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전쟁 6개월’ 시험대 오른 바이든
11월 대선 앞두고 냉탕 온탕 오락가락 … 이스라엘 라파 공격 못 막으면 후폭풍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최남단 라파에 대한 공격 의지도 다진다. 라파는 팔레스타인 피란민 140여만명이 몰려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밀집지역. 공격이 현실이 되면 민간인 대량학살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이미 지난 5개월여 동안 3만2000명이 넘는 팔레스타인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사망자 대다수는 여성과 어린이들이다. 민간인 학살이라는 비난 여론이 들끓는 이유다.
심상찮은 미국의 기류변화
미국 내부 여론도 심상찮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피로감이 커졌다. 국제사회가 규탄하는 이스라엘의 행태를 언제까지 감싸줘야 하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최근 발생했다. 미 국무부 민주주의·인권·노동국의 중동 담당자 애넬 셸라인이 3월 27일 전격 사임했다. 그는 CNN에 ‘나는 왜 국무부를 그만두나’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공개했다.
셸라인은 “가자지구 보건부 집계로 어린이 1만3000명을 비롯한 3만2000명을 살해한 이스라엘군의 공격에 미국이 공급한 포탄이 쓰였다”고 지적했다. 또 “수십만명이 아사 위기에 직면했다”며 “전문가들이 집단학살 범죄라고 말하는 이런 범죄들이 미국의 외교적 군사적 지원 아래 실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인권 옹호자로서 지니고 있던 신뢰도는 이 전쟁 시작 이래 모두 사라져 버렸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미국이 가자전쟁 발발 이후 이스라엘에 100여건의 무기를 판매한 정황도 드러났다. 3월 7일자 워싱턴포스트(WP) 보도에 따르면 미국정부는 가자전쟁 발발 이후 수천개의 정밀 유도탄을 비롯해 소구경 폭탄, 소형무기, 각종 살상무기 등 100여건을 판매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지난 2월 워싱턴 이스라엘대사관 앞에서는 미 공군 병사 에런 부슈널이 분신 후 사망했다. 그는 이스라엘 대사관 쪽으로 걸어가며 “나는 더 이상 제노사이드(집단말살)의 공범이 되지 않겠다”며 몸에 불을 붙인 뒤 쓰러질 때까지 “팔레스타인에 자유를!!”이라고 외쳤다.
워싱턴 정가에서도 기류변화가 감지된다. 3월 14일 민주당 소속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는 상원 연설에서 “베냐민 네타냐후가 길을 잃었고 가자지구 평화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면서 이스라엘에 새로운 선거를 실시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네타냐후) 총리가 극우 극단주의자들의 연합에 가담했다”며 “그 결과 그는 가자지구의 민간인 희생을 너무 용인했고, 전세계적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가 사상 최저치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척 슈머 발언 다음날 “그는 좋은 연설을 했다. 많은 미국인이 공유하는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고 생각한다”고 두둔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반응이다.
유엔 안보리, 휴전 결의 첫 채택
미국의 태도변화에 따른 첫 결과물도 나왔다. 유엔 안보리가 3월 25일 이스라엘-하마스간 즉각 휴전과 인질석방을 요구하는 결의를 개전 후 처음으로 표결을 통해 채택했다. 15개 이사국 중 14개국이 찬성했고 미국은 거부권 대신 기권을 택했다. 안보리가 가자지구 관련 휴전 결의를 채택한 것은 개전 5개월여 만에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미국은 여전히 엉거주춤한 모습이다. 한 발은 국제사회 여론에, 다른 한 발은 이스라엘에 담그고 있기 때문이다. 결의안이 통과되자마자 ‘구속력이 없다’는 입장을 밝힌 것도 이런 이중적 태도의 연장선이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대사는 안보리 결의가 채택된 뒤 “우리는 이 구속력이 없는 결의의 중요한 목표 중 일부를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말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소통보좌관도 이날 브리핑에서 “이것은 구속력이 없는 결의”라며 “그래서 하마스를 쫓는 이스라엘 및 이스라엘의 능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사무엘 즈보가르 주유엔 슬로베니아 대사는 “우리는 안보리 결의의 구속력을 상기하며 이 명확한 결의의 신속한 이행을 촉구한다”고 반박했다. 장쥔 주유엔 중국대사도 “안보리 결의는 구속력이 있다”며 “우리는 당사자들이 유엔 헌장에 따른 의무를 이행할 것을 촉구한다”고 거들었다.
