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게임의 규칙 뒤흔들 트럼프의 첫 100일

2025-02-21 00:00:00 게재

미국 대통령의 임기 첫 100일은 미국 정치에서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대통령으로서 정치적 자산이 가장 강력한 이 시기에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가 전체 임기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첫 100일’의 연원은 대공황을 극복한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의 100일간 뉴딜정책에서 비롯됐다.

2025년 1월 20일,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가 제45대 대통령 임기를 마친 지 4년 만에 다시 제47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그의 ‘첫 100일’이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첫번째 어젠다는 전세계를 향한 관세전쟁의 선전포고였다. 물론 트럼프의 관세전쟁 선포는 ‘프로젝트 2025’에 의해 예견돼 왔고, 그의 재취임과 동시에 미국의 싱크탱크인 신미국안보센터(CNAS)가 공개한 보고서 ‘첫 100일(The First 100 Days)’을 통해 상세하게 알려져 있다. 이 보고서는 프로젝트 2025와 함께 향후 4년간 미국이 직면할 도전과 기회를 분석하고 트럼프정부가 100일 동안 해야 할 가장 긴요하고 시급한 일들을 압축적으로 담은 내용이다.

관세전쟁 선포로 시작된 트럼프의 첫 100일

트럼프 관세전쟁은 1896년 제25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월리엄 매킨리를 롤 모델로 하고 있다. ‘관세왕’으로 불린 매킨리의 관세법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트럼프는 지난달 20일 취임과 동시에 북미 지역 최고봉인 알래스카 주 디날리산의 이름을 매킨리산으로 바꾸는 행정명령에 서명해 그에 대한 존경을 표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관세뿐만이 아니라 매킨리의 대외팽창주의 정책도 본떠서 행동에 옮기고 있다. 매킨리가 대통령에 당선된 당시 미국은 고립주의 정책 노선을 걸어왔는데 맥킨리는 대외 팽창주의의 길을 걸었다. 그는 미국 군함 메인호 폭발 사고를 스페인의 소행으로 단정해 스페인에 전쟁을 선포했다. 당시 스페인은 전쟁의지가 없었고 미국은 ‘소풍 같은 전쟁’이라는 말이 생겼을 정도로 손쉽게 승리를 거두었다. 덕분에 푸에르토리코 괌 필리핀을 할양받고 쿠바를 사실상 지배하게 됐다. 또 같은 시기에 하와이도 합병했다. 매킨리는 50%가 넘는 고관세 부과와 식민지 획득이라는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두고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이라는 구호를 붙였다.

트럼프는 취임하자마자 파나마 운하 반환, 멕시코만의 미국만 변경, 가자지구 개발, 그린란드 매입, 캐나다 51번째 주, 우크라이나 희토류 획득 등 일방적인 영토확장에 대한 발언을 쏟아냈다. 실현 가능성 여부를 떠나서 130년 전 매킨리의 정책을 그대로 카피한 듯 보이는 트럼프의 영토확장과 관세전쟁은 향후 어떤 경로를 밟을지 관심이다.

취임 초기 고율 관세를 통해서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이를 통해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며 강경노선을 걷던 매킨리는 점차 관세에 대해서 양보하는 모습을 보인다. 당시 미국이 식민지를 늘리면서 추가로 시장을 확보해 경제 사정이 나아지고 미국의 관세정책에 대해 유럽 국가들의 보복관세 등이 이어지면서 공화당 내부에서 완전한 보호무역보다는 일부 완화한 조건부 자유무역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조건부 자유무역이란 보호무역과 선택적 무역개방이 결합한 형태로 미국에 유리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관세를 낮춰주거나 폐지하는 제도다.

장기화될 수 없는 고율 관세, 탄력적 대응이 필요하다

미국이 규칙을 새롭게 만들면 따를 수밖에 없는 게 우리나라의 처지이지만 고율 관세정책이 영원할 수는 없다. 관세는 단기적으로 미국의 산업에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장기적으로 다른 나라의 보복관세 역풍을 피할 수 없다. 관세로 인한 물가상승도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부작용이다. 미 샌프란시스코 연은이 계산한 바에 따르면 관세 영향으로 4.0%의 물가상승이 나타나고 이에 따른 연준의 기준금리는 5.5%까지 오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5.5%의 고금리는 미국경제로서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을 맞을 수 있다.

트럼프의 성향으로 봐서 관세위협은 관세 그 자체보다 각 국가별로 원하는 정책목표를 얻기 위한 지렛대 성격이 강하다. 고물가 상황이 자신에게 유리하지 않게 되면 매킨리도 자유무역으로 방향을 틀었던 것처럼 손바닥 뒤집듯 정책을 바꿀 가능성이 있다. 임기 2년차까지 대규모 감세와 관세위협 영토확장 등과 같은 미국 내에 인기 있는 정책으로 중간선거에서 승리를 거두고 이후로 관세를 조정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을 예측해보는 것은 무리일까. 트럼프 정책을 다각적으로 살펴보고 탄력적인 정책 대응이 필요한 때다.

안찬수 오피니언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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