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고립·은둔 청소년이 숨 쉴 곳은 어디?
“친구 등 대인 관계 어려움으로 은둔 생활을 시작했어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다시 은둔하게 됐어요.”
여성가족부와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26일 발표한 ‘고립·은둔 청소년 실태조사’ 내용 중 일부다. 이번 조사는 중앙정부 차원에서 처음으로 고립·은둔 청소년 현황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고립·은둔 청소년 문제가 최근의 일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일본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가 우리나라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한 때는 2000년대 초반이다. 하지만 이후 이렇다 할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렀고 문제는 커져만 갔다.
2021년 고립·은둔 청소년 기획 취재를 위해 만난 아이들이 겪는 어려움은 하나로 정의하기 어려웠다.
직접 말을 하지 않은 채 휴대전화에 문자를 써서 소통하는(그것도 친밀감을 형성한 사람과만) 청소년이 과연 어떤 생각을 하는지 단기간의 취재로 이해하기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한가지 사실은 분명했다. 인공지능 등 각종 기술이 발달해도 청소년기에 겪는 어려움의 본질은 동일하다는 점이다. 다만 이들이 겪는 어려움이 표출되는 수단이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고 자연히 대응하기가 더 쉽지 않아졌다는 게 현실이다.
이들이 겪는 어려움을 해당 현상만을 해결하는 식의 단편적인 접근으로 극복할 수는 없다. 학교-사회-가정 세가지 영역에서 유기적인 연결이 이뤄져야 한다. 해당 청소년의 삶 전체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야 하는 건 기본이다.
이번 실태조사에서 고립·은둔 생활을 하게 된 이유는 친구 등 대인관계 어려움이 65.5%로 가장 많았다. 또한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된다는 응답이 68.8%나 됐다.
중장년이나 노년기에 은둔생활을 시작하는 이들과 달리 아동·청소년기에 시작되는 은둔은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좌절이나 실패를 겪는 일들이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인간 대 인간으로 존중받지 못하고 다름을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수단으로 은둔생활을 택하게 될 수도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도움은 거창한 게 아니었다. 이번 실태조사에서 청소년들이 필요로 하는 사항 중 ‘눈치 보지 않고 들러서 머물 수 있는 공간’이 79.5%로 가장 많았다. 이들은 척박한 현실에서 한순간이라도 편안하게 숨을 쉬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고립·은둔 경험을 한 이가 기자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고립·은둔도 경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그의 꿈처럼 패자부활전이 가능한 시대는 과연 언제쯤 가능할까.
김아영 정책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