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상아탑까지 혐오 정치판 만드나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최후진술을 하루 앞둔 지난 24일 부산대 앞에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정문을 사이에 두고 좌측은 탄핵찬성, 우측은 탄핵반대를 외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뒤섞였다.
500여명의 인파 중 부산대 재학생과 동문들은 일부일 뿐 어디에서 왔는지 모를 태극기 든 인파들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온갖 욕설과 고성이 일방향에서 흘러나왔다. 부산대 앞 한 상인은 “차마 듣고 있을 수가 없다. 대학이 이렇게 혐오스러운 집회장이 될지 몰랐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런 유의 대학가 탄핵반대 시국선언은 지난 10일 연세대를 시작으로 서울대 고려대 등에서 줄을 이었다. 놀라운 것은 집회의 성격이다. 권력을 공고히 하려고 군인과 총을 동원한 친위쿠데타를 너무도 당연시 한다는 점에서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 권력자의 친위쿠데타는 어김없이 장기집권의 초석이 됐음을 이들은 모를까. 이승만정권은 한국전쟁 중인 1952년 5월 계엄령을 선포해 헌병대를 동원, 야당의원들을 무더기 압송하는 부산정치파동을 주도했고, 이는 장기집권 조치로 이어졌다. 박정희정권의 1972년 10월 계엄령은 직선제를 체육관선거로 바꾸는 유신헌법 개헌으로 이어졌다. 이번 윤석열정권의 12.3 비상계엄 역시 장기집권을 꾀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독재권력의 장기집권 기간은 엄혹한 시기다. 정치적 반대파의 목소리를 철저히 탄압하고 잠재웠던 것은 역사가 아는 사실이다. 이런 장기집권을 막기 위해 큰 희생이 따라야 했다. 이승만정권을 무너뜨렸던 4.19혁명에서는 학생과 시민 183명이 목숨을 잃었다. 박정희정권의 장기집권을 막은 것도 대학과 학생이다. 부산대에서 시작된 10.16 부마민주항쟁에서 1560명이 연행되고 120여명이 군사재판에 회부되는 고초를 겪으며 18년 군부독재를 무너뜨리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5.18 광주민주항쟁과 6.10 민주항쟁에서도 대학과 학생은 저항의 중심에 있었다. 그 시절 대학은 국민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고 광장의 역할을 맡았다.
그랬던 대학을 탄핵반대 세력들이 선전의 공간으로 만들고 있다. 이런 탄핵반대 시국선언은 건국대 이화여대 서강대 성균관대 등에서도 예정돼 있다. 부산에서는 동아대 부산외대가, 광주에서는 전남대와 조선대에서 열릴 예정이다. 여기에는 학생들 아닌 세력들이 퍼나르기를 하며 참여를 독려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앞으로가 더 걱정스럽다. 이런 식의 집회는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 결과를 떠나 극심한 후유증을 남길 공산이 크다. 특히 학생이 아닌 외부세력까지 대학에 들어와 극단적 정치판을 만드는 것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곽재우 자치행정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