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늑장조사 틈탄 배달앱 ‘영세식당 폭리’ 한계 넘었다
배민·쿠팡이츠 공정위 조사, 신고 8개월 지났지만 감감무소식
조사 막바지 이르자 동의의결 신청 … “시간 끌기 꼼수” 비판
내란사태 규제 느슨해지자 배민 “포장도 수수료 받겠다” 역공
‘최혜대우 요구’ 등으로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를 받고 있는 배달의민족과 쿠팡이츠가 ‘동의의결’을 신청했다. 동의의결 제도는 조사대상 기업이 시정방안을 스스로 제시하는 제도다.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공정위 조사는 중단된다. 신속한 분쟁해결과 피해 구제를 위해서다.
배달앱 갑질의 당사자인 외식업계는 강력히 반발했다. 외식업계는 “영세음식점들의 피해는 외면하고, 면죄부를 주자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공정위의 늑장 조사가 이를 부추겼다는 주장도 나온다. 참여연대와 프랜차이즈 협회 등이 배달앱들을 공정위에 신고한 것은 지난해 9월이다. 8개월이나 조사를 끌어온 공정위에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배달의민족은 한 술 더 떴다. 그동안 받지 않던 포장 주문에도 중개수수료를 받기로 했기 때문이다. 윤석열정부 출범 뒤 ‘플랫폼 자율규제’로 정책을 바꾸면서 배달앱들은 포장 수수료를 받지 않는 정책을 유지해왔다. 완화된 정부정책에 동참하고 영세자영업자와 상생을 위한 조치란 설명이었다. 하지만 공정위 조사가 장기화되고 내란정국으로 정부규제가 느슨해지자 다시 ‘자사 이익 챙기기’에 나서는 모양새다.
◆2년 만에 배달수수료 100% 올려 = 21일 업계 등에 따르면 불공정 거래 행위 의혹 등으로 공정위 조사를 받고 있는 배민, 쿠팡이츠가 최근 공정위에 동의의결을 신청했다.
동의의결이란 공정위 조사·심의를 받는 기업이 스스로 경쟁 제한 상태 해소와 소비자 피해 구제, 경제 거래 질서 회복에 필요한 시정 방안을 제시하는 제도다. 공정위가 이해관계자 의견수렴을 거쳐 타당성이 인정되면 위법 여부를 판단하지 않고 사건을 종결한다. 지난해 9월 참여연대와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 등은 배민이 독과점 지위를 이용해 수수료 인상 등 각종 불공정행위를 했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당시 협회는 배민의 위법 사례로 △시장지배적사업자의 가격 남용행위 △자사우대 행위 △최혜대우 요구행위를 지목했다. 협회에 따르면 배달의민족은 배달앱 출시 뒤 2차례에 걸쳐 배달앱 이용료를 대폭 인상했다. 이에 따라 2022년 3월까지 ‘건당 1000원’이던 배달수수료는 2024년 8월부터 주문금액의 9.8%로 인상됐다. 주문금액 2만원을 기준으로 보면 100%가 오른 셈이다. 배달료 인상과정에서 가맹 음식점과 아무련 협의도 없었다는 것이 협회 설명이다.
◆배달자회사 최혜대우 의혹도 = 공정위 부위원장을 지낸 지철호 법무법인 원 고문은 “이런 배민의 이용료 일방 인상은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가격남용 행위를 금지한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배민은 또 배달자회사인 ‘배민1’으로 소비자와 입점업체를 유인하기 위해 배달료 인하와 할인쿠폰을 제공하는 등 파격혜택을 제공했다. 공정거래법이 금지하고 있는 ‘자사우대’ 의혹이다.
