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현이 할머니, 브레이크 밟았다”

2024-05-28 13:00:04 게재

‘강릉 급발진 사고’ 재연 시험 분석 결과 … ‘급발진’ 유족측 주장 힘 실릴 듯

2022년 12월 이도현군(당시 12세)이 숨진 소위 ‘강릉 홍제동 급발진 의심 사고’의 재연시험 기록을 법원이 지정한 감정인이 정밀 분석한 결과 ‘도현이의 할머니는 가속페달을 밟지 않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결과가 나왔다. 도현군 유족은 이런 결과를 토대로 “페달 오조작이 아니므로 차량 결함에 의한 급발진”이라고 강조했다.

27일 도현군 유족은 지난달 19일 사고 현장에서 이뤄진 재연시험 기록 정밀 분석결과를 발표했다.

사고 현장 도로에서 이뤄진 국내 첫 재연시험은 지난달 19일 오후 1시쯤 경찰의 도로 통제 협조 속에서 약 2시간 동안 진행됐다.

법원에서 선정한 전문 감정인의 참관하에 이뤄진 이날 시험은 사고 차량과 같은 2018년식 티볼리에어 차량에 제조사가 제공한 변속장치 진단기를 부착하고 진행됐다.

앞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은 ‘차량에는 결함이 없고, 운전자의 페달 오조작’이라는 분석결과를 내놨다.

이번 시험 결과와 관련해 제조사측은 “현재 소송 중인 사안이라 답하기 적당치 않다”면서 “법정에서 회사측 입장을 설명하고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현군 유족은 차량 제조사인 KG모빌리티를 상대로 약 7억6000만원 규모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고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다.

강릉 급발진 의심 사고 재연시험 결과 발표 2022년 12월 이도현(사망 당시 12세) 군이 숨진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와 관련해 27일 오전 강원 강릉시 강릉교회 티지홀에서 도현이 가족의 소송대리를 맡은 법률사무소 나루 하종선 변호사가 지난달 이뤄진 국내 첫 재연시험의 감정 결과를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박영서 기자

◆풀 액셀 밟았으나 속도 증가 폭 달라 = 시험 결과에 따르면 먼저 사고 당시 사고기록장치(EDR) 기록대로 ‘풀 액셀’을 밟았을 때 ‘속도 변화’가 국과수 분석과 달랐다.

사고 당시 도현이 할머니가 운전하던 차량은 처음 급가속 현상이 나타나면서 모닝 승용차를 추돌하고 약 780m 가량을 더 질주했다.

EDR에 따르면 해당 차량은 마지막 5초 동안 ‘풀 액셀’ 상태였다. 이번 재연 시험에서 이 기록을 토대로 가속 페달을 100% 밟은 채 5초간 주행했더니 속도가 시속 130㎞까지 증가했다.

이는 국과수 분석치인 116㎞보다 속도 증가 폭이 큰 것이다.

유족측은 “풀 액셀을 밟았음에도 속도가 시속 110㎞에서 116㎞로 6㎞밖에 증가하지 않은 것은 운전자인 할머니가 브레이크를 밟은 증거”라고 지적했다.

◆국과수 분석치와도 상이 = 재연시험의 속도, RPM, 변속단수 등 ‘주행데이터’도 국과수 분석과 달랐다.

처음 급가속 현상이 나타나면서 모닝 승용차를 추돌한 시점 직전으로 돌아가 시속 40㎞에서 변속 레버를 주행(D)으로만 두고 2~3초간 풀 액셀을 밟았을 때 실제 속도는 시속 40→73㎞, RPM은 3000→6000, 기어는 4단→2단→3단으로 변속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기어가 중립(N)인 상태에서 속도와 RPM이 각각 시속 40㎞와 6200~6400으로 일정했다는 국과수의 분석과 전혀 다르다.

모닝 추돌 이후 상황을 가정해 풀 액셀을 밟았을 때도 주행데이터가 차이를 보였다.

재연시험에서는 시속 44→120㎞까지 18초가 걸려 높고 빠르게 가속이 이뤄졌다. 하지만 국과수는 40→116㎞까지 24초가 걸렸다고 분석했다.

재연 시험에서는 국과수 분석 때보다 상대적으로 높고 빠르게 가속이 이뤄진 것 역시 할머니가 브레이크를 밟았던 증거라는 것이 유족측 주장이다.

RPM 그래프도 재연시험은 단순한 직선 형태를 보인 반면 국과수는 여러 굴곡이 생기는 형태를 띠었다. 변속패턴 역시 재연시험(4단→2단→3단→4단)과 국과수 분석치(2단→3단→4단→3단→4단→3단) 간 현저한 차이를 보였다.

감정인은 “가속페달과 변속기어 주행 형태를 볼 때 풀 액셀로 주행할 경우 국과수의 감정서 내용과 같은 변속기어 패턴이 발생하기 어려운 것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제조사 주장 변속패턴과 불일치 = 또한 감정 결과 제조사측이 주장한 변속패턴과 이번 실제 주행에서 나온 수치들과 맞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재연시험에서 이뤄진 기어 변속 정보를 토대로 실제 속도와 변속패턴 설계 자료상의 예측 속도를 비교했을 때 일치하는 사례는 1~2건에 불과했다. 8~9건은 적게는 시속 4~7㎞에서 많게는 시속 54~81㎞까지 차이가 났다.

유족측 소송대리를 맡은 법률사무소 나루 하종선 변호사는 “재연시험에서 변속패턴 설계자료대로 속도 변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며 “이번 사고에 적용할 수 있는 현실적인 자료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유족 “긴급제동장치 작동 안돼” = 한편 유족측은 이날 강릉교회 주차장에서 긴급제동장치(AEB) 작동 여부에 대한 추가 재연시험도 진행했다. 사고 당시 차량에서 ‘웽’하는 굉음이 나기 전 속도인 시속 40㎞와 모닝 추돌 직전 속도인 46㎞로 각각 주행하고, 기어를 중립으로 변속해 AEB 작동 여부를 확인했다.

하 변호사는 “모든 시험에서 AEB가 작동한 만큼 국과수가 분석한 속도대로 차가 주행했을 때 AEB가 작동했었어야 한다”며 “사고 당시 모닝 앞에서 멈추거나 그 이후 차량이 내달리지 않았다면 이번 사고는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사고 당시 모닝 앞에서 AEB가 작동하지 않은 것은 중대한 결함이고 사망사고를 일으킨 또 하나의 이유”라고 주장했다.

이날 AEB 작동 여부 실험 결과는 유족측이 법원에 공식적인 감정신청을 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진행한 것이라 그 결과의 증명력을 두고도 제조사측과 공방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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