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계엄선포는 심각한 오판·위법”
커트 캠벨 국무부 부장관 강도높은 비판 … 백악관 “계속 공개 목소리 낼 것”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 “상황을 긴밀히 추적하고 있다”는 일반론적 언급에서 “중대한 우려”, “우려스러운 계엄 선포”로 부정적 시각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던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보다 직접적이고 강한 수위로 비판적 입장을 분명히 드러낸 것이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캠벨 부장관이 워싱턴DC의 싱크탱크 아스펜연구소가 주최한 ‘아스펜안보포럼(ASF)’에 참석해 ‘주요 동맹인 한국의 비상계엄을 미국이 인지하지 못한 게 첩보 실패냐’는 질문을 받자 “윤석열 대통령이 심각한 오판(badly misjudged)을 했다고 생각한다”며 “매우 문제가 있고(deeply problematic) 위법한(illegitimate) 행동으로 이를 예측할 수 없었다”고 답했다고 보도했다. 캠벨 부장관은 “계엄법의 과거 경험에 대한 기억이 한국에서 깊고 부정적인 울림이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이 윤 대통령의 움직임에 놀랐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캠벨 부장관은 “한국 내 대화 상대자들도 매우 놀랐더라”고 답했다. 그는 “앞으로 몇 달간 한국은 도전적인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라며 “우리의 목표는 우리의 동맹(한미동맹)이 절대적으로 견고하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은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행사 연설에 나선 후 참석자로부터 한국 계엄 사태에 대한 질문에 “한국의 민주주의는 견고하고 회복력이 있다”며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한국의 대화 상대방과 사적으로 소통하며 그 중요성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설리번 보좌관은 또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계엄령에 대해 한국 정부와 사전에) 상의를 하지 않았다”며 “우리는 세계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TV를 통해 발표를 알게 됐다”고 전했다.
설리번 보좌관은 이어 계엄 선포가 “우리의 깊은 우려를 야기했다”며 “대통령이 국회의 헌법 절차에 따라 계엄령을 해제했고, 지금 일어난 일에 대응한 일련의 절차가 이뤄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런 뒤 그는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은 한국의 민주제도가 적절히 작동하는 것이며, 미국을 포함한 모든 곳에 경종을 울린 다소 극적인 발표(계엄령) 이후에도 이러한 절차가 작동하는 것을 목도했다”고 말했다.
이날 백악관은 한국 국회에서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보고된 상황과 관련해서도 “우리는 한국 국민이 이번 일을 평화적이고 민주적이며 헌법에 따라 해결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숀 사벳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대변인은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한국 국회 본회의에 보고된 이후 엑스(X·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한국은 민주적인 회복력을 보여주고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특히 “민주적 가치와 법치는 한미동맹의 핵심이며 앞으로도 핵심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어제 윤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에 '심각하게 우려'했었다”면서 “이는 한국의 헌법 절차에 따라 국회가 만장일치로 (이 선포를) 뒤집기로 표결한 뒤에 철회됐다”고 짚었다.
같은날 브뤼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외교장관회의에 참석 중인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가 국회 결의에 따라 해제된 것에 대해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철회 발표를 환영한다"면서 "(이 과정에서) 국회에서 계엄령 거부에 관한 만장일치 표결이 있었고 그는 그에 따른 후속 조처를 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모든 정치적 의견 불일치는 평화롭고 법치에 따라 해소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라면서 한국 내 상황을 계속 면밀하게 주시하겠다고 했다.
미 고위 당국자들의 공식 언급이 이처럼 강도가 높아진 것은 윤 대통령이 유일한 동맹인 미국에게도 사전통보 없이 계엄을 선포하자 미리 예정됐던 한미 확장억제 관련 회의를 취소하는 등 상당한 불쾌감을 드러낸 것과 일맥상통한다.
미 민주당 소속 의원들 사이에서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행태에 따가운 비판이 나온 상황이기도 하다. 10월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된 앤디 김 하원의원(민주·뉴저지)은 “국민의 통치라는 근본 기반을 약화시켰다”고 비난했다. 바이든 대통령 측근인 크리스 머피 상원의원도 “민주 절차를 우회해 정치적 반대를 짓밟으려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김상범 기자 clay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