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라면 트럼프관세 앞 ‘희비 쌍곡선’
농심, LA공장서 20년 생산 ‘여유속 관망’ … 삼양식품, 가격·마진 놓고 ‘심난한 셈법’
K라면 ‘2강’ 농심과 삼양식품이 미국 트럼프 대통령 관세공격에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일찌감치 미국 현지서 라면을 생산해 온 농심은 여유롭게 관망하는 분위기인데 반해 국내서 만들어 미국에 전량 수출하는 삼양식품의 경우 판매가격을 올리든 마진을 포기하든 ‘심난한 결정’을 내려야 할 처지다.
특히 불닭볶음면 ‘깜짝 열풍’으로 최근까지 역대 최대 실적을 이어왔던 삼양식품은 농심처럼 미국 현지생산체제를 만들어 놓지 않은 게 더 뼈아프게 됐다. ‘불확정성의 원리’를 고려치 않아 ‘새옹의 말’로 전락했다는 얘기다.
11일 증권가와 라면업계에 따르면 지난해만 5331억원어치 라면을 미국에 팔고 있는 농심이 25%에 달하는 미국 상호관세(9개월 유예 10% 부과)에도 타격을 거의 받지않을 것으로 분석됐다. 미국 현지공장에서 생산해 상호관세를 일절 부과 받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농심 해외 매출액이 1조3037억원인 점을 고려하면 미국 현지 판매량은 전체 해외매출의 40% 이상을 차지한다. 그만큼 미국 비중이 크고 중요했다는 애기다.
농심은 앞서 지난 2005년 고 신춘호 선대회장 때 미국 로스엔젤레스(LA)에 라면 생산공장을 세웠다. 미국 교포를 상대로 라면을 팔았던 농심은 당시엔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과감한 해외 투자라는 지적을 받았다. 하지만 트럼프 폭탄 관세로 온 세계가 몸살을 앓는 지금에 와서 보면 무차별 폭탄관세마저 비껴가게 한 ‘신의 한수’였던 셈이다.
농심 관계자는 “1994 미국 현지에 판매법인을 만든 뒤 주로 교포를 상대로 라면을 팔았다”면서 “2002년 쯤 일본 라면회사들이 미국 현지에 공장을 지은 뒤 시장을 넓히는 걸 간파한 신 선대회장 지시로 미국에 라면공장을 건립을 추진했다”고 말했다. 이어 “덕분에 2022년 LA에 두번째 공장을 세울 정도로 라면 매출은 크게 늘었다”고 덧붙였다.
관세폭탄 부담에서 자유로운 농심은 이젠 상대적으로 ‘저가’인 일본라면과 미국 라면시장을 놓고 진검승부를 벌어야 하는 입장이다.
반면 삼양식품은 잘나가던 미국수출에 발목을 잡힐 모양새다.
삼양식품 라면 미국수출액은 전체 해외매출(지난해 1조3000억원)의 25%대인 3000억원대를 넘나들 정도다. 불닭볶음면 인기에 힘입어 북미 라면 수출액은 해마다 50% 이상씩 늘고 있다. 문제는 전량 국내에서 생산한 라면이라는 점이다. 이대로라면 미국 관세 폭격을 고스란히 떠안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관세유예로 10% 관세만 부과할 경우 어떻게든 감내할 수 있다”면서도 “문제는 유예기간이 끝나고 실제 25% 관세를 적용할 경우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점”이라고 토로했다.
삼양식품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 상호관세 발표 직후 내부에 대응 태스크포스(TF)팀을 만들 정도로 상호관세 파장에 민감하고 발빠르게 대응했다.
하지만 국가에 부과하는 상호관세에 개별기업이 대응하는 데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 많다.
식품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생산뿐아니라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해외에 공장을 보유한 곳도 이번 트럼프 상호관세에 딱히 손쓸 방법이 별로 없다”면서 “가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마진을 줄이든 가격을 올려 관세부담을 줄이는 수 밖에 달리 대응책은 없다”고 설명했다.
같은 맥락에서 삼양식품 태스크포스팀 역시 25% 관세 부담을 소비자에게 얼마만큼 전가시키는 게 최선일 것인지 ‘비율조정’에 주력하고 있는 실정이다. 가격경쟁력을 유지하며 손해를 볼 것인지 소비자에게 관세부담을 전가해 이익을 보전할 것인지 심난하고 복잡한 셈법고민에 빠진 셈이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개별 회사도 문제지만 상호관세 부과여파로 세계적인 K푸드 열풍이 급하게 식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고병수 기자 byng8@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