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주치의 일차의료 혁신

디지털헬스와 지역의료 통합, 고령사회 의료부담 해결

2025-03-11 13:00:25 게재

선진국은 이미 도입 중 … 의사-환자 신뢰관계 기반한 지속 건강관리로 복합만성질환 효율적 대응

인구 고령화와 복합만성질환의 증가, 기대수명과 건강수명의 격차 그리고 가파른 의료·요양비용 증가는 우리나라 보건의료 정책 추진에 있어 주요한 과제를 던져준다. '유병장수시대'로 대변되는 여러 의료 문제에 빠져 있는 고소득·인구고령 국가에서는 ‘예방 및 일상생활 건강관리서비스’를 기존 치료중심 의료체계에 추가해 강조함으로써 기본적인 해결책으로 제시되곤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30여년 전부터 지역 일차의료 강화와 주치의제적인 의료체계를 구축하자는 문제 제기와 논의들이 이어져 왔다. 하지만 현실화되지 못하고 과제로 남아 있다. 최근 기존 일차의료 강화에 더해 새로운 디지털헬스케어 기술을 접목함으로써 의료비 절감과 건강관리 효율성을 높이자는 주장들이 이어지고 있다. 관련해서 '디지털주치의제'관점에서 일차의료를 혁신하자는 내용을 공유한다.

주치의 비대대면 상담하는 모습. 사진 이미지투데이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기존 정보통신기술(ICT),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모바일 등 새로운 기술을 이용한 디지털헬스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이런 디지털헬스를 일차의료 강화와 구축에 접목하자는 의견이 제기된다.

11일 황준원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바이오헬스정책연구센터 수석연구원은 ‘국내 일차의료 혁신·강화를 위한 디지털주치의제(가칭) 도입 필요성 검토’ 보고서에서 “고령화와 코로나19 팬데믹, 만성질환의 증가와 치료·관리의 어려움은 가파른 의료비용의 상승을 가져오고 건강보험재정 측면에서 큰 불안 요소로 등장했다”며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지역일차의료 혁신과 통합서비스 제공, 그리고 디지털헬스를 통한 건강관리의 중요성이 대두됐다”고 밝혔다.

강재헌 강북삼성병원 교수는 “일차의료 주치의가 디지털헬스케어 기술을 활용 적용하면 지역사회 주민의 질병 예방, 만성질환 관리와 의료전달체계 구축을 보다 비용효과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며 “이 때문에 세계보건기구에서도 일차의료에 디지털헬스케어를 도입 적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디지털헬스기술 원격진단 가능. 사진 이미지투데이

◆고령인구와 만성질환 증가 추세 = 인구집단 고령화는 만성질환 발생에 따른 복합만성질환 유병률도 함께 증가시키고 있다. 합병증 발생 위험과 장기입원 문제 등을 해소하기 위한 통합적이고 연속적인 의료서비스가 요구된다.

복합만성질환은 질환 종류에 관계없이 2개 이상의 만성질환을 동시에 앓는 경우를 말한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연령층의 만성질환 유병률은 전체 인구 유병률보다 높다. 75세 이상 후기 노인층들은 요양·입원 기간이 급격히 길어지며 의료부담 능력 상실로 의료이용을 하지 못하는 경우를 경험한다.

2023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노인이 평균 2.2개 만성질환을 앓고 있다. 3개 이상의 만성질환을 앓는 경우도 노인인구의 35.9%에 이른다. 다빈도 복합만성질환 유형을 보면 고혈압-고지혈증(15.2%), 고혈압-당뇨병(13.4%), 고혈압-당뇨병-고지혈증(12.4%) 조합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여기에 우리나라 기대수명은 2022년 83.5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80.5년보다 높은 상위권에 속한다. 유병장수로 대변되는 지표다.

여기에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만성질환자들의 감염병에 대한 높은 취약성을 확인하게 됐다. 미국심장학회(2020년)에 따르면 코로나19 환자 중 만성질환이 있는 경우 심혈관질환(10.5%), 당뇨병(7.3%). 만성호흡기질환(6.3%), 고혈압(6.0%)로 높은 치사율을 보였다.

한편 코로나19 대유행기에 경험한 의료기관 이용 접근성이 어려웠던 경험은 디지털헬스 기술 이용의 중요성이 두드러지게 확인되는 과정이기도 했다.

◆의료선진국 디지털헬스 정책 확산 = 주민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제공되는 일차의료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또는 자주 찾는 의사 또는 의료기관을 일컫는다. 일차의료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주치의는 최초 접촉, 전인적이고 포괄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치료를 포함한 △예방 △건강증진 △의뢰·회송 등을 담당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일차의료체계가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정부의 의료개혁 논의 과정에서 지역일차의료체계 구축과 시행 필요성이 제기됐다. 하지만 충분한 논의와 합의된 시행안을 세우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치의제도는 일차의료전문의가 자신을 선택한 지역주민(환자)와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일차의료를 수행한다. 오스트리아 덴마크 등 유럽에서는 주치의등록제가 있어 환자나 환자의 가족은 주치의로부터 질병치료는 물론 의사 간호사의 방문서비스나 전화를 통한 정기적인 상담이 가능하다.

