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칙 가격인상에 뿔난 소비자 … 뾰족수 없어 난감한 정부

2023-11-23 11:18:08 게재

공정위, 슈링크플레이션 실태조사 결과 내달 발표

소비자원 물가대응 전담조직 확대, 신고센터 운영

인터넷에 슈링크플레이션 품목 공개, 실효성 의문

마트 진열대 표시 의무화는 지자체 업무부담 가중

슈링크플레이션 우려가 확산되자 정부가 칼을 빼들었다. 저소득층 생계와 직결된 먹거리와 생필품의 가격 변칙인상에 대한 소비자 불만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판단에서다.

슈링크플레이션 대응 간담회 | 22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서 열린 '슈링크플레이션' 대응 관련 부처 간담회에서 조홍선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오른쪽 세번째)이 발언하고 있다. 슈링크플레이션은 가격은 그대로 두거나 올리면서 제품 용량을 줄이는 현상을 말한다. 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정부는 우선 주요 생필품을 중심으로 슈링크플레이션 실태 조사에 착수하기로 했다. 또 소비자단체와 함께 신고센터를 설치하고 모니터링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식품업계도 일단 정부 지침이 나오는 대로 물가 안정 기조에 동참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대응이 실효성이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모니터링과 권고 등 간접압박 방식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실제 변칙인상을 막을 강제력 있는 정책수단이 마땅치 않은 탓이다. 일각에서는 국세청 세무조사 등을 통해 압박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이런 방식 역시 구시대적 변칙대응이란 비난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긴급간담회 개최 = 23일 정부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는 전날 오후 관계부처(기재부 농식품부 산업부 해수부 식약처)와 소비자단체, 한국소비자원과 간담회를 열고 슈링크플레이션 현황과 대응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슈링크플레이션은 양을 줄인다는 뜻의 슈링크(shrink)와 물가 상승을 뜻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다. 가격은 그대로 두면서 제품 용량을 줄이는 꼼수 인상을 말한다.

간담회 결과 소비자원은 슈링크플레이션 관련 73개 품목 209개 가공식품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이에 대한 결과를 12월 초 발표하기로 했다. 또 조사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품목의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23일부터 한국소비자원 홈페이지에 슈링크플레이션 신고센터를 설치해 제보도 접수한다.

소비자원 내부에 물가 대응을 전담하는 기존조직도 확대 개편한다는 방침이다. 소비자원 관계자는 "(조직 관련) 구체적인 규모에 대해선 12월 연말이 돼야 확정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소비자원을 중심으로 사업자와 자율협약 체결을 추진해 단위 가격·용량'규격 등을 변경할 때 사업자가 스스로 정보를 제공하도록 유도하겠다는 계획이다.

회의를 주재한 조홍선 공정위 부위원장은 "슈링크플레이션은 일종의 기만적 행위로, 소비자 신뢰를 저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엄중하다"면서 "시장 동향에 대한 모니터링과 함께 소비자들이 정확한 정보에 기반해 합리적인 소비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정보제공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공정위 '정부공개 극대화' 추진하지만 = 하지만 편법 가격인상에 대응할 '강제력 있는 카드'가 없다는 점이 정부 고민이다. 이 때문에 정부 대책은 '모니터링과 정보공개 강화'로 모아지고 있다.

우선 공정위는 편법 가격인상에 따른 소비자 피해 예방을 위해 인터넷에 해당 품목 정보공개를 강화하기로 했다. 한국소비자원이 운영하는 '참가격' 사이트에 '슈링크플레이션 품목'을 공개하는 방안이 검토된다. 소비자가 주요 품목의 단위가격(g당 가격 등) 변화를 제대로 인지할 수 있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하지만 소비자가 인지도가 낮은 특정 사이트를 방문해 각 품목을 확인해야하는 번거로움을 고려하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정보 공개는 대책 중 일부"라며 추가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대형마트 진열대 등에 해당 정보를 직접 표시하는 방안도 검토대상이다. 이를 위해선 단위가격 표시사항을 규정한 산업통상자원부의 '가격표시제 실시요령' 개정이 필요하다. 현재 가격표시제 고시에는 '단위가격 변화 여부' 등과 관련한 규정이 없다. 하지만 적용 대상이 중대형 오프라인 매장에 한정되고, 이를 점검할 지자체의 업무부담으로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란 반론이 나온다.

◆시장 상황이 어떻길래 = 최근 슈링크플레이션이 전면에 떠오른 이유는 정부가 식품업계를 중심으로 가격인상 자제를 압박한 것과 관련이 있다. 가격을 직접 올리는 대신 용량과 개수를 줄이는 방식으로 '편법 인상'에 나선 것이다.

실제 CJ제일제당은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숯불향 바비큐바' 중량을 이달 초부터 280g에서 230g으로 줄였다. 동원F&B도 '동원참치 통조림' 중량은 100g에서 90g으로, '양반김'은 5g에서 4.5g으로 바꿨다. 오비맥주는 4월부터 '카스 묶음'의 1캔당 용량을 기존 375㎖에서 370㎖로 줄였다. 해태제과는 '고향만두' 중량을 415g에서 378g으로, 풀무원은 '냉동핫도그' 제품의 1봉지 당 개수를 5개에서 4개로 바꿨다.

롯데칠성음료는 '델몬트 오렌지 주스' 과즙 함량을 100%에서 80%로 낮췄다. 기존 80% 함량 제품은 45%로 줄였다. 오렌지 주스 원액 가격이 크게 오르자, 이를 가격에 전부 반영하는 대신 용량 줄이기 꼼수를 택한 것이다. BBQ치킨은 100%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만을 사용하던 튀김유 비율을 바꿨다. 올리브 50%·해바라기유 50% 블렌딩 오일을 택했다.

상황이 악화되자 정부는 우선 종합실태조사에 나섰다. 김병환 기획재정부 1차관은 최근 비상경제차관회의에서 "11월 말까지 한국소비자원을 중심으로 주요 생필품 실태조사, 제보 등을 진행해 이를 바탕으로 구체적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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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공식품 '슈링크플레이션' 조사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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