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공산당 주도의 '금융굴기' 선언

2023-11-10 11:06:00 게재

시진핑 주재 중앙금융공작회의 … 차이신 "사상 처음 '금융강국 건설 가속화' 목표"

중국이 '금융강국' 건설이라는 목표를 꺼내들었다. 공산당의 책임을 강화해 실물경제에 복무하는 금융을 구축하겠다는 것으로, 이른바 '금융굴기'다. 중국이 공식적으로 '금융강국 건설'이라는 목표를 제시한 건 처음이었다.

중국 경제전문매체 '차이신'은 9일 "중국 당 지도부는 지난달 30~31일 열린 '중앙금융공작회의'에서 사상 처음으로 '금융강국 건설 가속화'라는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공산당에 책임을 맡겼다"며 "금융이 국가경제의 생명줄이자 국가경쟁력의 핵심이라는 점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중앙금융공작회의는 1997년부터 열린 5년 주기 회의로, 이번이 6번째였다.

시진핑 주석이 주재한 이번 회의는 경제성장 둔화와 장기적인 부동산 경기침체, 주식시장 하락, 지방정부 부채증가 등 전반적인 어려움 속에서 열렸다. 차이신에 따르면 이번 회의에서는 부동산부문에 대한 상당한 논의가 있었다. 이 역시 중앙금융공작회의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지난달 31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중앙금융공작회의'에서 시진핑 주석(사진 가운데)이 발언하고 있다. 신화통신=연합뉴스


부동산 경기침체는 중국 주식시장에 큰 타격을 줬다. 지난달 24일 중국 벤치마크인 CSI300지수는 4년반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시장을 부양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가 효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올해 들어 CSI지수는 약 10% 하락했다.

웨카이증권의 수석거시경제분석가 뤄즈헝은 "올해 중앙금융공작회의 주제는 금융부문에 대한 공산당의 지도력을 강화해 규제 강화, 리스크 예방, 성장 촉진에 매진한다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당의 적극적 역할 주문

중국은 회의에서 금융부문에 대한 공산당의 '중앙집권적이고 통일적인' 리더십을 강화한다고 명시했다. 중국 금융업계의 여러 고위관계자들은 차이신에 "금융에 대한 공산당의 감독강화를 알리기 위해 회의명칭을 '전국금융공작회의'에서 '중앙금융공작회의'로 변경했다"고 말했다.

회의에 따르면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직접감독 하에 금융업무를 이끌기 위해 지난 3월 설립된 '중앙금융위원회(CFC)'가 전반적인 계획과 조정을 주도하게 됐다. 또 CFC 산하 '중앙금융업무위원회'(CFWC)는 당 주도 금융시스템 건설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CFC와 CFWC의 지역지부도 관할지역에서 비슷한 책임과 권한을 수행한다.

이를 위해 CFC는 중앙은행과 기타 금융감독기관 간 금융감독 및 규제를 조정하기 위해 2017년 국무원 산하에 설립된 '금융안정발전위원회'를 흡수했다. 한 금융규제 당국자는 "CFC 설립은 이전 위원회가 금융리스크를 예방하기 위한 계획과 조정에 충분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일반적으로 지방정부가 지역금융위험에 대처하는 주요 책임을 맡았다. 하지만 지방금융감독당국은 그에 대한 권한이 충분하지 않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 한 지방금융규제국장은 차이신에 "행정수준에서 동등한 중앙은행 지방지점과 지방금융규제국이 종종 누가 의사결정에서 주도권을 잡아야 하는지 결정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상하이의 한 고위 금융규제당국자는 "중앙금융공작회의에 따르면 지방정부는 CFC와 CFWC의 지방사무소를 설립해야 한다. 이는 지방에 대한 금융감독 권한을 명확히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우선순위 오른 기술금융

올해 중앙금융공작회의의 핵심주제는 '금융이 실물경제에 어떻게 기여해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기도 했다. 회의에서는 △과학기술 혁신 △첨단제조 △친환경 개발 △중소기업 촉진을 위해 더 많은 금융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중 과학과 기술에 대한 지원이 금융의 최우선순위에 올랐다. 또 중소기술기업에 대한 지원은 2002년 회의에서 언급된 뒤 이후 회의에서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이번 회의에서 다시 제기됐다.

