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당에서 모델 걸음 배우고 발레 수업
강남구 ‘시니어센터’로 탈바꿈 한창
‘젊은 노인’ 유입 늘고 공간 활용성↑
“시선은 멀리~. 허리 손. 자신 있게! 둘이 움직일 때는 쌍둥이처럼 보여야죠.”
서울 강남구 세곡동 은곡마을. 강남구 여느 동네와 달리 고층 아파트단지 대신 키 작은 주택이 널찍한 도로, 공원 숲과 어우러진 동네다. 주택가 사이, 카페처럼 보이는 건물에 들어서자 음악소리가 반긴다. 소리를 따라 지하로 내려가니 여성 10여명이 음악과 강사의 구령에 맞춰 힘찬 걸음을 내딛고 있다. 자연스러운 은빛 머리에 선글라스와 모자까지 자신감 있는 걸음걸이와 잘 어우러진다. 갓 노년기에 접어든 주민들을 위해 마련한 ‘시니어 모델 워킹’ 수업이다.

29일 강남구에 따르면 구는 경로당을 노인복합문화시설인 ‘시니어센터’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낡은 경로당을 새로 지으면서 맞춤형 여가·문화·건강서비스를 제공하는 복합문화공간을 추가하는 방식이다. 구는 “경로당 이용률이 점차 떨어지고 있는 데다 회원만 이용하는 폐쇄적인 공간이 돼버렸다”며 “젊은 노년층까지 다양한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하다가 소규모 복합문화시설로 바꾸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2023년 12월 논현동에 학리시니어센터가 1호 시설로 선을 보였고 지난해 말 은곡마을에 2호가 문을 열었다. 은곡시니어센터다. 지난 1980년 지은 은곡경로당을 재건축했다. 지하 1층부터 지상 2층으로 이어지는 636.19㎡ 건물은 아담하지만 주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충분하다. 1층에는 북카페와 함께 소모임 등에 활용할 수 있는 다목적실을 배치했고 2층 할머니·할아버지방은 쉼과 친목을 위한 공간이다.
가장 특색 있는 공간은 지하 1층 사무실 옆 프로그램실이다. 출입구 옆에 붙어 있는 시간표를 보면 차이를 알 수 있다. 바른 자세와 중심근육 강화를 위한 ‘시니어 모델 워킹’부터 ‘숟가락 난타를 응용한 음악활동’ ‘아름다운 몸선을 만드는 시니어 발레’ ‘노래를 통한 두뇌자극과 치매예방’ 등이 눈길을 끈다.
특히 모델 워킹은 정원이 20명인데 대기자가 30명이 넘을 정도로 주민들 호응이 크다. 지난해 개관과 동시에 특강을 한차례 진행했는데 입소문을 타고 다른 동네에서 일부러 찾아올 정도다. 한시간 가량 현역 모델과 함께 바른 걸음걸이와 자세를 연습한 주민들은 벌써 전문가 부럽지 않다.
강사 권유로 중세 유럽에서 입던 옷차림을 선보이는 무대에 섰던 이정현(65·세곡동)씨는 “어려서 미인대회 같은 데 나가고 싶었는데 군인인 아버지 반대로 좌절됐다”며 “주변 권유로 수강하게 됐는데 묻어두고 있던 열정이 되살아난다”고 말했다. 이씨는 “내 자신을 되찾은 것 같아 자존감이 커졌다”며 “요즘은 거울을 다시 보게 된다”고 덧붙였다. 이웃 김태희(73·세곡동)씨는 “다른 강좌처럼 진도 부담도 없고 자세가 바로잡아진다는 걸 실감한다”며 “나이 드니 맛있는 것도 재미난 것도 없는데 이런 강좌를 마련해줘 감사하다”고 말했다.
강남구는 주민들 호응에 힘입어 경로당의 변신을 이어갈 계획이다. 앞서 지난달 삼성경로당이 문을 열었고 도곡1동경로당 선정경로당이 시니어센터로 곧 탈바꿈한다. 내년에는 청담동 재너머경로당이 복합문화시설이나 노인 전용 복지관으로 변신한다.
조성명 강남구청장은 “기존 경로당에서 한단계 발전된 어르신 복합문화센터에서 활동적인 시니어들이 여가와 문화를 더 활기차게 즐기고 있다”며 “80세는 돼야 경로당에 간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은퇴자가 관심을 갖고 방문하고 싶은 공간으로 만들어 가겠다”고 밝혔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