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송상근 부산항만공사 사장

“격변기 부산항 지정학 가치 더 커질 것…부가가치 높여야”

2025-04-18 13:00:29 게재

컨테이너물동량 중심에서 항만관련 산업생태계 함께 성장으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은 파나마운하에서 양국의 헤게모니를 겨루고 있고, 북극항로를 확장하려는 러시아는 북극연안에 컨테이너중심항만을 육성하고 있다. 항만에 대한 경제적 가치뿐만 아니라 지정학적 가치가 부각되고 있다. 세계화 흐름 속에서 세계 7위 컨테이너항만(환적항만은 2위)으로 성장한 부산항은 흔들리는 세계화 질서에 적응하고 대응해야 하는 중대한 국면에 놓였다.

내일신문은 지난 2월 부산항만공사 제8대 사장으로 취임해 부산항 경영을 맡고 있는 송상근 사장을 만나 격동기 항만운영에 대한 구상을 들었다. 행정고시 36회(1992년)로 공직에 입문한 송 사장은 △부산지방해양수산청 항만물류과장 △국토해양부 항만물류기획과장 △주영대사관 공사참사관 △해양수산부 해양정책실장을 거쳐 해양수산부 차관을 지낸 해운·항만·국제물류 전문가다.

인터뷰는 4월초 두 차례 만남과 전화인터뷰로 진행했다.

●미·중 관세전쟁 등으로 글로벌 무역 불확실성이 증가하면서 부산항의 위상도 가변성이 커지고 있다. 대응책은

전반적인 세계 무역규모가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부정적이지만 부산항의 지정학적 중요성은 더 커질 가능성도 있다. 다만, 그 변화를 예단하기 힘들기 때문에 국제 정세 변화와 글로벌 생산거점 이동에 따른 변화에 대해 모니터링을 강화할 계획이다. 데이터에 기반해서 부산항 경쟁 요인을 분석하는 것을 강화하고 그에 맞는 해법을 마련해 나가겠다.

당장 물류흐름에 혼선이 일어나지 않도록 대응하는 것도 중요하다. 지난 4일엔 미국의 상호관세 조치에 대비해 선사와 터미널운영사 간담회를 열고 화주들의 관세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선석 스케쥴에 혼선이 없도록 하는 방안과 터미널 혼잡 방지를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

●에너지 곡물 등 주요 전략상품들을 해상무역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해상공급망 주요 지점에 항만·물류 기반을 갖춰야 하는데 현황과 계획은

부산항만공사는 유럽(로테르담) 동남아(인도네시아) 미주(로스앤젤레스·롱비치) 지역에 5개의 해외 물류센터를 확보해 대륙별 물류거점을 마련했고 우리 기업의 현지 물류를 지원하고 있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다.

해외 물류사업을 발굴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기업들의 제안을 받았다. 앞으로는 우리가 전략적으로 중요지역을 선별해서 선사나 물류기업 등과 함께 해외거점을 마련하는 방식도 추진하려 한다. 동유럽지역이나 미국 동부지역 항만, 아세안지역, 인도 등이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최근 해양수산부에서 해양진흥공사 및 국내 물류기업 13개사로 구성한 ‘K-물류 특별팀(TF)’에 부산항만공사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티에프는 글로벌 물류 공급망 재편에 따른 위기·기회요인을 분석하고 우리 기업의 해외 진출 확대를 위한 지원방안 등을 논의했다.

송상근 (오른쪽) 부산항만공사 사장이 부산항 북항 신선대부두에서 터미널운영사 대표에게 운영현황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 사진 부산항만공사 제공

●미국무역대표부의 중국선사·선박 규제 움직임이 태평양항로 물동량에 미칠 영향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미국이 중국선사·선박에 대해 ‘입항 수수료’를 부과한다면 국내 조선산업이 반사이익을 보는 등 우리나라와 부산항에는 직·간접적으로 긍정적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운영 중인 전 세계 컨테이너선의 50%를 한국이, 29%를 중국이 건조했지만 향후 건조예정(수주잔량)인 선박은 중국이 70%, 한국이 24% 수준이다.

●역내(인트라 아시아) 항로의 비중이 더 커질 가능성은

부산항은 북미로 가는 항로의 ‘라스트 포트’로서 역내 화물을 최대한 모아(피더선) 북미향 대형 컨테이너선 모선에 환적하는 기능이 발달했다. 부산항에서 집화돼 수출되는 환적화물의 78%가 아시아 지역에서 출발하고 있고, 환적화물 도착지의 44%도 아시아 지역이다. 아시아 역내 항로는 부산항 환적 경쟁력의 근간이다.

최근 대부분의 원양항로를 운영하는 글로벌 해운동맹이 재편되면서 부산항 기항노선은 6개 증가했다. 원양항로가 증가하면 이와 연계되는 역내 항로의 중요성도 계속 커질 것이다.

●역내 항로 비중이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면 북항 신선대·감만부두 기능도 계속 유지해야 하지 않나

부산역 뒤편 바다를 가로지르는 부산항대교 외곽에 위치한 신선대 감만 신감만부두는 상당 기간 컨테이너부두 기능을 유지해야 한다. 부산신항 개발과 글로벌 대형선사의 신항 집중에도 불구하고 부산항 북항은 ‘인트라 아시아 선사’들의 거점항으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 부산항 전체 물동량의 26.7%(652만TEU), 수출입화물의 38%(420만TEU)를 처리하며 여전히 대한민국 수출입 관문의 한 축으로 기능하고 있다. 부산항을 이용하는 국적 선사의 90% 이상이 북항을 거점으로 삼고 있는 만큼 장비현대화 지원 등 북항의 경쟁력 강화에도 최선을 다하겠다.