이런 일차의료와 주치의제도에 최근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주치의제도의 오랜 전통을 가진 영국의 경우 국가보건서비스(NHS)의 디지털헬스케어 계획으로 △전자장비를 이용한 환자 모니터링 △데이터 분석을 통한 만성질환 예측 △모바일 셀프 건강관리 등 ‘디지털 돌봄체계’를 마련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영국의 관련 사업 중 8개 시범지역 비당뇨성 고혈당증 대상으로 당뇨예방프로그램을 12개월간 제공한 결과, 당화혈색소와 체중감소 효과를 보인 연구가 있다. 고혈당증 환자 대상으로 앱, 손목밴드를 이용한 당뇨예방 프로그램이었다.

유럽 국가 중 비교적 최근 2005년에 주치의제도를 도입한 프랑스는 일반의 전문의 상관없이 주치의 협약이 맺은 의사의 방문진료 수가를 우대한다. 디지털기술을 활용해 다양한 의료 전문가들의 연계와 협업을 유도하고 환자들은 여러 의사들을 찾을 필요없이 연속적인 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내 건강(Ma Sante) 2022’를 추진 중이다.

독일은 ‘디지털의료법’을 제정했다. 보건의료시스템을 디지털화하고 현대화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디지털애플리케이션의 처방과 전자의무기록의 촉진, 텔레메디신과 화상 진료를 통해 의료서비스 접근이 어려운 환자들에게 혜택을 주도록 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지역의료권’ 개념을 도입해 지역포괄케어시스템을 통해 지역의 포괄적인 지원과 서비스 제공체계 구축을 추진 중이다. 특히 원격의료 필요성을 인식하고 지역중심 보건의료 거버넌스 구축과 함께 통신기술의 집약적 향상과 보건의료 데이터의 포괄적인 연결망을 통해 원격진단-치료-수술 등이 가능해지도록 정비계획을 발표했다.

황 수석연구원은 “국제적 특징은 코로나19 이후 일차의료강화와 질환예방, 건강증진을 위한 원격의료 필요성이 확대되고 비대면의료서비스 강화 등 디지털헬스의 정책 전환을 위한 혁신들이 공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30년간 논의만, 시행 필요성 증대 = 해외 국가들과 유사한 문제를 안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일차의료 강화와 주치의제 도입을 위한 논의들이 있었다. 지금은 발전된 디지털헬스 기술과 접목으로 현실화할 필요성이 높아졌다.

1996년 국내 최초로 주치의제도 시범사업 시도가 있었다. 1998년에는 단골의사제도라는 유사정책을 추진됐다. 하지만 사회적 의제화가 부족했고 의료계 등 이해관계자 설득 미흡, 범정부 차원의 준비 소홀, 국민 홍보 부족 등으로 논의 단계에 그치고 말았다.

하지만 코로나19 대유행기를 거치면서 비대면 치료를 국민들과 의료계가 경험하게 되면서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정부 차원에서 디지털뉴딜의 방안으로 원격의료를 포함한 비대면 산업 육성 계획이 진행됐다.

국회 차원에서도 본격적인 고령사회 대비를 위한 만성질환관리 차원에서 주치의제도 논의도 이어져 왔다. 2009년 국회 입법조사처는 ‘고령사회 대비 주치의제도 도입 검토’를 발간했다. 최근에는 건강보험공단 주최로 ‘한국형 주치의제도 모형’의 윤곽을 발표했다.

국회입법조사처 보고서에서는 고령사회를 대비해 주치의제도가 만성질환 관리를 위한 포괄적인 의료서비스 형평성을 증진시키면서 현행 의료전달체계를 효율화할 수 있음을 밝혔다. 영국 등 선진 국외 사례를 들면서, 의료공급자 설득을 위한 의료기관 종별 차등제 보상이나 주치의 서비스 프로그램 개발과 운영, 효과적인 거버넌스 작동을 전제 조건으로 들었다.

건보공단 주최 발표에서는 ‘한국형 주치의제도’ 모델로 △단독개원 형태 △그룹개원 형태 △다학제팀 관리 형태(의료 교육 복지 돌봄)로 제시됐다. 일차의료지원센터는 지역사회 일차의료에 대한 지원 교육과 함께 지역네트워크를 △2·3차 병원, 지역특성화의원, 지역돌봄기관을 확대 관리 역할을 기대했다.

그리고 올 1월 정부가 ‘일차의료 혁신 연석회의’를 개최하고 일차의료시범사업, 묶음 수가 등 성과기반 보상에 관한 논의가 시작되면서 고령사회의 만성질환과 노년 의료비 절감을 위한 일차의료 강화를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의사-환자 지속관계 가능 환경 선행돼야 = 이러한 국내 변화가 시작되면서 디지털주치의제 도입 제안이 주목된다. 황 연구원에 따르면 디지털헬스 서비스 효과성이 검증된 방식으로 기존 의원급 중심의 만성질환관리시스템에 디지털 기술을 접목하고 보건소와 주민자치센터, 일차의료지원센터를 연결하고 유형별로 상용치료원을 두고 있는 곳을 ‘디지털주치의’로 지정하고 환자와 의료진 간 신뢰를 바탕으로 집중관리할 수 있다.

'디지털주치의제'를 시행을 하려면 선행돼야 할 부분들이 많다.

강정화 한국소비자연맹 회장은 “디지털기술을 활용한다고 해도 주치의 같은 (등록)의사와 지속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제도가 선행되어야 하고 환자의 디지털 활용능력을 같이 키워줘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의 비대면진료에 대한 조사결과, 의사와 환자 모두 가장 크게 느끼는 어려움은 소통·기술이었다.

황 수석연구원은 “제도 참여 대상과 서비스 영역 확정, 진료비 지불방식, 주치의 자격부여 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각 이해 주체들 간의 신뢰 회복과 노력들이 뒤따라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

김규철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