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스치기만 해도 돈 내라는 인천공항공사
세계 경쟁력 1위였던 K-면세점이 추락하고 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할 정도로 인기를 끌던 사업이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고환율·시장변화와 더불어 수탈에 가까운 공항 임대료 방식 때문이다.
지난해 면세점 성적표를 들여다 보면 상태가 심각하다. 신라면세점의 지난해 매출액은 3조2819억원이다. 전년(2조9337억원)보다 11.9% 늘었다. 그러나 697억원 영업손실을 내 2023년 224억원 흑자에서 적자로 돌아섰다. 신라면세점이 영업손실을 기록한 것은 코로나19 원년인 2020년 이후 4년 만이다.
신세계면세점도 상황은 비슷하다. 매출은 2060억원으로 4.7% 늘었지만 영업손익은 전년 866억원 흑자에서 지난해 359억원 적자로 전환했다. 현대백화점 면세점은 매출 9721억원으로 2.6% 감소했으며 288억원 영업손실을 냈다. 영업손실액은 2023년 313억원에서 소폭 줄었지만 2018년 설립 후 계속 이어진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직 실적발표를 하지 않은 롯데면세점도 1000억원대 손실이 예상된다.
업계에선 주요 4개 면세업체의 지난해 영업손실액을 합하면 300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본다. 연간 영업손실 규모가 가장 컸던 2022년(1395억원)을 넘어설 것이 유력하다.
면세점 실적부진은 고환율로 인한 판매 부진, 중국인 보따리상에 지급하는 높은 수수료, 인천국제공항 임대료 부담 등이 함께 작용한 결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이중 고환율과 시장변화는 개별 업체 자체로 대응하기 힘들다. 하지만 인천국제공항 임대료는 충분한 협상 혹은 합리적 방안을 도출시킬 수 있다.
업계는 인천공항 임대료 산출 방식이 비합리적이라고 지적한다. 인천공항 면세점 임대료는 공항을 출입하는 여행객수에 따라 일정금액을 임대료로 주는 방식이다. 공항 면세구역으로 들어온 고객이 물건을 사든 안사든 임대료가 부과된다. ‘스치기만 해도 인연’이라는 말의 인천공항 버전일까. 인천공항공사는 스쳐가는 여행객에 대해서도 임대료를 내라고 한다.
신세계면세점은 인천공항 DF2구역에서 1인 여행객당 9020원 임대료를 낸다. 신라면세점은 DF1구역에서 1인 여행객당 임대료는 8987원이다. 구매력이 전혀 없는 어린이가 공항에 입장해도 책정된 임대료는 똑같다.
면세업체들은 “고객은 상품을 사지도 않는데 여행객당 부과하는 임대료로 매달 300억원씩 나간다”며 한숨이다. 상식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임대료에 대한 비판이 터져나오는 이유다.
2010년대 초반 한국 면세점 시장은 미국과 중국을 넘어 매출 세계 1위 규모였다. 지금이라도 면세업계를 살리기 위한 새판짜기를 해야 한다. 그게 어려운가.
정석용 산업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