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떼일라” 불안한 홈플러스 중소업체들
1월 정산지연 사례도 나오지만 실력행사도 어려워
홈플러스 “소상공인 우선 변제…대출 이자도 지급”
수십억에서 수백억 물린 대형 납품업체도 속앓이 중
홈플러스가 법정관리에 돌입하며 대금 정산이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업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납품 중단 등 실력행사에 돌입한 대형 유통사와 달리 영세 납품업체와 입점업체들은 정산 지연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소업체들에 비해서는 홈플러스와 협상력을 가진 대형업체들도 속앓이 중이다.
1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홈플러스가 기업회생 절차 개시를 신청하면서 일부 납품업체와 입점업체들의 납품대금 정산이 늦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산일 직전 회생절차” = 1월 대금을 받지 못했다는 사례도 일부 나오면서 정산을 받지 못한 중소 납품업체들이 큰 피해를 입었던 지난해 티몬·위메프(티메프) 상황이 반복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진다.
입점업체들에 따르면 1월 판매대금의 경우 통상 2월 말 정산된다. 올해는 설 연휴에 따라 지난 4일로 연기된 상황에서 이날 홈플러스가 기업회생 절차에 돌입하면서 정산이 지연됐다.
지난 9일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간담회에 참석한 피해점주 A씨는 “회생 절차가 진행된 시간 자체가 악의적”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홈플러스가 4일 0시 3분에 기업회생을 신청하고 법원은 오전 10시부터 재판을 열어 오전 11시에 기업회생개시 결정을 내렸다”면서 “이때 결정이 나게 되니 1월 판매분을 정산받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피해점주 B씨는 “이번달 인건비와 식자재비 등 고정금액은 적금을 깨고 마이너스통장 개설해 메꿨지만 앞으로가 걱정된다. 돈을 빌릴 수 없어서 휴무하는 업주들도 있다”며 “사측에서 ‘돈을 갚겠다’고는 하는데 어떻게 변제할 건지는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는 각자 지점에서 담당 직원들이 정산에 대해 전언해주고 있는 수준이지 공식적인 문서나 홈플러스측의 공식적인 이야기는 없다”고 덧붙였다.

◆“대금 물려 있어 상품 빼기도 힘들어” = 납품업체들에 대한 대금 지급도 난항이다.
당초 홈플러스는 이번 주 중에 미지급 대금 입금이 완료될 것이란 입장이었다. 하지만 10일 다시 입장문을 내고 “오는 14일까지 상세 대금 지급 계획을 수립해 각 협력업체에 전달하고 세부적으로 소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입장 변화로 인해 납품업체들 사이에서 대금 지급이 더 늦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이는 소규모 납품업체뿐 아니라 수십억원서 수백억원의 대금이 물려있는 대형 업체들도 마찬가지다.
한 대형 납품업체의 대표는 “불안하지만 영업이 중단되면 그마저 한 푼도 건질 수 없다는 판단에 납품은 계속하고 있다”면서 “대금 정산 주기를 앞당기고 공급량을 조절하고 있지만 불안감에 하루하루가 힘들기는 중소기업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홈플러스가 회생해 밀린 대금을 정산하는 것 말고 뾰족한 해결책도 없다”면서 “홈플러스와 대주주인 MBK가 추가 투자 등 채권단과 입점·납품업체들이 회생 가능성을 믿을 수 있도록 신뢰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식품업계는 홈플러스 상거래대금 정상화에 따라 2월 대금은 정산 받았지만 1월 대금은 여전히 채권으로 남아 있다. 이렇게 남은 채권은 업체별로 50억~150억원으로 추산된다.
납품품목이 다양한 업체일수록 채권 금액도 크다.
식품업체들은 당장 채권 회수가 되고 있지 않지만 납품을 중단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납품을 중단하면 상거래채권일지라도 기존 대금정산이 중단되기 때문이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현재 대금이 물려 있는 상태에서 상품을 빼기는 힘들다”며 “현재 상황을 계속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상공인·영세업자 우선 지급 = 홈플러스는 2024년 12월부터 지난 2월까지의 상거래채권 규모가 약 3457억원이고 가용 자금은 6000억원 이상으로 정산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현재 상거래채권 대금이 상당 부분 지급됐고 순차적으로 계속 지급하고 있다”며 “도급사의 경우 지난주 지급이 돼야 했을 정산 건은 이번 주 중 지급을 완료할 계획이며 나머지 입점사도 순차적으로 지급되고 있다”고 밝혔다.
홈플러스가 지급해야 할 대금(채권)은‘공익채권’과 그 전에 발생한 ‘회생채권’으로 분류된다.
회생절차가 개시된 3월 4일 이전 20일 이내에 발생한 채권은 ‘공익채권’으로 분류된다. 반면 20일 이전에 발생한 채권은 ‘회생채권’으로 분류된다. ‘회생채권’ 지급을 위해서는 법원의 승인이 필요하다.
법원은 지난 7일 3457억원에 달하는 회생채권 변제를 허가했다. 홈플러스는 ‘회생채권 변제 허가 신청’에 대해 법원의 승인이 남에 따라 소상공인·영세업자·인건비성 회생채권을 우선적으로 지급하고 대기업 채권도 분할 상환한다는 계획이다.
◆은행권 긴급 지원 나서 = 한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대금 정산 지연으로 자금난을 겪을 가능성이 커지자 은행권도 긴급 금융지원에 나서고 있다.
하나은행 우리은행 등 시중은행들은 기업회생절차로 어려움을 겪는 입점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의 경영 안정을 위해 최대 5억원 규모의 긴급경영안정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은행별로 금리 우대, 수수료 감면 등의 내용도 포함됐다.
홈플러스측은 은행권의 긴급자금 대출을 받은 중소 협력사들에게 대출 이자를 지급하겠다는 입장이다.
장세풍·정석용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