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 ‘변화의 상징’으로 기억될 리더십

2025-04-22 13:00:22 게재

‘청빈과 평화, 포용’ 메시지로 새로운 교회상 … 한국 아낀 교황, 참사 때마다 위로하고 기도

88세 프란치스코 교황이 21일 오전 7시 35분(현지시간) 뇌졸중으로 선종했다. 교황청 궁무처장 케빈 페렐 추기경은 “그는 삶의 전체를 주님과 교회를 섬기는 데 헌신했다”고 발표했다.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2013년부터 12년간 전 세계 14억 가톨릭 신자를 이끌어온 프란치스코 교황이 88세로 선종한 21일 서울 중구 명동대성당 내 영성센터 건물 외벽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진이 걸려있다. 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안드레아 아르칸젤리 바티칸 보건위생국장은 교황이 뇌졸중으로 혼수상태에 빠지고 회복 불가능한 심부전을 일으켜 사망했다고 밝혔다. 교황은 2월 14일부터 로마 제멜리 병원에서 폐렴 치료를 받고 38일간의 입원 후 퇴원해 활동을 재개해왔다.

전날 부활절 강론에서 교황은 “가자지구의 상황이 개탄스럽다”며 “전쟁 당사자들에게 휴전을 촉구하고 인질을 석방해 평화의 미래를 열망하는 굶주린 이를 도와줄 것을 호소한다”는 마지막 메시지를 남겼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은 현대 가톨릭교회 역사에서 한 시대의 마감을 의미한다. 2013년 즉위 이후 12년 동안 그가 추진한 개혁과 혁신은 가톨릭교회뿐 아니라 전세계에 깊은 울림을 남겼다. 종교성이 약화되는 현대사회에서 그는 ‘청빈과 평화, 포용’의 메시지로 새로운 교회상을 제시했다. 권위주의와 관료주의에 도전하며 가톨릭을 현대화하려 했던 그의 리더십은 앞으로 가톨릭교회가 나아갈 방향에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청빈과 소탈함으로 세상을 감동시킨 지도자 =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무엇보다 그의 청빈한 삶의 태도였다. 교황으로 선출된 직후부터 그는 호화로운 교황 관저 대신 일반 사제들이 묵는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생활했다. 순금 십자가 대신 철제 십자가를 가슴에 걸고, 호화 차량 대신 소형차를 이용했다. 그의 검소한 생활방식은 교회 내 권위주의와 과시적 모습에 대한 분명한 선언이었다.

교황의 유언에서도 이러한 태도는 일관되게 드러난다. 그는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이 아닌 로마의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 지하에 특별한 장식 없이 묻어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100여년 만에 바티칸이 아닌 장소에 안장되는 첫 교황이라는 점에서 그의 마지막까지 이어진 소박함의 실천으로 기억될 것이다.

◆소외된 이들을 향한 포용적 변화의 추진 = 프란치스코 교황 재위 기간의 가장 큰 특징은 소외된 이들을 향한 교회의 포용성 확대였다. 그는 2013년 즉위 직후 “교회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이후 난민 동성애자 이혼자 등 전통적으로 가톨릭 교리에서 소외되었던 이들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2023년 그가 동성 커플에 대한 가톨릭 사제의 축복을 허용한 결정은 가톨릭 역사에서 획기적인 전환점이었다. 이는 아프리카 등 보수적 가톨릭 사회에서 강한 반발을 샀지만 현대 사회의 변화를 수용하며 더 많은 이들을 교회 안으로 포용하려는 그의 철학을 보여주는 중요한 결정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리를 완화하기보다 교리를 적용하는 방식을 인간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는 교회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시대적 요구에 응답하려는 균형잡힌 접근법이었다.

◆세계 분쟁 해결을 위한 외교적 중재 노력 =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계 평화를 위한 적극적인 중재자로서도 큰 족적을 남겼다. 그의 외교적 노력은 2015년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에 결정적 기여를 한 것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또한 2017년 로힝야족 추방으로 ‘인종청소’ 논란이 불거진 미얀마를 직접 방문해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고 2021년에는 가톨릭 역사상 처음으로 이라크를 방문해 테러 희생자들을 위로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분쟁 속에서도 그는 끊임없이 평화의 목소리를 냈다. 부활절 마지막 메시지에서도 “가자지구의 상황이 개탄스럽다”며 평화를 호소했다. 이는 그가 생전 마지막까지 평화를 위해 목소리를 높였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종교 지도자의 역할을 넘어 국제적 도덕 권위자로서 분쟁 해결에 적극 관여했다. 그의 외교는 종교적 가치와 보편적 인권을 결합한 독특한 접근법을 통해 세계 평화에 기여했다.

◆30여년 전 아르헨티나서 헌신한 수녀들에 감복 =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에 특별한 애정을 보였다. 2014년 아시아 국가 중 첫 방문지로 한국을 선택했고 윤지충 바오로 등 한국 순교자 124위 시복식을 직접 집전했다. 세월호 참사 유족을 위로하고 위안부 피해자들을 만나는 등 한국 사회의 아픔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의 한국에 대한 애정은 인선에서도 드러났다. 염수정 추기경과 유흥식 추기경을 임명했다. 특히 유흥식 추기경은 한국인 최초로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에 발탁되는 파격 인사로 주목받았다. 2027년 세계청년대회(WYD) 개최지를 서울로 결정한 것 역시 한국 가톨릭에 대한 신뢰와 기대를 보여주는 결정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사랑은 1990년대 초 아르헨티나 병원에서 봉사했던 한국 수녀들의 헌신에 감동받은 데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그는 “아르헨티나인들은 한국에서 오신 수녀님들에게서 성모님을 느끼며 거룩한 어머니이신 교회를 봅니다”는 감사 편지를 보냈다.

◆교회 개혁의 과제와 미완의 여정 = 프란치스코 교황은 취임 직후부터 바티칸 내 개혁을 추진했다. 2014년 교황청 경제위원회를 신설해 재정 투명성을 강화했고 2019년에는 성직자 아동 성학대 의무 보고제를 도입했다. 또한 사제들의 관료주의를 비판하며 교회가 ‘야전병원’처럼 사회의 아픔을 치유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일부 개혁은 저항에 부딪혔고 완성되지 못한 과제로 남았다. 특히 여성의 교회 내 역할 확대와 관련한 논의는 진전이 더뎠다. 교황은 여성 부제 서품 가능성을 연구하는 위원회를 설립했지만 최종 결론에 이르지는 못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톨릭교회의 패러다임 전환을 시도했다. 모든 개혁이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변화의 방향을 명확히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의 행보는 가톨릭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향후 교회와 차기 교황의 과제 =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은 가톨릭교회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교황 선거인단 138명 중 110명이 프란치스코 교황이 임명한 추기경들이라는 점에서 차기 교황도 그의 개혁 정신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동시에 가톨릭 내 보수와 진보 간 갈등, 세속화 심화, 성직자 감소 등 근본적 과제들은 여전히 남아있다. 차기 교황은 프란치스코가 시작한 개혁의 토대 위에서 이러한 과제들에 대한 해법을 찾아야 하는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현대 세계와 대화하는 열린 교회로의 전환을 시도했다. 미완의 과제들이 많지만 그가 제시한 방향성은 가톨릭의 미래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청빈과 평화 포용을 추구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12년 여정은 비록 그의 사망으로 마무리됐지만 그가 뿌린 변화의 씨앗은 앞으로도 가톨릭교회와 세계 사회에 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라는 그의 비전은 앞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줄 것으로 보인다.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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