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건강한 '노인 돌봄'을 위하여 | 3부-노인돌봄 선진국 일본 나고야 현지 취재

80대 치매 증세 할머니와 70대 건강한 노인의 공존

2023-10-11 11:05:32 게재

"산책과 한국드라마, 친구가 있어 외롭지 않다"

지역센터 케어매니저·헬퍼 연계 '원스톱서비스'

올해 81세인 시모가모 야스코씨는 나고야시 나카구 주택가에 있는 10층 규모 시영주택 2층 임대주택에서 홀로 살고 있다.

시모가모 야스코(81·사진 오른쪽)씨는 4년여 전부터 치매 증상을 보이고 있다. 나고야시는 시모가모씨를 요개호자로 인정해 각종 생활지원을 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시모가모씨 자택을 방문한 돌봄 인력 모리 준코(76)씨도 70대 노인이다. 초고령화사회 일본의 현실을 반영한다. 사진 백만호 기자


시모가모씨는 일본 개호보험제도에 따라 국가와 사회적 돌봄이 필요한 '요개호' 1단계 대상이다. 일본에서 '인지증'이라고 부르는 치매 초기 증세로 각종 돌봄 및 예방서비스를 받을 자격을 인정받았다. 매일 한명씩 일주일에 5일간 한국의 요양보호사와 비슷한 일을 하는 일본에서는 '헤루파'(헬퍼)라고 하는 돌봄인력이 일상생활을 보조한다.

기자가 할머니집을 방문한 지난달 27일 정오, 백발의 두 노인이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있었다. 할머니와 요양보호사 모리 준코씨다. 그녀도 이미 올해 76세의 노인이다. 2년 넘게 매주 수요일 정오 무렵 방문해 1시간여 가량 일상적인 생활을 돕고 있다. 주로 식료품 등의 물건을 구입하는 일이다. 모리씨는 "집에 오면 가장 먼저 냉장고를 열어서 소비기한이 지난 우유 등은 없는지 살펴본다"고 말했다.

이런 방식으로 주말을 빼고 매일 조리와 시장보기 청소 세탁을 담당하는 사람이 돌아가면서 일상생활을 돕는다. 자신의 집에서 방문서비스를 받는 고령자의 기초적 '생활지원' 단계다. 목욕과 탈·착의 배설 등의 도움을 받는 '신체개호' 대상과는 다르다.

당초 기자와 인터뷰 하기로 했던 같은 건물에 거주하는 70대 남성은 '요개호' 3단계로 휠체어에 의지해 도움을 받는 신체개호에 해당한다. 이 남성은 전날 갑자기 발열이 심해 병원에 입원하면서 만남이 불발됐다.

이처럼 일본 노인 돌봄의 핵심은 최대한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서 적은 비용으로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중점을 둬 왔다. 몸과 정신이 불편한 고령자가 자신의 집에서 의료와 돌봄, 예방서비스까지 원스톱으로 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일본은 법적으로 기초지자체가 '지역포괄케어센터'를 통해 통합서비스를 담당한다. 나고야시의 경우 16개 구(區)에 29개의 '이키이키(활기찬)지원센터'를 두고 있다.

원스톱서비스의 핵심 기능을 담당하는 인력이 이른바 '케어매니저'라고 불리는 개호지원전문원이다. 보통 30~40명 가량의 고령자를 담당하면서 현장에서 직접 서비스하는 돌봄인력과 유기적인 소통망을 유지하고, 긴급시에는 병원이나 요양시설과 연계해 대응책을 모색하기도 한다.

이날 할머니집을 직접 찾은 나고야시 나카구 개호보험사업소 스즈키 준코 전문원은 "현장에서 헬퍼가 이런저런 상황을 전해주면 내가 직접 자택을 방문해 상황을 점검하고 필요한 서비스가 있으면 추가한다"며 "각종 서비스를 조율하는 임무는 케어매니저, 현장에서 이를 실행하는 사람이 헬퍼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현장에서 돌봄 대상 고령자의 상태를 매우 꼼꼼하게 보고하고 취합한다. 대부분 고령이면서 혼자 살기 때문에 세세한 것도 그냥 넘길 수 없다고 한다. 시모가모 할머니를 포함해 인근 가정에서 3명의 고령자를 대상으로 돌봄 일을 하고 있는 모리씨는 "치매가 있는 분의 경우 방문하면 지갑부터 확인해 쓸데없이 소비를 했거나 낭비를 하지 않는지 살펴보기도 한다"며 "집안 열쇠가 가방에 제대로 있는지, 몸에 열은 없는지 건강도 챙겨서 보고한다"고 말했다.

나고야시 개호보험과 노리즈키 스구루 추진계장은 "일본 돌봄서비스의 기본 틀은 전국적으로 같기 때문에 지자체가 의지를 가지고 실시하는 예방서비스에서 지역별로 성과가 갈린다"며 "나고야시는 돌봄 대상으로 인정받기 전부터 고령자에 대한 치매와 노쇠화 예방사업을 적극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자가 방문한 이날 치매를 가진 80대 할머니의 외로움은 커 보이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정신과 육체가 건강한 자신을 돌보는 이와 2년간 매주 만나면서 친구가 됐다. 할머니는 "몸도 건강하고 마음은 외롭지 않다"며 "한국드라마와 경마를 보면 즐겁다"고 했다.

["[창간 30주년 기획특집] 건강한 '노후 돌봄'을 위하여" 연재기사]

나고야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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