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달러, 불안한 미국 경제

2025-05-09 13:00:04 게재

트럼프 정책 구조적 한계 … 힌리치 재단, 스탠퍼드 연구진, 석학 켄 로고프 경고

지난달 1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의 나스닥 사무실에서 아마존 주식과 나스닥 종합지수가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화면이 표시되고 있다. 백악관이 모든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가 최소 145%라고 밝힌 후 이날 미국 증시는 하락했다. EPA=연합뉴스
트럼프의 관세 정책과 미국 경제의 앞날을 두고 논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미국의 신뢰 상실과 달러 패권 약화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힌리치 재단, 스탠퍼드 경영대학원, 하버드대학교 경제학자 켄 로고프의 최근 분석은 서로 다른 관점에서 동일한 결론에 도달한다. 미국의 무역 정책과 금융 시스템이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 구조적 문제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힌리치 재단은 2025년 5월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미국의 만성적인 무역적자와 달러 고평가의 본질을 분석했다. 전 영국 헤지펀드 매니저이자 힌리치 재단 선임연구원으로 활동 중인 스튜어트 패터슨이 집필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세계은행이 발표한 세계 명목 GDP는 약 106조달러였지만, 구매력 평가 기준(PPP)으로는 184조달러에 달했다. 이 78조달러의 차이는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 국가에서 물가가 낮고, 자국 통화가 저평가돼 있다는 구조적 현실을 반영한다.

가령 중국의 명목 GDP는 약 17.8조달러지만 PPP 기준으로는 34.7조달러로, 위안화가 시장 환율보다 50% 이상 저평가돼 있음을 의미한다.

인도, 러시아, 인도네시아, 터키 등도 유사한 구조를 보인다. 미국 달러만이 고평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기축통화라는 특수성 때문에 시장 원리에 따른 조정이 어려운 상황이다. 패터슨은 “이러한 환율 왜곡은 세계 무역의 균형 조정 기능을 마비시킨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구조적 불균형이 굳어진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초 전면적인 고율 관세 부과 정책을 발표했다. 시장 반응은 예상과 달리 부정적이었다.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의 아르빈드 크리슈나무르티와 하노 루스티그 교수의 공동 연구에 따르면, 관세 발표 직후 해외 투자자들은 미국 국채와 달러 자산을 매도하며 신뢰 상실을 드러냈다.

일반적으로 금융 불확실성이 고조될 때 달러는 안전자산으로 선호되며 가치가 상승하지만, 이번에는 달러가 10일 만에 3% 이상 하락하고 미국 국채 수익률은 급등하는 역전 현상이 발생했다.

크리슈나무르티 교수는 “이례적인 반응은 투자자들이 달러 자체에 대한 신뢰를 잃고 있다는 신호”라며 “기축통화로서의 달러 지위에 장기적 손상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하버드대학교 켄 로고프 교수는 이러한 위기의 본질을 정치경제학적으로 분석하며 보다 직설적인 경고를 내놓았다. 그는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세계 경제의 위기 중심에는 미국이 있다”고 발언해 주목받았다. 5월 6일 자 미국 시사 매체 세마포(Semafor)와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트럼프의 감세, 규제 완화, 고율 관세 같은 직관적 정책이 미국 금융 시스템의 신뢰를 훼손한다고 비판했다. 로고프는 트럼프를 “커피하우스 체스 플레이어”에 비유하며, 감각에 의존한 리더십이 전략 부재를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자신의 신간 『Our Dollar, Your Problem』에서 미국의 달러 중심 국제 결제 시스템이 주요 국가들로부터 심각한 반발을 사고 있으며, 트럼프 시대에 그 반감이 정점을 찍었다고 주장했다. 한 G7 국가 중앙은행 총재가 “미국의 결제 시스템 감시 기능이 불쾌하다”고 토로한 일화도 공개했다.

로고프는 미국이 이미 ‘무능 프리미엄(stupidity premium)’을 지불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이는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 상실로 인해 미국 자산이 실제 가치보다 낮게 평가되는 현상이다. 그는 이러한 상황이 2022년 영국 리즈 트러스 정부의 감세 실패 당시 금융시장의 반응과 유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연방준비제도(Fed)의 독립성 위협도 강조했다. 트럼프가 파월 의장의 해임 가능성을 시사한 전례처럼 연준은 정치적 압력에 쉽게 흔들릴 수 있는 구조라는 것이다. 로고프는 “연준은 이미 바람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며 정치화된 통화정책의 위험을 경고했다.

결국 힌리치 재단의 환율 분석, 스탠퍼드의 시장 반응 연구, 로고프의 구조적 경고는 하나의 메시지로 수렴된다. 미국은 현재 달러 고평가, 무역정책의 불균형, 제도적 신뢰 상실이라는 세 가지 위기에 직면해 있으며, 감세나 관세 같은 단기 처방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 미국에 필요한 것은 원칙 있는 제도 설계와 국제 신뢰 회복이다. 법인 저축률과 투자율 제고, 통화 시스템의 개혁, 정치로부터 독립된 중앙은행 운영 등 제도 개혁이 필수다. 트럼프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감각이 아닌 원칙, 단기 승리가 아닌 장기 설계라는 의미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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