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버티기에 환율 또 사상최고…1460원대까지 진입

2024-12-26 13:00:07 게재

“경제가 가장 중요하다”던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도 시간만 끌어

정치불확실성 다시 커지며 시장 요동 “신속한 탄핵절차 완료가 답”

원달러 환율이 1460원대로 진입했다. 연중 최고치이자 199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사상최대치다. 글로벌 달러화 강세 속에 국내 정치 불안이 이어진 영향이다.

26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오전 10시 30분 현재 1464.0원에 거래되고 있다. 간밤 뉴욕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에서 거래된 원·달러 1개월물은 1457.3원에 최종 호가됐다. 이날 야간장에서 환율은 1460.3원까지 치솟았다. 환율이 1460원을 넘은 건 지난 2009년 3월 16일(1488원) 이후 처음이다.

원·달러 환율은 비상계엄 발령 전날인 2일부터 17거래일 연속 1400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19일부터는 5거래일 연속 1450원을 웃돌았다. 환율이 1450원을 넘은 것은 외환위기(1997년 11월~1998년 3월)와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 11월~2009년 3월) 이후 처음이다.

◆강달러에 정국불안까지 = 환율급등의 가장 큰 원인은 글로벌 달러 강세 현상이다.

앞서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올해 마지막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내렸지만, 내년 금리인하 전망을 기존 4번에서 2번으로 줄이면서 달러 가치가 급등했다.

이에 미국 국채 수익률은 큰 폭으로 오르고 있다. 달러인덱스는 25일(현지시간) 오후 6시 기준 108.13을 기록하며 강세다. 반면 아시아 통화는 약세다. 달러·엔 환율은 157엔대, 달러·위안 환율은 7.30위안에서 거래되고 있다.

문제는 한국의 돈 가치가 다른 나라에 비해 더 크게 떨어졌다는 점이다. iM증권 집계를 보면, 트럼프 당선 이후 통화 가치 하락은 유로(-4.6%), 엔(-3.1%), 위안(-2.7%), 신흥국(-2.3%) 등이지만 원화는 5%나 떨어졌다. 환율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의 한국경제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내란사태 이후 더 커진 것으로 보인다.

실제 모건스탠리는 한국 주식시장의 비중축소 의견을 유지했다. 노무라는 내란사태 이전 제시한 내년 환율 전망치인 1500원에 도달하는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며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1.7%로 낮췄다. iM증권은 보고서에서 “비상계엄 사태에 대해 월가에서 ‘선진국이라면 벌어질 수 없는 일’이라는 부정적 시각이 있다는 것은 한국 금융시장이 이머징(신흥국) 시장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뜻”이라면서 “이러한 낙인효과가 해소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중소기업, 서민물가에 직격탄 = 고환율이 장기화하면서 기업과 가계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도 지켜만 볼 뿐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이미 고환율에 따른 부담이 커졌다는 점이다.

우선 국내 기업, 특히 중소기업에 치명타다. 원자재를 수입·가공해 수출로 먹고사는 제조 중소기업들은 환율 영향이 절대적이다. 대기업들도 최근 해외에 투자를 늘리고 있어 환율이 요동치면 그만큼 이익이 줄어든다. 산업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환율이 10% 오르면 대기업의 영업이익률은 0.29% 하락한다. 중소기업은 환율이 1% 오를 때 손실이 0.36%씩 증가한다. 가계 역시 수입 물가 상승에 따른 실질소득 감소에 국내 소비를 연쇄적으로 줄이게 된다.

가장 큰 부작용은 물가 상승이다. 달러값이 오르면 수입품 가격이 뛴다. 전량을 수입하는 원유도 가격 급등이 불가피하다. 현재 국내 휘발유·경유값은 이달 셋째 주까지 10주 연속 오름세다. 기름값이 뛰면 생산 비용이 함께 올라 물가 전반을 압박한다. 내년 원화 시세가 폭락해 물가가 폭등하는 ‘환 인플레이션’ 현상이 한국경제를 옥죌 수 있다는 뜻이다.

증시도 비상이다. 원화 가치 하락으로 외국인 투자자의 주식 매도 행렬이 잇따르고 있어서다. ‘탄핵 정국’의 불확실성이 커진 것도 자본 유출을 가속하는 요인이다.

환율 상승은 일부 수출 기업에 호재가 되기도 한다. 달러 가치가 올랐을 때 외국에 제품을 팔면 더 많은 원화를 벌어들일 수 있어서다. 하지만 수입 원자재값 상승 부담을 고려하면 환차익 효과는 미미하다.

◆박근혜 탄핵인용 되고서야 시장안정 = 정부도 이 같은 상황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국민연금을 동원하는 카드까지 꺼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담당자들이 분주하게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백약이 무효’인 상황이다. 당국은 지난 19일 국민연금과의 외환 스와프 거래 계약을 내년 말까지 1년 더 연장하고 한도를 기존 500억달러에서 650억달러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하루 뒤인 20일에는 △외평채의 룩셈부르크 증권거래소 상장 추진 △은행 선물환 한도 확대 △외화 대출 규제 완화 등을 뼈대로 한 외환 수급 개선 방안을 내놨다. 하지만 급등하는 환율을 막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원화가 트럼프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약세를 보이고 있는 위안화에 동조해 움직이는 경향이 강한 만큼 당분간은 정치 안정을 취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조언한다. 류덕현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국이 먼저 안정되는 것이 급선무”라며 “추가경정예산과 같은 재정 정책으로 고환율에 따른 피해를 보완할 필요성이 커졌다”고 밝혔다.

결국 시장과 주요국이 ‘한국의 정치불확실성 해소’를 인정하는 열쇠는 ‘탄핵절차 완료’란 지적이 나온다.

실제 과거 탄핵정국 당시 원달러 환율도 헌재의 결정 이후에야 비교적 안정되는 모습을 보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2016년 12월9일 환율은 1165.9원을 기록했고 그해 연말 1210원대까지 올랐다. 그 뒤 탄핵이 인용된 이듬해 3월10일에야 1157.4원으로 내려왔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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