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아동청소년

고립청소년 14만명 추정…사회적 관심·대책 시급

2024-06-11 13:00:00 게재

우울 고위험군 증가 … "자율-존중 없는 가정·학교, 건강한 자아·관계 형성 해쳐"

우리나라 아동청소년의 성장발달 상태가 나빠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사회적 관심을 높이고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5월 6월에 여성가족부와 보건복지부에서 낸 아동청소년실태 자료들을 분석해 보면 신체활동이 줄고 비만은 늘었다. 방과 후 공부-스마트폰-컴퓨터 등으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다. 친구와 어울려 놀고 싶지만 그런 경우는 적다. 우울은 늘고 특히 고위험군은 많아졌다. 고립청소년의 규모는 14만명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학교밖청소년 상황은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특히 최근 학교를 거부하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저출생으로 어렵게 태어난 아이들임에도 행복하게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사회의 자녀 1인-맞벌이 부모라는 가족구성과 소수 학생만 위한 경쟁교육 환경 탓에 많은 아동청소년들이 성장발달시기에 형성해야 할 자아와 공동체적 협력과 연대의 정서를 키우지 못하고 되레 상처를 받는다고 분석한다. 우리나라 아동청소년의 최근 실태를 분석하고 대안을 찾아본다.

등교를 거부하는 아동청소년이 늘고 있다. 사회적 관심과 대책이 필요하다. 사진 이미지투데이

#. 요즘 학교를 거부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초등학교 6학년 A는 학급에 친구도 없고 오래 전 갈등이 있었던 아이가 자기 뒷담화를 하고 다닐까 두려워 학교를 못 가겠단다. 사춘기를 맞은 중학생 B는 친구·공부 문제로 엄마와 갈등을 겪다가 자기 방에 들어가 한달 넘게 나오지 않은 채 등교를 거부하고 있다. 인문계고등학교에 진학한 C는 학교시스템과 교사의 교수법에 대한 불만으로 학교에 흥미를 잃었고 담당교사와 갈등이 일면서 잦은 지각 조퇴 결석하다가 지금은 자퇴를 생각 중이다.

11일 양미정 서울전동초등학교 수석교사는 “최근 이런 사례처럼 등교를 하지 않겠다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가정은 자녀의 정서적, 신체적 돌봄과 지지를 해야 하고 학교는 관계중심의 협력 교육활동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경은 초당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부모들이 자신의 신분상승이나 성공 욕구를 아이들의 뜻과 무관하게 강요하면 아이들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아이들의 행복한 성장발달을 돕는 지역사회 돌봄이 확산돼야 한다”고 말했다.

◆친구와 어울리지 못하고 스마트폰에 의존 = 복지부의 ‘2023년 아동종합실태조사’와 여가부의 ‘2023년 학교밖청소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아동청소년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상태는 악화됐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지 못하며 혼자서 핸드폰 등 전자기기에 의존하는 경향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복지부에 따르면 비만율은 3~8세는 12.3%로 2018년 조사와 비슷하지만 9~17세는 3.4%에서 14.3%로 크게 늘었다. 체중과 관련해서 수면시간은 8.29시간에서 7.9시간으로 줄었고 주중 앉아있는 시간은 524분에서 636분으로 늘었다.

정신건강은 전반적으로 개선됐으나 고위험군은 오히려 증가했다. 스트레스가 적거나 없는 아동은 43.2%로 지난 조사보다 8.7%p 늘었지만 스트레스가 대단히 많은 아동은 1.2%로 지난 조사 0.9%보다 늘었고 9~17세의 우울감 경험(4.9%)과 자살생각(2,0%)은 증가해 우려된다.

복지부의 ‘2022년 정신건강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아동청소년의 정신장애 평생 유병률은 소아 14.3% 청소년 18.0%로 나타났다. 현재 유병률은 소아 4.7% 청소년 9.5%로 청소년이 더 심각했다. 특히 아동청소년 7.1%는 전문가 도움이 시급한 것으로 조사됐다.

아이들의 놀 권리는 2018년보다 더 충족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방과 후 친구들과 놀기(42.9%)를 원하지만 실제(18.6%)로는 같이 못 놀고 있다. 학원·과외와 집에서 숙제하기는 각각 25.2% 18.4%로 원하지만 실제는 54.0% 35.2%로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6~17세의 사교육 평균 비용은 31만6600원에서 43만5500원으로 크게 늘었다.

여가시간에 스마트폰과 컴퓨터 등 전자기기를 더 많이 사용하고 텔레비전 보기나 책 읽기는 줄었다. 특히 0~8세 저연령층 아동의 전자기기 사용 정도도 증가했다. 스마트폰 컴퓨터 테블릿을 1시간 이상 사용하는 비율이 주중 27.5% 주말 36.9%로 2018년(19.7%, 24.2%)보다 크게 증가했고 책읽기 등 활동이 모두 줄었다.

