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정부교체기와 대형재난

2025-02-26 13:00:03 게재

12.3내란사태로 가뜩이나 심란한 마당에 전국에서 크고 작은 재난과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가장 큰 충격을 준 것은 지난해 연말 전남 무안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다. 이 사고로 승객과 승무원 179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달 29일에 발생한 에어부산 여객기 화재사고는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아찔했다.지난 3일에는 경기 성남시 야탑동 BYC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해 주민 300여명이 대피하거나 구조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부산과 전남 여수, 전북 부안에서는 연이은 어선 침몰로 20여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는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25일만 해도 경기 안성시 고속도로 공사장이 붕괴돼 작업자 10명이 매몰됐다. 최근까지도 한파·폭설로 인한 재난피해부터 화재, 선박좌초 등 다양한 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불행한 일이 마치 겹쳐서 일어나는 듯하다.

정부교체기가 대형재난 대비에 취약

물론 역대 어느 정부에서도 재난과 안전사고는 항상 있었다. 다만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점이 있다. 정부교체기인 새정부 1년차에 유독 대형재난이 집중됐다는 것이다. 이는 정부교체기가 대형재난 대비에 취약하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금과 같은 권력공백기에 대형재난이 더 발생한다는 정확한 통계는 없다. 다만 과거 사례를 보면 재난으로 인한 대형참사가 이 시기에 집중됐다는 경험칙만 있을 뿐이다.

실제 사례들은 많다. ‘눈만 뜨면 사고가 터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하루가 멀다하고 대형재난이 터진 김영삼정부 시절에는 임기 첫해인 1993년 아시아나항공기가 추락하고 서해훼리호가 침몰됐다. 이어 성수대교가 붕괴됐고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육해공에서 총체적 재난이 발생한 정부로 기록됐다.

김대중정부에서는 취임 1년차인 1999년 청소년수련원 씨랜드 화재참사로 유치원생 19명을 비롯해 23명이 숨졌다. 임기 마지막 해인 2003년에는 대구지하철 참사가 일어나 192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이어서 김대중정부를 대신해 국민 앞에서 고개를 숙여야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 사건을 계기로 임기 중에 소방방재청을 신설하고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에 안전과 재난을 포함시켰다.

박근혜정부와 윤석열정부도 마찬가지다. 박근혜정부 1년차인 2014년에 경기 안산 단원고 학생 등 304명이 숨지는 역대 최악의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세월호는 그해 4월 16일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을 포함해 476명의 승객을 태우고 인천을 출발, 제주도로 향하던 중 전남 진도군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구조를 위해 해경이 도착했을 때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했던 선장과 선원들이 승객들을 버리고 가장 먼저 탈출했다. 해경이 출동했지만 구조된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윤석열정부가 들어선 해인 2022년에도 대형사고가 발생했다. 그해 10월 29일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동 세계음식문화거리의 해밀톤호텔 서편 골목에서 핼러윈 축제로 수많은 인파가 몰려 159명이 압사사고로 사망하고 195명이 부상을 당했다.

그리고 12.3내란사태 이후 채 한달이 지나지 않은 시점인 2024년 12월 29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으로 착륙하던 제주항공기가 동체 착륙을 시도하던 중 활주로를 이탈해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탑승자 181명 중 179명이 사망했으며, 승무원 2명만 부상을 입고 생존했다.

혼란기일수록 재난과 안전사고에 더 경각심을

이쯤 되면 정부교체기와 대형재난 간 상관관계가 전혀 없다고 볼 수는 없다. 지금같이 내란사태로 인해 국정공백 상황이 장기화되고 경제상황까지 나빠져 사회 전반이 이완된 시기를 조심해야 한다는 얘기다.

정부교체기는 정치적 변화로 인해 정책 우선순위와 자원 배분이 조정되는 시기다. 이로 인해 재난대응체계에 일시적인 혼선이 발생할 수 있다. 다만 대형재난이 발생하는 것은 정치적 요인만이 아닌 인적·자연적 요인 등 다양한 복합적 요소가 작용한다. 따라서 정치적 요인만을 부각해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

재난 대비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이다. 이념이나 정당의 색깔에 따라 재난과 안전사고에 대비하는 일이 영향을 받아서는 안된다. 정부와 지자체는 혼란한 시기일수록 재난과 안전사고에 더욱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지금과 같은 권력공백기는 더욱 그렇다.

홍범택 자치행정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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