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약세에 고심하는 세계 중앙은행들

2025-04-23 13:00:06 게재

금리인하 여력 생겼지만

자국통화 평가절하엔 신중

미국 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며 달러 가치가 큰 폭으로 하락하자 세계 각국 중앙은행들이 고심하고 있다. 자국 통화가치를 안정적으로 관리할지, 경기부양을 위해 일부 평가절하 할 것인지를 놓고서다.

일각에서는 금리인하 여력이 커졌다는 기대가 나오지만, 수출 경쟁력 악화와 무역 보복 우려로 선뜻 결단을 내리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미 경제 전문매체 CNBC는 21일(현지시간) “최근 달러화 약세는 세계 각국에 기회이자 딜레마”라며 “대부분의 중앙은행이 당장 자국 통화의 평가절하에는 선뜻 나서지 않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달러 가치가 하락 속에 다른 통화들의 움직임은 엇갈린다. LSEG(런던증권거래소그룹)에 따르면, 올들어 일본 엔화는 달러 대비 10% 이상 상승했다. 유로화와 스위스 프랑도 각각 11% 가까이 올랐고 멕시코 페소(5%), 캐나다 달러(4% 이상), 폴란드 즈워티(9% 이상) 등도 줄줄이 강세를 보였다.

반면 일부 신흥국 통화는 오히려 약세를 보였다. 이달 초 베트남 동과 인도네시아 루피아는 달러 대비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고, 터키 리라도 지난주 사상 최저치를 경신했다. 중국 위안화는 약 2주 전 달러 대비 사상 최저치를 찍은 뒤 다소 반등했다.

전문가들은 전반적으로 달러 약세가 신흥국에 유리하다고 평가한다. 달러 표시 외채 부담이 줄고, 수입물가 하락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을 완화할 수 있어서다.

이에 따라 일부 국가들은 기준금리 인하에 나설 여력도 생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애덤 버튼 포렉스라이브 수석 전략가는 CNBC에 “대부분의 중앙은행들은 미국 달러 가치가 10~20% 정도 떨어지는 상황을 반길 것”이라며 “달러 강세는 오랫동안 구조적인 부담으로 작용해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평가절하에 나서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다. 자본 유출과 인플레이션 재확산 위험,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등 복합적인 리스크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외환중개사 엑스니스의 와엘 마카렘 전략총괄은 CNBC에 “신흥국들은 이미 높은 인플레이션과 부채, 자본 유출 위험에 직면해 있어 평가절하가 오히려 위험한 선택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유럽중앙은행(ECB)은 최근 물가 상승세가 진정되자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했다. 스위스 중앙은행은 프랑화 강세가 수출에 미치는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추가 조치를 검토 중이다.

CNBC는 “한국과 인도 등 일부 아시아 국가는 환율 변동성과 인플레이션 수준을 고려할 때 금리 인하 여력이 남아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전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중앙은행들이 환율 안정과 국제 통화 질서 유지를 우선시하는 분위기다.

웰스파고의 외환 전략가 브렌던 맥케나는 “환율이 하락하면 수입 물가가 오르기 때문에 대부분의 중앙은행들은 통화 약세를 자발적으로 유도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금은 환율전쟁보다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것이 우선”이라고 덧붙였다.

김상범 기자 cl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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