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도 ‘한국 잠재성장률 1%대’… 2017년 3%대에서 급락
KDI는 1.5% … 대내외 불확실성에 취약한 구조
급격한 저출산·고령화 추세에 경제구조도 늙어
노동·자본·생산 구조는 단기간에 큰 변화 어려워
“기술혁신 규제완화와 AI 등으로 생산성 높여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내년의 한국 잠재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잠재성장률)이 2%를 밑돌 것으로 전망했다. 국회 예산정책처와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국내 기관에 이어 외국 기관까지 잠재성장률을 1%대로 낮추면서 우리나라 경제 전망이 더욱 어두워지고 있다.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불과 8년 전인 2017년까지 3%대를 웃돌았다.
12일 OECD가 최근 내놓은 경제전망을 보면 내년 한국의 잠재성장률을 1.98%로 전망했다. 올해(2.02%)보다 0.04%포인트(p) 낮춰 잡았다. 잠재성장률은 한 나라의 노동·자본·자원 등 모든 생산요소를 모두 동원하면서도 물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생산 수준이다. 국가 경제를 지탱하는 ‘기초체력’과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잠재성장률이 1%대라는 말은 ‘당분간 1%대 저성장이 불가피해졌다’는 뜻인 셈이다.

◆KDI는 1.5%까지 하향 = 이번 OECD 전망은 국내 기관의 1%대 잠재성장률 전망 분석과 궤를 같이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앞서 국회 예정처는 지난 3월 발간한 ‘2025년 경제전망’에서 올해 잠재성장률을 1.9%로 전망했다. 2023년 2.1%, 2024년 2.0%에서 더 내려 1%대로 낮춰 잡은 것이다. 잠재성장률이 하락세인 점에 비춰 내년에는 1.9%보다 더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또 KDI가 지난 8일 공개한 2025~2030년 잠재성장률은 1.5%였다. 총요소생산성 하락 등이 반영되면서 2022년 당시 전망(2023~2027년 2.0%)보다 큰 폭으로 떨어졌다.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다른 OECD 회원국과 비교하면 하락세가 가파르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2017~2026년 10년간 한국의 잠재성장률 낙폭은 1.02%p(3.00→1.98%)다. 잠재성장률이 공개된 37개국 중 7번째로 하락 폭이 크다.
세계 1위 경제 대국 미국의 잠재성장률은 2.2~2.4%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2022년부터 5년째 미국을 밑도는 것으로 추정됐다. 잠재 성장률의 가파른 하락은 그만큼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이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역성장 가능성까지 거론 = 더 큰 문제는 잠재성장률 하락 추세의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KDI는 기준·낙관·비관 등 어떤 시나리오에서든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계속 떨어지며, 2040년대에는 생산이 뒷걸음치는 ‘역성장’이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지금까지 한국 경제성장 경로가 잠재성장률 추계와 흡사했다는 점에서, ‘역성장’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잠재성장률 하락은 한국 경제가 외부 충격에 구조적으로 더 취약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잠재성장률이 높으면 충격을 버텨내며 플러스 성장이 가능하다. 반대로 낮으면 큰 충격에 바로 뒷걸음질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 지난 4월말 해외 주요 투자은행(IB) 8곳이 제시한 올해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 평균은 0.8%였다. 올해 잠재성장률이 KDI 추산(1.8%)과 같다면, 최근 정치 불확실성 장기화와 미국 상호 관세 충격 등 대내외 악재로 성장률이 1.0%포인트(p) 낮아졌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올해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1.0%보다 낮았다면, 한국 경제는 역성장을 기록할 수도 있는 셈이다.
잠재성장률 하락은 정부가 쓸 수 있는 경기부양 카드가 그만큼 줄어든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17일 ”잠재성장률 이상으로 경기를 부양하는 것은 부작용을 초래한다“고 경고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인구구조 변화가 핵심요인 = 한국의 잠재성장률 하락은 저출생·고령화에 따라 생산요소인 노동·자본 투입의 감소, 생산성 향상 요인인 총요소생산성 둔화가 모두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특히 KDI는 인구구조 변화를 잠재성장률 하락의 가장 큰 요인으로 진단했다. 2019년 정점(3763만명)을 찍은 생산연령인구(15~64세)가 빠르게 감소하면서 경제성장의 연료인 노동력이 빠르게 고갈되고 있다는 뜻이다.
성숙기에 진입하고 있는 한국 경제의 투자 둔화 현상은 성장의 또 다른 연료인 자본 투입 감소로 이어지고 있고, 인구구조 변화는 이를 부추기는 모양새다.
고령화는 총요소생산성 역시 끌어내리는 것으로 분석된다. 노동·자본 외에 기술·효율성·혁신 등을 통해 더 늘어난 산출량을 측정한 것이 총요소생산성이다. KDI는 ”새로운 기술 개발과 습득이 비교적 용이한 청년층 비중의 감소는 경제 전반의 생산성 향상에 부정적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인구구조나 자본 투입 구조를 당장 변화시키기 어렵다는 점에서 일단 단기적으로 총요소생산성 개선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KDI는 진입장벽 완화·규제 철폐를 통해 새로운 혁신 기업의 출연과 생산성 향상을 유인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연공서열형의 경직적 임금체계나 비정규직 대비 정규직 근로자 과보호, 노동시장 규제 등을 완화해 인적자원을 더욱 효율적으로 재배분할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고 했다.
국회 예정처도 기술혁신과 연구개발(R&D)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디지털 전환과 인공지능(AI) 도입 활용을 통한 기술혁신, 자동화 등으로 동일한 노동투입 대비 생산성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