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트럼프 관세의 나비효과

2025-03-07 13:00:03 게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4일(현지시간) 워싱턴 DC 연방의사당에서 열린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 주한미군 문제와 관세, 알래스카 에너지 개발 사업, 반도체지원법을 아우르며 한국에 거액의 청구서를 내밀었다. ‘4배의 관세’를 꺼내들었으니 ‘거래의 기술’이라는 책을 쓴 거래의 달인답게 한국으로부터 최소 ‘2배’ 정도는 받아갈 것으로 보인다. 4% 관세율이라는 것이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트럼프도 모를 리 없겠지만 관세전쟁을 관철하기 위한 ‘트럼프식 협상’의 일환일 것이다.

트럼프의 청구서는 추가 방위비 분담이거나, 트럼프가 선호하는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구매 또는 파이프라인 사업 참여이거나, 미국 현지 제조시설에 대한 추가 투자이거나,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약 6%에 달하는 막대한 연방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한 장기국채를 매입하는 등의 다양한 패키지가 제시될 것이다.

한국정부는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인 미국의 수입품에 부과하는 관세는 이보다 훨씬 낮은 0.79%(2024년 대미 수입품에 대한 실효관세율 기준) 수준이라는 주장으로 트럼프의 공격을 방어하겠다지만 설득이 트럼프에게 먹힐지는 미지수다.

거래의 달인 트럼프의 절반 후려치기 협상 전술

트럼프는 지금까지 기초적인 사실관계가 맞지 않는 내용을 부풀려 말하는 식으로 상대방을 압박해 협상 테이블에 끌어들인 뒤 절반을 후려치는 방식을 자주 써 왔다. 트럼프는 의회 연설에서도 “내가 ‘숫자’(관세율)만 가지고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얘기는 아니다. 수치 외의 사안들도 고려해서 불공정 무역을 바로잡겠다”라고 했다. 보조금·검역 등 한국의 비관세장벽을 문제삼아 다양한 방법으로 목표를 관철할 가능성을 시사한 셈이다.

트럼프의 첫번째 목표관철로 지난 1월 20일 취임 당시 약속한 파나마 운하 운영권을 초단기간에 인수한 사례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4일(현지시간) CK허치슨 홀딩스는 블랙록과 글로벌 인프라 파트너스, 터미널 인베스트먼트 리미티드 등 블랙록 컨소시엄에 파나마 운하 항구 운영권을 매각한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케이먼 제도에 등록된 홍콩의 복합기업이다. 중국 광둥성 출신 리카싱과 그 가족이 지분 30%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CK 허치슨 홀딩스는 파나마 운하가 정치적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고 바로 조치를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린란드 일부 매입 또는 미 연방 자치주 편입과 같은 목표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흘러갈 수 있다.

그러나 동맹국이든 비동맹국이든 구분하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강공을 펼치는 트럼프의 일방주의가 지속가능할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도 많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이자 지금의 무역체제를 만든 미국의 ‘자유롭고, 예측 가능하며, 규칙에 기반을 둔 무역관계’의 파괴는 많은 부작용을 일으키고 해당국들의 반발과 각성을 불러오는 ‘나비효과’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미국경제가 전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7%인데 나머지 70% 국가들의 자구책과 반발은 예상외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특히 그동안 경제가 좋지 않았던 중국과 유럽연합은 부양책을 사용하며 경기 활성화를 자극하면서 시장이 깨어나고 있다.

트럼프 관세 지지여론 하락조짐, 연준 베이지북은 관세 불확실성 언급

미국 CBS 여론조사에 따르면 트럼프의 근거없는 관세전쟁에 대해 부정 47.9%, 긍정 47.6%로 역전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시장의 추이와 지지율에 트럼프도 반응을 할 수밖에 없는 시점이 올 것이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지역 기업들의 의견을 조사한 베이지북에서 미국 전역의 기업들이 관세와 관련한 트럼프정부의 새로운 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을 크게 우려하고 있고, 일부 기업은 선제적으로 가격 인상에 나섰다고 5일(현지시간) 밝혔다. 베이지북에서 ‘관세’는 49번 언급됐고, ‘불확실성’이라는 표현은 47번 등장했다.

정치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공화당이 백악관과 상·하원 의회를 모두 장악하는 레드 스윕(공화당 상징색인 ‘red’와 ‘싹쓸이’라는 뜻의 ‘sweep’을 합친 표현)을 달성하기는 했지만 하원의 경우 220대 215석으로 신승했다. 현재 2자리 공석이 발생해 218대 215 상황이다. 주요한 정책 표결에서 각 주별로 입장이 갈리면서 3~4표가 이탈하면 트럼프 입법이 무산될 수도 있다. 또 지지율이 흔들리면 공화당 일부에서 강경 관세정책에 반발이 나올 수도 있다. 한국은 트럼프의 관세청구서에 응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지만 미국 내 상황 추이를 보면서 국익을 최대한 지켜내는 협상전략을 세울 때다.

안찬수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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