조규필 세종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코로나19 혼자 지내는 생활행태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며 “특히 코로나19 이전에도 인터넷 중독이 저연령화되는 추세가 있었는데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 의존성이 높아지면 친구들과 어울리는 대면관계의 축소로 이어질 수 있어 부모들은 특히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모들이 맞벌이나 나가서 일하는 시간이 더 많아지면서 아이들은 핸드폰 등에 의존하면서 생활하는 시간이 늘고 있다. 전자기기가 심지어 ‘보모’ 역할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 과의존이 중독으로 이어지면 청소년기의 우울, ADHD 증상 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 교수는 “건강하게 부모님이나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상호작용이 일어나면서 휴머니즘같은 정서적인 부분에서 발달해야하는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며 “대만의 경우 만2세 아이한테 스마트폰 기기를 많이 맡겨 놓을 경우 부모를 규제하는 법률도 있다. 우리나라도 그 저연령대 아이들을 스마트폰이나 전자기기에 몰입해서 중독으로 가지 않도록 하는 사회적인 합의와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가부의 9세~24세 조사 대상 중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 수준은 잠재적 위험군은 29.6% 고위험군은 4.2%였다.

◆학교 관계에서 무기력하고 불안 = 여가부에 따르면 조사 대상 청소년이 학교를 그만둔 시기는 고등학교 때 62.2%, 중학교 20.8%, 초등학교 17.0%로 나타났다. 그런데 초등학교 때라고 응답한 경우가 코로나19 이전 2018년 5.6%에서 크게 늘어났다.

학교를 그만 둔 이유는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부모 권유로 홈스클링 대안교육을 위해서 그만두는 경우가 각각 61.3%, 35.2%로 많았다. 고등학교 때는 심리·정신적인 문제가 37.9%로 가장 많았다.

학교밖청소년 중 은둔기간 3개월 이상 ~6개월 미만의 은둔 잠재군은 3.5%로 6개월 이상 은둔청소년은 6.4%로 나타났다. 은둔하게 된 주요 계기는 주로 ‘무기력하거나 우울한 기분이 들어서’(28.6%)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24.9%)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13.7%) 사함들과 마주치는 것이 싫어서(9.6%) 등으로 답했다.

관련해서 현 교육제도에서 학생들의 무기력과 불안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양 수석교사에 따르면 일본의 경우 2022년 문부과학성 조사에서 학교를 가지 않는 학생 수는 29만9048명으로 나타났다. 부등교 원인 1위는 무기력과 불안(46%)로 조사됐다. 일본 교육사회학자들은 일본의 획일화된 경쟁 중심의 교육제도가 학생들의 무기력과 불안을 부추기는 원이라고 지적한다.

양 수석교사는 “30여년의 교직 경력 동안 학생들의 정신 건강은 우리나라 경제 성장과 반비례해 나빠지는 듯하다”며 “학생들은 학교생활에서 관계로 인해 갈등하고 당황하며 그것을 버텨내는 정신적 힘이 없어 쉽게 포기하고 움츠려들며 혼자만의 공간으로 숨어버리는 부등교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 경쟁 중심의 입시제도가 유지되는 한 조만간 우리나라도 일본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이 성장에 도움되고 원하는 것 할 수 있게 =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학 전문의는 구체적으로 청소년이 직면하게 되는 ‘한국적 상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성장발달 상 사춘기를 보내게 되는 청소년은 변하는 몸과 내면의 복잡한 변화에 혼돈의 시간을 보낸다. 위축과 어색함 낯섦 등에 아이들은 자신의 보호할 장치를 마련한다. 대표적으로 침묵과 반항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청소년의 사춘기는 중학생이라는 교육제도 환경과 맞물리면서 상황이 주체할 수 없는 지경에 몰리기도 한다. 집에서 공주 왕자로 지내던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면서 성적표를 처음 받게 되고 자신의 위치가 주인공이 아닌 엑스트라는 것으로 목격하게 된다.

김 전문의는 “성적표를 받아 본 아이들은 큰 충격을 받곤 한다. 학교라는 곳이 번갈아 주인공이 될 수 있는 드라마라면 좋겠지만 학교는 3년 내내 주인공이 바뀌지 않는 경우는 많다”며 “그런 학교 생활이 재미있을 리 없다. 부모들은 그래도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하면 되지 않냐고 말하지만 아이들은 재미와 흥미가 모든 일의 우선”이라고 말했다.

김 전문의는 이어 “요즘 아동청소년은 기성세대와 다른 사회경제-심리적 환경에서 살고 있다”며 “사랑이 결핍된 가정, 희망 결핍을 만드는 입시 공부, 성찰을 방해하는 미디어 악영향 등을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성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학업이나 취미 그리고 자기개발 등에 무기력함을 보이는 아동청소년이 있다면 어렸을 때부터 자율성을 얼마나 줬는지 되짚어 봐야 한다”며 “아이들이 원하고 성장에 도움이 되는 것들을 더욱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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