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가계위기가 보험사기 부른다
인구 450만명이 안되는 아일랜드는 2000년대 중반 세계에서 경제성장이 가장 빠른 나라로 ‘켈틱의 호랑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호황으로 투자가 쇄도했고 이는 주택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
부동산값이 오르자 각종 자금이 유입됐고 돈을 빌린 투자도 급증했다. 국제금융 대출 규모는 2003년 GDP의 10%에서 2007년 60%로 치솟았다.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마이클 루이스는 저서 ‘부메랑 - 새로운 몰락의 시작 금융위기와 부채의 복수’에서 “인구수보다 주택수가 더 많은 부동산 왕국”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부동산과 건설에서 세금을 챙긴 정부는 이를 방관했다. 하지만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덮치자 부동산 거품이 꺼지기 시작했다. 유동성의 어려움을 느낀 금융권은 아일랜드에 빚독촉을 하기 시작했다. 거품이 만들어낸 통계의 착시는 참혹했다. 경제가 망가지면서 금융권의 빚독촉은 보통 사람들의 삶으로 번져갔다. 궁박해진 사람들 중 일부가 길을 찾았다. 바로 보험사기였다.
밤이 되면 아일랜드 곳곳에서 화염이 치솟았다. 폭동도 테러도 아니었다. 자신의 차에 불을 지른 이들이다. 돈을 빌려 차를 산 이들은 할부금을 갚을 길이 막막해지자 밤이 되면 화염병을 만들어 차량 주유구에 불을 붙였다.
불에 탄 차량은 쓸모없었지만 차 주인은 할부금을 갚지 않아도 됐다. 자동차보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남은 할부금은 보험사가 책임지는 구조였다. 보험사기를 입증하지 못한 보험사는 울며 겨자 먹기로 보험금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자차방화는 한둘의 일탈이 아니라 유행이 됐다. 나중에는 야간에 불이 나도 경찰도 소방도 출동하지 않았다. 국민경제 기반이 무너지면서 발생한 도덕적 해이였다. 경제적 어려움이 사회안전망 붕괴로, 보험사기로 이어진 것이다.
가계가 어려울수록 보험사기는 늘어난다. 보험사들이 보험사기 혐의가 있으면 수사를 의뢰하고 범죄 혐의가 드러나면 재판에 넘긴다. 여기저기 법원이 솜방망이 처벌을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지만 한꺼풀만 더 들춰보면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 무거운 처벌이건 아니건 유죄가 선고되면 보험사는 구상권을 행사해 보험사기 피해액 환수에 착수한다.
하지만 보험사들은 끙끙 앓는다. 보험사기에 가담한 대부분이 생계를 제대로 영위하지 못하는 취약계층이기 때문이다. 구상권을 행사하더라도 환수할 돈이 거의 없다. 보험사기가 많다는 것은 피해회복이 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사회안전망이 이미 심각해진 상태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여기저기서 보험사기 처벌을 강화하자고 한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처벌을 강화해도 피해회복은 되지 않는다. 처벌 받을 것을 알면서 보험사기에 뛰어드는 가입자들은 이미 잃을 게 없다.
오승완 재정금융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