이밖에도 협회는 배민이 ‘최저가 보장제’를 시행하면서 공정거래법(최혜대우 금지)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배민은 지난 5월부터 ‘배민 멤버십(배민클럽)’이라는 새로운 서비스를 운영하면서 △입점업체의 메뉴별 음식가격과 배달가능 최소주문금액을 경쟁 배달앱들에 비해 낮거나 동일하게 책정하도록 요구하고 △입점업체 자체진행 할인혜택 조건의 경우 경쟁 배달앱들에 비해 높거나 동일하게 책정하도록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배민의 운용사인 ㈜우아한형제들의 영업수익과 영업이익은 대폭 증가하고 있다. 배달앱 이용료 수입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영업수익은 2022년엔 전년보다 45.4% 늘어난 2조9515억원으로 급증했다. 2023년에도 전년보다 15.6% 증가한 3조4134억원이었다.
이같은 신고가 접수되자 공정위는 이미 조사 중이던 쿠팡이츠의 불공정행위 의혹과 묶어 8개월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동의의결 수용 가능성 낮다 = 배달앱들이 공정위 본격조사 8개월째 동의의결을 신청한 것은 제재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 위반이 인정될 경우 공정거래법상 관련거래 매출액의 최대 6%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하지만 외식업계와 점주단체, 시민단체들은 배달앱들의 동의의결 신청에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조사 마무리 시점에 배달앱들이 동의의결을 신청한 것은 ‘시간 끌기’ 전략”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실제 동의의결이 신청되면 개시 결정,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 등을 거쳐 최종안 확정까지 상당 기일이 소요된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동의의결 신청부터 최종 확정까지 걸리는 기간은 평균 약 313일에 달한다.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는 “공정위의 동의의결 인용을 반대하고 조속한 제재를 강력히 촉구한다”며 “현재 외식업 생태계는 배민과 쿠팡이츠의 과도한 무료배달 경쟁으로 붕괴되기 직전이다. 이제서야 마지못해 동의의결을 신청한 것은 마땅히 받아야 할 제재를 피하려는 꼼수”라고 지적했다.
배달앱 입점 업체 모임인 공정한 플랫폼을 위한 사장협회는 “배달앱들의 이번 동의의결 신청은 불공정 행위를 형식적인 개선안 몇 가지로 덮고 넘어가려는 꼼수”라며 “업계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큰 사안에 대해 공정위가 정식 조사와 제재 없이 종결한다면 책임 회피”라고 주장했다.
사건 관련 업체·협회와 신고주체 모두 동의의결에 반발하면서 신청이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는 관측이 유력하다. 공정위 출신의 이동원 법무법인 웅비 고문은 “동의의결 수용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 이해관계자들의 ‘동의’와 실질적 피해구제”라면서 “현재 분위기라면 받아들이기 어렵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영세식당 쥐어짜는 배민 = 이런 와중에 배달앱 업계 1위 배민이 포장 주문에도 중개수수료를 부과, 반발을 사고 있다.
배민은 지난 14일부터 포장 주문 건당 6.8%의 수수료를 부과하기 시작했으며, 부가세를 포함하면 약 7.5%에 이른다.
배민은 2020년부터 포장 주문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포장 수수료는 매년 유예해왔다. 이번 정책은 기존에도 있었던 내용을 공정위와의 자율규제 이행점검 과정에서 수년간 연장해온 것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공정위도 자율규제 영역이어서 강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배민 측은 공식 뉴스룸을 통해 “포장 주문 서비스에도 다른 배달 주문과 동일한 수준의 개발 인력 및 유지관리, 서버 운영 비용이 투입된다”고 설명하며 “지난 5년간 중개이용료 무료 정책을 유지해왔기 때문에 서비스 활성화를 위한 투자 구조가 마련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다만 쿠팡이츠는 포장 수수료 무료 정책을 올해도 1년 더 연장하기로 했다.
배민의 수수료 확대는 해외 모기업인 딜리버리히어로(DH)의 수익 회수 정책과 관계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2023년 기준 배민은 DH의 전 세계 매출에서 24%를 차지하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자회사다. 같은 기간 배민은 배당금, 자사주 매입 등의 명목으로 1조원 가까이 독일 본사에 송금했다.
배민은 지난해에도 배달 중개 수수료 인상을 시도했다가 여론의 반발에 밀려 차등 수수료 방식을 도입한 전례가 있다. 당시 수립한 상생안은 불과 몇 달 만에 포장 수수료 도입으로 사실상 무력화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