한 중견은행 임원은 차이신에 "많은 은행들은 중소기술기업에 서비스를 제공할 동기와 역량이 부족하다고 느낀다"며 "대부분의 기술스타트업은 주로 벤처자본과 자본시장에 의존해 자금을 조달하는 반면, 상업은행 대출은 '장식용'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 임원은 "실제로 은행들은 기술금융 데이터를 더 좋게 보이게 하기 위해 기술기업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데 자금을 사용하는 국영기업에 대한 대출을 기술금융으로 포함해 기술업계 대출수치를 부풀리는 등 여러가지 '트릭'을 사용한다"고 말했다.

정저우은행 전 회장인 왕톈위는 "기술스타트업은 위험이 높고 담보물이 부족하다. 이는 일반적으로 은행의 대출리스크 관리를 압박한다"고 말했다. 그는 "기술스타트업에 대한 초기대출은 도박과 같다. 도박에서 이긴다면 약간의 이자수입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지게 되면 원금을 모두 잃을 수 있다"며 "은행이 이러한 기업에 대출을 제공하는 경우 위험과 수익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부동산 부문 지원 강화

중국정부가 과도한 부채를 안고 있는 부동산 개발업체를 대상으로 디레버리징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2021년 중국 부동산시장이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디레버리징 정책은 주택판매 부진을 낳았고, 정책 신뢰도가 떨어지면서 부동산가격이 대폭 하락했다.

중국정부는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일련의 조치를 취했지만, 비구이위안(컨트리가든 홀딩스)과 같은 중국 최대 개발업체들이 연이어 위기를 맞았다. 일부 개발사는 수십억달러 해외채권을 채무불이행했다. 많은 개발자가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며 건설프로젝트를 중도에 포기했다.

중국 지도부는 이번 중앙금융공작회의에서 허난성 마을은행의 수십억달러 규모 사기, 중국 헝다그룹(에버그란데)의 부실부채, 중국 알루미늄 대기업 중왕그룹의 파산 등 여러가지 유명한 사례를 언급했다.

이와 관련 중국 지도부는 부동산 개발업체 규제, 자금조달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영이든 민간이든 모든 개발자가 합리적인 자금조달 요구를 충족하는 데 있어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도 주문했다.

회의록에 따르면 각 도시는 자체 상황에 적합한 주택정책을 시행하고, 주택수요를 지원하기 위해 저렴한 주택건설을 가속화하며, 새로운 부동산 개발모델을 구축하기 위한 정책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웨카이증권의 뤄즈헝 분석가는 "저렴한 주택 건설, 도시마을 개조 및 인프라 프로젝트 건설은 부동산 투자 부진을 상쇄할 뿐 아니라 사람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할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지방정부 부채부담 완화

코로나19 팬데믹 통제와 장기화된 부동산 위기로 지방정부의 장부외거래 차입이 크게 늘면서 중앙정부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국은 이번 회의에서 지방정부 부채위험을 해결하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양질의 경제성장을 지원하는 정부부채 관리 메커니즘을 구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2017년 열린 직전 회의에서는 지방정부의 숨겨진 부채 문제를 집중 논의했다. 하지만 올해 회의에서는 숨겨진 부채뿐 아니라 모든 지방부채 문제로 논의를 확대했다. 분석가들은 은행대출과 공모발행채권, 기업에 대한 부채 등 지방정부융자법인(LGFV)의 부채를 포함해 전체 지방부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지도부의 의지를 보여준다고 해석했다.

회의에서는 또 중앙·지방정부의 부채구조를 최적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현재 중국 정부부채에서 지방정부가 중앙정부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차입비용도 더 높다.

중국사회과학원 산하 금융은행연구소 부소장 장밍에 따르면 지방정부 부채는 중국 전체 정부부채의 80%에 달한다. 중국 재정부가 발행한 10년만기 채권의 이자율은 2.5~2.6%인 반면 비슷한 만기의 지방정부채권의 이자율은 평균 6%에 달한다. 장 부소장은 "소도시의 LGFV의 경우 그보다 2배 높은 이자율을 지불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중앙정부가 자체차입을 늘려 지방정부의 부채부담을 완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중국정부도 그같은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4일 정부차입을 감독하는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는 1조위안(1370억달러) 규모의 특별채권을 승인했다. 이 자금은 지방정부에 배정될 예정이다.

차이신은 "국채발행을 통한 인프라 투자자금 조달은 차입여력이 부족한 지방당국이 아닌, 중앙정부에 더 많은 재정부담을 지우는 것"이라며 "중국정부의 정책 변화를 반영하는 조치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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