●현재 부산항과 연결된 항로와 선사 현황은

지난해 기준 부산항 컨테이너 정기노선은 아시아 174개, 북미 35개, 남미 17개, 유럽 15개 등 총 268개로 세계 4위 수준이다. 지난해 부산항에서 처리한 물동량은 6m(20피트) 길이 컨테이너 2440만개로 역대 최대 규모다. 부산항은 환적중심 항만으로 유럽으로 가는 라스트포트인 싱가포르항,탄중팔레파스항(말레이시아)과 비슷하지만 수출입화물 또한 절반 가까이 처리해 싱가포르 등과 또 다르다. 싱가포르는 수출입 비중이 15%, 탄중팔레파스는 5%인 것과 달리 부산항은 45%에 이른다. 선사는 선박에 최대한 화물을 많이 채울 수 있는 곳을 기항지로 결정하는데 풍부한 수출입화물이 있어야 하고, 주변 국가의 소량 수출입 화물을 집화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우수한 환적항만이어야 한다. 부산항은 이 두 가지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다.

공사는 부산항이 가진 ‘북미향 라스트포트’로서 강점과 진해신항 개발계획, 새롭게 도입하는 지능형 물류프로세스 등을 활용해 항만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터미널운영사 경영성적을 볼 때 최근 3년간 매출액 상위 3위는 어딘가.

부산항 운영사 9개사(신항 7개사, 북항 2개사) 중 2022년, 2024년 신항에 개장한 2개 부두 운영사를 제외한 7개 터미널 운영사가 영업이익을 기록하고 있다. 이 중 상위 3개사의 2023년 기준 매출액은 각각 2906억원, 1740억원, 1635억원이고 영업이익률은 30.6%, 24.1%, 23.8% 수준이다. (▶ 인터뷰 이후 공시된 2024년 실적에 따르면 상위 3개사 순서는 그대로 이고, 매출액(영업이익률)은 각각 2886억원(26.3%), 2000억원(22.9%), 1570억원(18.0%)을 기록)

신규 개장 터미널의 경우 일반적으로 운영 초기 물량 유치, 생산성 제고, 운영 안정화 등에 3~4년의 기간이 필요해 영업개시 4~5년 차부터 흑자로 전환한다. 공사는 모든 운영사가 안정적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경영환경 개선을 위해 운영 현황을 잘 모니터링하고 지원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

●경쟁항만들과 비교할 때 부산항의 친환경 벙커링 수요와 관련 투자 현황은

싱가포르 로테르담(네덜란드) 휴스턴(미국)항 등이 중유 벙커C유 등 기존 선박연료유 벙커링 3대 항만이다. 로테르담항 상하이항 등은 액화천연가스(LNG)를 비롯한 대규모 연료 탱크 터미널이 있지만 부산항은 컨테이너 전용 항만으로 연료 공급을 위한 인프라가 없다.

하지만 선박연료가 친환경 연료로 변하는 것은 부산항에 기회다. 지난해 8월 기준 세계 시장에는 총 1377척의 친환경 연료선박이 건조 중이다. 액화천연가스( LNG) 73%, 메탄올 17%, 암모니아 2%, 기타 8% 비중이다. 최소한 부산항에 입출항하는 선박은 부산에서 벙커링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게 목표다. ‘부산항 탄소중립 종합계획 수정 및 사업화 전략 수립 용역’을 통해 친환경 연료 벙커링 수요분석도 진행할 예정이다.

부산항은 그동안 물동량을 더 많이 유치하는 방향으로 성장했다. 이제는 부가가치를 더 많이 생산하는 질적 성장을 추진할 때가 됐다. 벙커링 외에도 다양한 항만관련 산업이 성장하게 해야 한다. 취임 후 항만산업총연합회 대표를 만났고, 관련 기업들과 간담회를 열고 의견을 들어볼 것이다. 부산항이 세계 5위 수준으로 성장하면 관련 산업도 그에 맞게 활성화돼야 한다.

●북극항로에 대한 관심이 뜨겁지만 컨테이너항만인 부산항과 연결하는 게 쉽지 않은데

10여년 전 유럽에서 광양항까지 벌크화물과 원유를 시범 운항한 적 있다. 여름에 한시적으로 운항했다. 부산항은 컨테이너항만인데 컨테이너선박이 운항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여름만 운항하면 안되고, 항로 중간중간에 화물을 집화할 도시와 경제권도 있어야 한다. 해빙이 본격화돼야 가능한데 과학자들은 30~40년 뒤로 예측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당장의 일이 아니라고 해서 손을 놓고 있으면 안된다. 북극항로가 열리면 부산항은 미주로 가는 라스트포트에서 유럽으로 가는 라스트포트도 될 수 있다. 러시아연안 항로뿐만 아니라 캐나다연안 쪽으로 가는 항로도 포함 최적항로도 탐색해야 한다.

자연적 변화와 지정학적 변화 속에서 북극항로 이용자로서 관련 기관들과 함께 주도적으로 준비할 생각이다. 중요한 과제다.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

정연근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