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민간위탁사업 다시 회계감사 받는다…결산서 ‘신뢰하락’ 막아
조례 개정으로 ‘간이한 검사 → 회계감사’로 변경
서울시의회 “사후검증 강화 필요성” 개정안 통과
지자체 전반에 영향, 공공분야 감사 강화 추세
서울시 민간위탁사업이 다시 회계감사를 받게 됐다. 약 1조원에 달하는 민간위탁 사업비에 대한 검증을 ‘간이한 검사’로 변경해 진행하려던 조치에 제동이 걸린 셈이다.
서울시는 2014년부터 실시한 민간위탁사업에 대한 회계감사를 서울시의회의 조례 개정에 따라 간이한 검사로 변경·추진했지만 서울시 전체 결산 과정에서 재무제표에 대한 ‘의견 거절’ 가능성(내일신문 2025년 3월 6일자 보도) 등의 우려가 커지면서 다시 회계감사로 급선회한 것이다.
7일 서울시의회는 본회의를 열고 민간위탁 ‘사업비 결산서 검사’를 ‘회계감사’로 변경하는 내용의 ‘서울특별시 행정사무의 민간위탁에 관한 조례’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재석의원 62명 중 37명이 찬성했고 반대 2명, 기권 23명이다.
서울시의회 기획경제위원회는 지난해 12월 17일 위원회안으로 조례 개정안을 발의했다. 위원회는 “수탁기관의 민간위탁 사업비 사용내역 등에 대한 사후검증 절차를 강화할 필요성이 제기됨에 따라 이러한 내용을 반영해 조문을 정비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독립된 제3자 인증 필요성 확인 = 개정 조례 주요 내용을 보면 ‘사업비 결산서 검사’ 관련 규정을 삭제하고, 민간위탁 운영평가위원회 위촉 기준을 상세화 했다. 또 사업비 결산서 검사를 회계감사로 변경했다.
따라서 ‘사업비 결산서 검사’ 업무 수행에 참여할 수 있었던 세무사들은 결산서 검증이 회계감사로 강화됨에 따라 업무 수행이 불가능해졌다.
이번 서울시 조례 개정을 놓고 회계사와 세무사의 영역 다툼이라는 시각이 존재하지만, 민간위탁 사업에 대한 ‘독립된 제3자의 인증’이 필요하다는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검사는 위탁자와 수탁자 모두 동일한 지위에서 진행되는 것이라서 공인회계사가 하든 세무사가 하든 인증이 될 수 없다. 인증을 부여하는 회계감사와 같은 신뢰성이 창출되기 어렵다는 말이다. 감사는 적격성과 독립성을 갖춘 제3자가 수행하는 업무로, 신뢰성 창출을 목표로 하는 인증업무를 의미한다.
서울시 전체 결산 과정에서 민간위탁 사업비에 대해서만 감사가 아닌 검사로 진행될 경우 전체 재무제표 검토(인증) 과정에서 서울시는 적정 의견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지방자치단체 재무제표는 공인회계사의 인증을 받는데, 문제가 없으면 ‘적정’을 받지만 ‘한정’, ‘부적정’, ‘의견거절’을 받을 수 있다.
◆6년 논란 종지부 찍어 = 서울시 조례 개정을 놓고 논란이 벌어진 것은 20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울시 의회 채인묵 의원이 회계감사를 ‘사업비 결산서 검사’로 변경하고 회계사 또는 세무사를 검사인으로 지정하는 내용의 조례안을 대표발의했다. 당시 서울시는 금융위원회에 조례안의 상위법령 위반여부를 질의했고, 금융위는 공인회계사법 위반 조례에 해당한다고 회신했다. 당시 금융위의 유권해석에 기획경제위원회는 조례안 심사를 보류했다. 하지만 2년 후인 2021년 12월 기획경제위는 조례안을 가결했고 2022년 본회의에서 개정안이 통과됐다. 서울시는 대법원에 제소하고 집행정지결정을 신청했다. 대법원이 집행정지를 받아들인 후 서울시의회 허 훈 의원은 사업비 결산서 검사를 회계감사로 재개정하는 조례안을 대표발의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대법원이 서울시의 청구를 기각하면서 분위기가 다시 바뀌었다. 다만 대법원이 판단한 것은 지자체의 자치 입법 재량권을 인정해 민간위탁사무 수탁기관에 대한 지자체장의 관리, 감독 방법(엄격한 회계검증 또는 간이한 검사)을 조례로 선택해 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 준 것이라고 해석하기 보다는 지자체의 재량권으로 본 것이다.
대법원이 상위법령 위반은 아니라고 판단하면서 서울시 기획경제위는 허 훈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부결시키고, 기획경제위원장이 다시 발의한 조례개정안(회계감사로 변경)을 지난해 12월 가결시켰다.
◆비영리부문 회계감사 강화 추세 = 사회 전체적으로 비영리부문의 회계감사는 강화되는 추세다. 사립대학과 공익법인에 대한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4+2)가 2022년 시행됐다. 연속 4개 회계연도 이후 연속하는 2개 회계연도에 대한 결산서 제출시 정부가 지정하는 외부감사인으로부터 회계감사를 받도록 한 것이다.
2021년에는 집합건물 외부감사가 의무화됐고, 지난해부터는 150세대 이상 공동주택에 대한 외부감사가 의무화됐다.
서울시의회가 민간위탁사업에 대한 회계감사 폐지 논란이 이어지는 동안 공공분야 감사는 계속 강화된 것이다.
이 같은 사회적 추세와 달리 다른 지자체들은 서울시의회와 마찬가지로 회계감사를 없애는 조례 개정에 나서면서 전국적으로 지자체 민간위탁사업에 대한 회계감사가 무력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경기도의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지난해 12월 개정 조례안을 부결시켰지만 다시 논의를 진행하기로 했으며 경상북도 의회에는 개정 조례안이 발의된 상태다.
하지만 이번에 서울시의회가 민간위탁사업에 대한 검사를 회계감사로 변경하는 내용의 재개정 조례안을 통과시킴에 따라 다른 지자체들의 결정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