라파 공격 막고, 두 국가 해법 실천
이처럼 바이든행정부의 진정성은 여전히 의심받고 있다. 겉으로는 휴전협상과 인도적 지원을 언급하면서 뒤로는 이스라엘에 무기를 판매하고, 안보리 결의안을 기권으로 겨우 통과시키고도 법적 구속력을 인정하지 않는 자기모순에 빠져 있는 상황이다.
진정성을 인정받는 것은 어렵지 않다. 라파 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을 막는 것이 최우선이다. 이스라엘의 라파 공습을 미국이 용인한다면 그 결과가 미국에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것이 분명하다. 바이든의 재선 도전에도 악재가 될 것이다.
또 한가지는 ‘두 국가 해법(Two-state solution)’에 대한 실천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두 국가 해법은 1967년 유엔 안보리와 유엔 총회 결의안에 명시된 경계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각각의 나라를 세우는 것으로, 국제사회에서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다. 미국 역시 이에 대한 지지 입장을 거듭 밝혀왔다. 지난 57년 동안 두 국가 해법이 가장 현실적인 해법이라는 데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면서도 여전히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끊이지 않는 영토 갈등과 이를 용인한 미국의 태도가 주요하게 작동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 흥미로운 제안도 등장했다.
세계적 석학으로 꼽히는 제프리 삭스 교수는 지난달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게시한 기고글을 통해 두 국가 해법에 대한 발상의 전환을 촉구했다. 삭스 교수는 이스라엘정부는 두 국가 해법을 강력히 반대하며 이스라엘 국민의 상당 부분 역시 종교적 안보상의 이유로 반대한다고 진단했다. 또 상당수 팔레스타인인들도 이스라엘을 불법적인 정착민-식민지 국가로 여기며 불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두 국가 해법을 관철할 수 있을까. 삭스 교수는 두 국가 해법의 절차가 크게 6단계로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일반적 순서는 ①휴전 ②인질 석방 ③인도적 지원 ④재건 ⑤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협상을 위한 평화회의 ⑥합의된 경계에 두 개의 국가 설립이다. 삭스 교수는 이런 방식으로는 합의에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지난 57년간처럼 5단계와 6단계에서 끊임없이 교착상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제프리 삭스 “유엔 가입을 출발점으로”
따라서 삭스 교수는 정반대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즉 전세계적으로 합의된 경계 특히 유엔안보리와 유엔총회 결의안에 명시된 1967년 6월 4일 경계에 두 국가를 설립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로운 해법의 순서는 ①1967년 6월 4일 국경에서 두 국가 해결 체계 내에서 팔레스타인을 194번째 회원국으로 설립 ②즉각적인 휴전 ③인질 석방 ④인도적 지원 ⑤평화유지군, 군축 및 상호 안보 ⑥방식에 대한 협상(정착, 난민 귀환, 상호 합의된 토지 교환 등 그러나 경계는 제외)라고 설명했다.
팔레스타인 유엔가입을 종착점이 아닌 출발점으로 삼는 방식이다. 실제로 지난 2011년에 팔레스타인 국가(현재 140개 UN 회원국이 인정하지만 아직 UN 회원국은 아님)는 UN 정식 회원국 지위를 신청했다. 유엔 안보리 신규회원국 위원회는 이에 대한 적법성을 인정했지만, 미국정부는 팔레스타인을 옵서버 지위만 인정했다. 그러면서 곧 정식회원이 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 약속을 지금이라도 실천하면 되는 것이다.
삭스 교수는 이런 방식이 현실성도 높고 미국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우선, 이스라엘의 전쟁 범죄와 정치적 극단주의에 대한 미국 대중의 이해가 높아졌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 유엔에서 미국의 고립이 늘어 미국 지도자들에게도 큰 부담이 되고 있으며, 지정학적 이해관계를 고려해 자신의 정책 입장을 재고하도록 강요받고 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이 같은 방식은 유엔안보리와 유엔총회의 결정에 근거한 것으로 국제법을 지키고 최종 해결 조건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결국 재앙적 수준의 민간인 희생을 부르고 있는 가자전쟁을 끝내고 두 국가 해법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관철 의지와 진정성이 결정적 요소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