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EU, 반도체에 정책자금 집중 지원…“한국, 재정과 정책금융기관 적극 활용 필요”

2025-05-12 13:01:09 게재

주요국 재정·금융지원 병행 … 국내는 금융지원이 대부분

미 527억달러 보조금, 일 예산 5.5조엔 투입, EU 300억유로

KDB미래전략연구소 ‘미·일·EU 반도체 산업 지원체계 분석’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주요국들이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 대규모 재정·금융지원정책을 실행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도 범국가적인 지원전략을 한층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산업은행 산하 KDB미래전략연구소는 9일 발간한 산은조사월보 4월호 ‘주요국의 반도체산업 지원체계 현황’ 보고서를 통해 “반도체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 추진에는 대규모 자본이 요구되기에, 우리나라의 구조적 특성을 고려한 일관적이고 체계적인 재정·금융지원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우리나라는 일본, 유럽연합(EU)과 같이 간접금융(은행)중심의 금융시스템을 보유하고 있기에 재정정책과 병행해 정책금융기관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정부예산을 기반으로 반도체 제조기업과 연구개발 기관에 6년간 527억달러(한화 약 73조7500억원) 규모의 보조금을 편성했다.

미 상무부 산하의 미국반도체 기금이 500억달러로 대부분이며, 그 중 반도체 제조시설 확정을 위한 생산인센티브 지급이 390억달러를 차지하고 있다.

생산인센티브는 반도체 제조·조립, R&D를 위한 미국 내 시설장비 신설, 확장 등에 지급되며 올해 1월까지 308억달러 규모의 지급이 확정됐다. 인텔(78억달러), TSMC(66억달러), 마이크론(63억8000만달러) 등이 주요 수혜자이며 한국 기업은 삼성(47억5000만달러), SK하이닉스(4억6000만달러), 앱솔릭스(8000만달러)가 포함됐다. 하지만 생산인센티브는 사업성과에 따라 점진적으로 지급되기 때문에 실제 기업이 수령할 인센티브액은 확정금액과 다를 가능성이 있다.

재정지원 수단인 보조금과 별개로 반도체 생산업체 시설 및 장비투자에 대해 향후 5년간 25% 수준의 세액공제(약 245억달러)도 적용한다. 2026년말 이전 건설 시작분에 적용되며, 내국세입법 개정을 통해 시행된다. 세액공제의 경우 미 국세청이 주관하며 반도체 보조금과 별개로 세액공제 수혜기업에 대해 대중 투자 제한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 작년 11월 기준 보조금 3.4조엔 지원 = 일본은 정부 재원으로 3대 반도체 기금을 조성하고 신에너지산업기술종합개발기구(NEDO)를 통해 반도체 기업과 연구단체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반도체·디지털 산업전략을 세우고 특정반도체기금, 포스트5G기금, 경제안보기금 등 3개 반도체기금을 중심으로 5조5000억엔(약 52조77000억원) 규모의 예산을 편성했다. 특정반도체기금은 첨단반도체 생산설비 투자 지원에 초점을 맞췄고 포스트5G기금은 첨단반도체 제조기술 개발을 지원한다.

경제안보기금은 경제안전보장추진법에 따라 반도체 공급망 강화를 위해 소부장 및 레거시 반도체(구형 공정기술 반도체 생산) 기업에 설비투자와 기술개발을 지원한다.

정부가 반도체기금 예산을 NEDO로 배정하면 NEDO는 지급받은 자금을 바탕으로 반도체 기업들에게 보조금을 제공하는 구조다. 지난해 11월 기준 3대 기금을 통해 반도체 관련 기업에게 지급된 보조금 규모는 3조4000억엔 수준이다.

특정반도체기금은 TSMC, 키옥시아, 마이크론 등 기업의 첨단반도체 생산시설 설비 투자액에 1조6644억엔의 보조금을 승인했다. 경제안보기금은 로움 도시바 D&S, SUMCO 등 기업의 반도체 및 첨단전자부품 생산능력 확정에 4382억엔의 보조금을 승인했다. 포스트5G기금은 연구단체 및 라피더스, NCC 등 반도체기업인 칩렛, 2nm 반도체 집적기술 등 연구개별에 1조3247억엔의 보조금을 승인했다. 이밖에도 세액공제를 통한 반도체산업의 투자 촉진을 위해 국내생산촉진세제를 신설했다.

재정지원과 함께 정책금융기관들은 장기·저리대출을 통해 반도체기업들에게 정책금융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일본정책금융공고(JFC)와 일본정책투자은행(DBJ)을 활용해 반도체공급망 주요품목을 생상하는 기업에 ‘투스텝 론’을 제공하고 있다. 정부가 재정융자자금을 JFC에 제공하고 JFC는 DBJ에 낮은 금리로 자금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경제안전보장법에 따라 경제산업성의 승인을 얻은 기업이 DBJ에 융자를 신청하는 경우 DBJ는 장기·저리·고정금리 대출을 기업에 제공한다.

◆“한국 시스템반도체 취약, 장기 투자해야” = EU는 유럽반도체법에 따라 2027년까지 33억유로(약 5조1800억원)의 예산을 유럽반도체이니셔티브에 배정했다. EU가 주도하는 연구개발 프로그램인 호라이즌 유럽에 17억2500만유로, 전략적 디지털 투자프로그램인 디지털유럽에 15억7500만유로를 투입하기로 했다.

Chips Act(반도체법) 실행의 핵심 기관인 Chips JU를 통해 반도체 연구개발 및 파일럿 프로젝트 등을 추진하고, 반도체법 전용 금융지원기구인 Chips Fund를 통해 반도체 관련 중소·벤처기업에 자금을 지원한다. Chips JU는 지난해말 기준 20개 프로젝트에 EU예산 24억5000만유로를 지원할 예정이다.

보고서는 “이외에도 기존 EU프로그램, 회원국 자체 재원, 정책금융기관 등을 통해 반도체 관련 산업 분야에 약 300억유로(약 47조원) 수준의 자금이 공급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은 지난달 경제관계장관회의를 통해 2027년까지 반도체 분야 투자 규모를 26조원에서 33조원으로 늘린다고 밝혔다. 하지만 금융지원이 대부분이고 정부 예산은 4조원 가량 투입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우리나라 주요 반도체 기업은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강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메모리반도체 쏠림 현상과 반도체 소부장 분야의 높은 해외의존도는 반도체 산업의 취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팹리스 및 파운드리 조밀도생태계 부실 등 설계 역량 부족으로 시스템반도체 세계 시장 점유율은 지난 2022년 기준 3.3%에 그쳤고 2023년과 지난해에는 더 낮아져 2%대에 머물고 있다.

보고서는 “팹리스, 소부장 기업의 성장에는 장기 투자가 요구된다”며 “정부 주도의 톱다운 정책 추진보다 중장기 로드맵 아래 기업, 산학연 간 유기적인 협력을 통해 자금 수요자 중심의 지원체계를 지속적으로 정비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또 “주요국과 달리 재정투입이 자유롭지 못한 우리나라의 재정적 제약을 감안할 때 일본, EU와 같이 정책금융기관을 통한 고위험·인내자본(장기투자성) 공급은 반도체 생태계 위한 자금 지원에 효과적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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