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한마디에 일괄 추진하던 ‘부담금 폐지’ 국회서 제동

2024-11-25 13:00:32 게재

18개 폐지대상 부담금 중 3개만 겨우 국회 논의 첫발 떼

15개는 논의 시작도 못해 … 12개는 시행령 고쳐 시행중

야당 “폐지 따른 세수결손 대책 없고 실효성도 따져 봐야”

대통령 말 한마디에 정부가 전격 추진하던 ‘부담금 폐지’가 국회에서 암초를 만났다. 야당이 “부담금 폐지에 따른 세수보완대책이 없고, 일부 부담금은 폐지 실효성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며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여야가 바뀐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대통령 말 한마디에 기획재정부가 두달 만에 부담금제도를 일괄 정비하려 했지만 졸속이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란 비판도 나온다.

25일 국회와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18개 부담금 폐지를 추진하며 관련 법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이번 정기국회에서는 학교용지부담금, 영화부과금, 출국납부금 3개만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나머지는 부담금의 폐지 여부는 언제 논의가 시작될지도 불투명하다.

◆부담금 정비 논의 어떻게 진행 = 부담금은 특정 공익사업의 이해관계자에게 사업에 필요한 재원을 거두는 특별한 재정 책임이다. 영화 상영권 입장권에 들어있는 영화발전기금처럼 이용자가 잘 모르고 내는 준조세 성격이 강하다.

앞서 지난 1월 윤석열 대통령은 “모든 부담금을 제로베이스에서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기획재정부는 2개월 만인 3월27일, 32개 부담금을 폐지 또는 감면하는 내용의 정비계획을 발표했다. 18개를 폐지하고 14개는 감면하는 내용이다.

부담금 부과 목적·원칙에 맞지 않거나 여건 변화에 따라 불필요해진 부담금을 정비해서 국민 부담을 덜어준다는 취지였다. 이 중 법 개정이 필요 없는 12개 감면 사항은 시행령 개정을 거쳐 지난 7월부터 시행 중이다.

정부는 이어 18개 폐지 부담금 관련 21개 법률 개정안을 지난 7월 말 국회에 제출했다.

◆야당이 반대하는 이유는 = 야당은 2년 연속 대규모 세수결손 상황에서 부담금 폐지에 따른 수입 감소와 사업 차질 등을 이유로 폐지 재검토를 주장하고 있다. 일부 야당 의원은 “그동안 부담금 제도가 존속해 온 이유가 있는데 대통령 지시에 쫓겨 급히 정비하다보니 졸속으로 된 측면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이 균형을 맞추겠다는 것이다. 특히 학교용지부담금은 폐지 대신 50%를 경감하는 내용의 야당안이 발의됐다. 이 법안은 지난 5일 야당 단독으로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통과됐다.

학교용지부담금은 분양사업자에게 분양가격의 0.8%(공동주택 기준)를 부과하는 내용이다. 저출생으로 학령 인구가 감소하면서 폐지 요구가 대두됐다. 정부는 학교용지부담금을 폐지하면 분양가 인하를 유도하는 효과가 날 것으로 기대한다. 반면 야당은 학령인구 감소를 고려하더라도 절반은 부담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본 셈이다.

영화부과금은 영화 지원 축소, 상징성 훼손 등을 이유로 야당에서 폐지에 반대하고 있다. 정부의 폐지안은 현재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 계류 중이다.

영화 관람료의 3% 수준인 영화부과금은 티켓값 1만5000원 기준 약 500원에 해당한다. 정부는 부담금 폐지 시 500원 이상으로 관람료 인하를 유도할 예정이다. 요금이 낮아지면 영화산업도 활성화할 것으로 기대한다. 부담금을 폐지해도 영화발전기금은 유지하고 별도 재원으로 차질 없이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야당은 영화부과금 징수 요율을 명확히 규정하는 ’맞불‘ 법안도 발의한 상태다. 폐지 논의가 이뤄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는 분석이다.

출국납부금(1천원) 폐지 관련 정부안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 지난 8일 상정된 후 논의되지 않고 있다. 나머지 부담금 폐지 관련 법안들도 본격 논의가 시작되지 않았다.

정부는 연내 법안 통과에 주력한다는 입장이다. 상임위원회에서 진척이 없을 경우 일부 부담금은 세입 예산 부수 법안으로 예산안과 함께 논의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정부안대로라면 7조원대 세수감소 = 한편 정부안대로 부담금이 없어질 경우 향후 5년간 적어도 7조4000억원대 정부 수입이 줄어들 것이란 분석도 나왔다. 2년 연속 수십조원대 세수 결손 상황에서 부담금 수입마저 대폭 줄면서 정부의 재정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진성준 의원실이 국회예산정책처(예정처)에 의뢰한 ‘부담금 정비에 따른 수입 감소액’ 보고서를 보면, 2024년부터 2028년까지 6개 주요 부담금 정비로 인해 총 7조3868억원의 수입이 감소할 것으로 추산됐다.

수입이 가장 많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부담금은 ‘전력산업기반기금 부담금’이다. 정부는 전기요금에 부과되는 부담금 요율 3.7%를 2025년까지 2.7%로 단계적으로 인하할 계획이다. 이를 적용하면 향후 5년간 3조8362억원의 수입이 감소한다. 학교용지부담금 수입도 제도 폐지로 5년간 1조6191억원 줄어들 전망이다. 이밖에 농지보전부담금 8758억원, 출국납부금 6089억원 등 순으로 수입 감소액이 크다.

나머지 26개 부담금 정비로 인한 영향까지 더하면 수입 감소분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진성준 의원은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부담금 개편이 졸속 추진됐다”며 “반복되는 대규모 세수결손 상황에서 부자 감세에 이은 추가적인 정부 수입 감소는 결국 재정여력을 위축시켜 정부의 지원이 절실한 국민의 삶을 더 어렵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자체와 공공기관의 재정 부담도 커질 전망이다. 예정처가 부담금 정비로 인한 수입 감소액을 분석한 결과, 2025년 부담금 감소분 1조9000억원 가운데 기금과 정부 특별회계 수입이 각각 1조원, 3000억원 감소하는 한편, 지자체와 공공기관 수입도 각각 5000억원과 300억원씩 줄어드는 것으로 분석됐다.

◆‘졸속’ 폐지 부작용 현실로 = 부담금 폐지가 전격적으로 이뤄지면서 갖가지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국정감사에서도 이같은 문제가 제기됐다.

하반기부터 시행된 정부의 부담금 개선 작업 여파로 외교부 산하 한국국제교류재단 운영 자금이 급감, 2032년에는 적립금이 한 푼도 남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국감에서 “재단의 수익금 95%가 여권 발급시 납부하는 수수료로 운영되는데 정부가 대책도 없이 부담금을 폐지했다”고 비판했다.

정부는 지난 7월부터 출국자 부담을 줄인다며 여권 발급 비용을 복수여권의 경우 3000원 내렸다. 문제는 이 부담금이 모두 국제교류재단 운영 기금으로 쓰일 돈이었다는 점이었다. 국제교류재단은 한국을 알리고 다른 나라와 우호 관계를 다지는 역할을 한다. 특히 해외 유력 인사 가운데 지한파와 친한파 등을 양성하는 일도 맡는다. 국감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김기환 재단 이사장은 “(부담금 감소로)145억원, 운영비의 20%가 줄었다”며 “구조조정과 긴축, 다양한 재원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외교부도 부담금 개편 과정의 미흡함을 인정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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