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해운·항만·조선산업 화두는 ‘트럼프2.0’시대
“탈세계화 아닌 ‘다른 세계화’로 진화”
예측 어려운 변수 속 사업 전망·실행
16일 열린 한국해운협회 정기총회와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의 ‘2025 해양수산전망대회’는 ‘트럼프 변수’로 가득했다.
참석자들은 20일 두 번째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트럼프가 펼칠 정책들이 가져올 변화가 해운 항만 조선 수산 등 해양산업 전반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날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전망대회에서 기조발제를 통해 ‘2025 글로벌 경제통상 전망’을 발표한 정 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세계화가 국가안보와 국내 산업기반을 위협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글로벌 공급망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국내 생산으로 대체하려는 전략이 나타나고 있지만 이것은 탈세계화가 아닌 다른 형태의 세계화일 수 있다”며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자국우선주의 보호무역주의는 심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선박법 한국에 미칠 영향 분석해야 = 정 원장은 20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후 100시간 안에 펼쳐질 정책과 그 파장에 주목해야 한다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면 100일 안에 새 정부의 정책을 쏟아내며 변화를 추동하지만 트럼프 2기는 1기보다 더 강력하고 신속하게, 체계적으로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지난해 대통령 당선 후 10~20%의 보편적 기본관세와 상호무역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트럼프가 공언한 것처럼 보편적 기본관세 20%와 중국에 60% 추가관세를 부과할 경우 한국의 수출은 최대 448억달러(60조원 이상) 감소할 수 있고,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대미 수출은 13.1% 줄어들 수 있다.
최상희 KMI 연구부원장도 올해 ‘해양수산 전망’을 주제로 한 기조발제에서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공급망 재편, 보호무역주의강화와 관세분쟁 등을 우려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과 중동지역분쟁 등의 향방도 불확실하다.
이런 글로벌 환경은 유가하락과 달러강세로 해양수산 분야 국내기업 경영성과 불확실로 이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미 의회에서 채택한 선박법 영향도 토론주제로 떠올랐다.
토론자로 나선 최규종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부회장은 “선박법 영향과 한국 조선산업계가 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양창호 해운협회 부회장은 “미국의 선박법은 미국이 액화천연가스(LNG)나 전략물자를 수출할 때 자국 선박을 쓰겠다는 것”이라며 “2029년까지는 우리 해운기업도 미국의 전략적 파트너로 참여할 수 있지만 그 이후는 미국에서 건조한 선박에, 미국인 선원이 탄, 미국 국적 선박만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는 “2029년 이후 상황에서 우리 해운기업이나 조선사가 참여하려면 미국에 자회사를 두고 동시에 미국 선원을 태우며 운송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는 게 수지 맞을지 따져봐야 한다 ”고 덧붙였다.
이호춘 KMI 해운연구본부장은 “미국 선박법에 대해서는 경제장관회의나 국회에서도 많이 토론했는데 트럼프 2기 출범 후 확정될 것 같다”며 “법률이 확정될 시점에 구체적인 사안을 보고 대응해야 하는데 우리에게 실익이 있는지 여부를 따져서 국익에 부합하면 사업으로 연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아니면 미국이 주도하는 흐름에 말려들지 않게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 좌장을 맡은 김양수 전 한국해양진흥공사 사장은 “전망대회를 준비한 한국해양수산개발원에서 미국 선박법 내용과 영향을 분석해 내용을 제공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로벌 해운시장 공급과잉 구조에 부담 가중 = 선복량(공급) 증가율이 물동량(수요) 증가율을 앞서는 것으로 관측돼 해상운임 하락 압력을 받고 있는 해운기업들도 트럼프 2기 출범이 가져올 변화에 긴장하고 있다.

이날 서울 여의도에 있는 한국해운빌딩에서 열린 해운협회 정기총회에서 이·취임식을 가진 정태순 전 회장(장금상선 회장)과 박정석 신임 회장(고려해운 회장)은 한목소리로 트럼프 2기 출범에 따른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세계 무역량 위축이 해상운임의 본격적 하락 국면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했다.
축사를 한 송명달 해양수산부 차관도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인상 등 보호무역 조치가 중장기적으로 해상 물동량 감소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홍해사태 등 지정학적 이슈에 가려졌던 해운시장의 구조적 공급과잉까지 부각되면서 해상운임의 하방 압력이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외항해운업계 최고경영자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총회에서 정 회장은 개회사를 통해 “올해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로 인한 교역량 위축, 국제해사기구 온실가스 배출 규제 강화 등에 따른 해운업계의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며 “협회는 해운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부정책과 국정과제에 해운 분야 공약 반영, 정기선사 행정소송 대응을 통한 공동행위의 적법성 대변, 친환경 선박 투자를 위한 정부의 금융지원 확대 등을 중점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총회에서 신임 회장에 선출된 박 회장은 취임사를 통해 “유례없는 장기 불황시기에 해양수산부와 함께 해운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헌신하신 정태순 회장의 노고에 무한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면서 “앞으로 선박금융 확대, 대량화물 수송역량 강화, 노사합의 이행 및 외국인 해기사 안정적 공급 등을 통해 대한민국이 세계 3위의 해운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송 차관은 “정부는 물동량 감소, 공급과잉, 친환경 규제 등에 대응하기 위해 친환경선박 보조금 확대, 친환경선박 지원 기준 완화를 통한 중소선사 지원 강화, 위기대응펀드 규모의 확대 개편 등을 추진해 국적선사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회장 주재로 진행된 정기총회에서 협회 사무국은 2024년도 주요 추진 실적으로 톤세제도 및 국제선박등록제도 일몰 연장, 대량화물 제도개선을 통한 대량화주의 해운업 진출 저지, 한국인 선원 단체협약 체결, 회원사 임직원 대상 교육 시행 등에 대해 보고했다.
협회는 2025년도 업무추진 기본 방향을 △정부의 해운산업 경쟁력 강화 추진 △친환경 선박 지원 대책 마련 △해운 금융지원 활성화 △국적 해기인력 육성 강화 △외국인 선원 양성·확보 개선 △회원사 임직원 대상 재교육 사업 강화 등에 두고 이를 적극 추진키로 했다.
총회 후 이날 임기를 마친 정 회장은 이임사를 통해 “회원사 대표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협조로 코로나 팬데믹 물류대란 시기 추가 선박 투입하여 수출기업을 지원하는 한편, 우리 해운산업 역사상 최대의 이익을 달성한 이 시기에 이익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고자 공익재단 바다의 품과 선원기금재단을 설립할 수 있었다”고 회고하며 "앞으로도 신임 회장을 비롯한 해운협회에 대한 지속적인 애정과 관심을 당부"했다.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