씨 검거에 나서자 그는 도주했고 이 과정에서 교통사고를 내기도 했다. 범행 직후 검거된 B씨의 상태는 심각했다. 경찰과 검찰 조사에서 환청 증상을 호소했고 발작과 괴성이 이어졌다. 구치소에서 난동을 벌인 일로 추가기소 되기도 했다.

1심 재판부는 "치매노인인 피해자를 홀로 돌보면서 상당한 스트레스가 누적됐고, 코로나 영향으로 모친을 시설에 보내지 못하면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심했을 것"이라며"패륜적 범행은 비난 받아야 하나 참작할 사정이 있다"고 판단했다.

1심은 징역 12년을 선고하고, 5년간 보호관찰을 명령했다. 검찰은 B씨가 정상적인 수감생활을 할 수 없자 치료감호를 청구했고, 2심 재판부는 1심 형량을 유지하면서 치료감호 청구를 받아들였다.

현직 판사는 "간병살인으로 불릴 사건 대부분은 형제 등 가족들의 도움 없이 나홀로 간병을 하다가 스트레스를 못 이겨 패륜범죄로 이어진 경우가 상당하다"며 "수년간 간병을 해온 피고인들 사정을 이해하지만 양형에 참작될 뿐 유무죄 판단에 고려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창간 30주년 기획특집] 건강한 '노후 돌봄'을 위하여" 연재기사]

오승완 김선일 기자 osw@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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