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 부실, 부동산신탁사로 위험 전이…책임준공 부담 10조
신탁사 고유계정에서 7.7조 대여 … 신탁사 자본 5.8조 보다 많아
1.5조 부실자산으로 분류 … 부동산 침체 장기화, 재무부담 확대
책준형 PF잔액 신한·KB 2조 넘어, 하나·우리·코리아신탁도 규모 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위험이 금융회사 재무건전성 악화에 시한폭탄이 되고 있다. 특히 중소형 건설사들이 공사비 상승 등을 감당하지 못해 쓰러지면서 부동산PF 사업장의 책임준공을 확약한 부동산신탁사들이 고스란히 부담을 떠안고 있다.
15일 전자금융공시시스템 등에 따르면 2024년말 기준 부동산신탁사 14곳(신영부동산신탁은 2024년 9월말 기준)의 책임준공형(책준형) 토지신탁 사업장은 246곳, PF 실행 잔액은 10조3426억원이다. PF사업장에 대출을 해준 채권자들은 책임준공의무 미이행시 신탁사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고 있어 책임준공형 토지신탁 사업장 PF 잔액은 사업장 부실에 따라 신탁사 부담으로 전가된다.
책임준공형 토지신탁은 시공사가 부담하는 책임준공의무를 부동산신탁사가 함께 보증하는 것을 말한다. 시공사에 문제가 발생해 책임준공의무를 이행하지 못할 경우 책임주체는 책임준공확약을 제공한 신탁사가 된다.
책임준공 수행을 위해 사업비 조달이 필요하면 신탁사는 고유계정 자금을 신탁재산에 대여하고, 이 자금은 신탁계정대에 차입금으로 회계 처리돼 사업비로 투입된다.
부동산신탁사의 신탁계정대 규모는 2023년 부동산PF 부실이 본격화되면서 급증했다. 2023년 이전까지 2조원 가량이었던 신탁계정대 규모는 지난해말 7조7016억원으로 전년말(4조8550억원) 대비 58.6% 증가했다. 부동산신탁사 자본 총액(5조8000억원) 보다 커졌다.
신탁계정대 부실자산 규모도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공사가 지지부진하고 완공을 해도 사업성이 떨어지는 부동산PF 사업장이 늘었기 때문이다. 지난해말 신탁계정대 부실(회수의문, 추정손실) 규모는 1조5551억원으로 전년(6386억원) 대비 약 2.4배 증가했다. 금융권에서는 통상 ‘정상’과 ‘요주의’를 제외한 ‘고정, 회수의문, 추정손실’을 부실채권으로 분류한다. 하지만 부동산신탁업에서는 회수의문과 추정손실을 부실로 보고 있다.
회수의문은 ‘고정으로 분류된 신탁사업에 대한 총여신 중 손실발생이 예상되나 현재 그 손실액을 확정할 수 없는 회수예상가액 초과여신’이다. 추정손실은 ‘고정으로 분류된 신탁사업에 대한 총여신 중 회수불능이 확실해 손실처리가 불가피한 회수예상가액 초과여신’을 말한다.
◆교보·KB·신한, 신탁계정대 부실 규모 커 = 신탁계정대 부실 규모는 교보자산신탁이 3400억원(회수의문)으로 가장 많다. KB부동산신탁과 신한자산신탁도 각각 3119억원, 2249억원으로 규모가 크다.
신탁계정대 규모는 KB부동산신탁이 1조1539억원으로 가장 크다.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부실이 될 가능성이 있는 ‘고정’으로 분류된 자산 규모가 크다는 점이다. KB부동산신탁의 고정 규모는 4247억원이다. 신한자산신탁은 2996억원, 교보자산신탁은 2345억원이다. 추가 부실에 따른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한국자산신탁(5569억원), 한국토지신탁(3401억원), 하나자산신탁(2992억원)도 규모가 크다. 다만 한국토지신탁은 책준형 사업장이 1곳뿐이어서 추가 부실에 대한 우려가 낮은 편이다.
책준형 사업장 PF 실행 잔액은 신한자산신탁이 2조524억으로 가장 크고, 사업장도 37곳으로 가장 많다. KB부동산신탁도 2조492억원(31곳)으로 비슷한 수준이다.
신한자산신탁의 경우 책임준공기한을 넘긴 사업장이 9곳으로 PF 대출 잔액은 3524억원이다. 시공사가 책임준공의무를 미이행한 사업장은 7곳으로 PF대출 잔액은 3908억원이다. 신한자산신탁의 책임준공 부담이 7432억원에 달하는 셈이다. 책임준공기한이 도래하지 않은 사업장은 21곳으로 대출 잔액은 1조3091억원이다.
KB부동산신탁의 경우 책임준공 의무를 기한 내 이행하지 못한 사업장은 13곳, PF대출 잔액은 9849억원으로 1조원에 육박한다. 책임준공 미이행에 따라 채권자들이 KB부동산신탁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약정금 소송은 5건이다. 소송가액은 적게는 40억원, 많게는 396억원이다.

◆차입 부채 증가로 부채비율 상승 = 책임준공 의무 이행을 위한 자금조달로 신탁계정대가 급증했고, 부동산신탁사들은 외부에서 차입을 늘렸다. 14개 부동산신탁사 전체 차입 부채는 2022년 12월 8000억원에서 지난해 12월 3조7000억원으로 4.6배 이상 증가했다. 부채비율은 2022년 12월 34.7%에서 지난해 12월 80.9%로 급증했다. 지난해 11월 금융당국으로부터 경영개선명령을 받은 무궁화신탁의 부채비율이 168.1%로 가장 높다. 한국투자부동산신탁(167.6%), 대신자산신탁(149.0%), 신한자산신탁(145.5%), 대한토지신탁(142.7%), KB부동산신탁(129.3%)이 부채비율 100%를 넘어섰다.
신한자산신탁은 지난해 1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와 5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했지만 부채비율이 계속 상승했다. KB부동산신탁은 1500억원 유상증자, 1700억원의 신종자본증권 발행을 통해 3200억원을 자본으로 쌓았으면 지난해 3월 293.5%까지 치솟았던 부채비율은 9월말 109.0%로 낮아졌다. 하지만 불과 3개월 만인 12월말 부채비율은 129.3%로 다시 상승했다. 오지민 한국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2025년 하반기부터 신규 신탁계정대 투입부담이 2023년과 2024년에 비해 완화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사업장 분양성과가 예상 대비 저조한 경우 이미 투입된 신탁계정대의 회수 지연, 대손충당금 적립 부담 확대가 나타나면서 재무안정성 관리부담이 지속될 것”이라며 “책준형 개발신탁 관련 소송위험이 상존하는 점 또한 재무안정성 측면의 부담요소”이라고 말했다.
◆책임준공 못하고 소송 패소시 독자 생존 어려울 수도 = 책임준공 의무 미이행으로 채권자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부동산신탁사들이 패소할 경우 재무건전성은 크게 악화될 전망이다.
최근 한국신용평가에서 KB부동산신탁, 교보자산신탁, 한국투자부동산신탁, 대신자산신탁, 한국토지신탁, 대한토지신탁, 코람코자산신탁 등 7개곳이 소송 패소로 PF원리금을 인수하는 상황을 가정해 분석한 결과 지난해말 대비 신탁계정대는 1조6000억원 증가하고 대손부담은 5644억원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신용평가는 “책준형 사업장 수가 많고, 자기자본 대비 수주 규모가 큰 신탁사의 부담이 크게 나타난다”며 “이같은 시나리오의 부정적 파급효과는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현실화될 경우 일부 부동산신탁사들은 계열의 지원 없이는 현금 유동성에 상당한 어려움이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소형 건설사의 신용위험이 상승하고 지방 분양경기 침체가 심화되는 상황을 고려한 시나리오에서는 신탁계정대 규모가 전년 대비 1조1000억원 증가하고, 대손부담은 4200억원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다수의 사업장에서 예상치 못한 공사비 30% 상승 을 가정하고 추가 분양이 없다는 가정 하에서다.
한국신용평가는 “2025년 들어 중소형 건설사 신용사건이 증가함에 따라 신탁사 재무부담이 높아지는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며 “책준형 위험관리와는 별개로 신탁사의 수익기반 약화가 나타나는 점 또한 주요 모니터링 요소”이라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은 부동산신탁사의 건전성 악화가 대주단과 다른 사업장 등으로 전이될 경우 부동산시장 전반의 경색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사업장별 엄정한 점검을 부동산신탁사들에게 당부했다. 금감원은 “차입형 토지신탁은 대손충당금 적립시 분양 저조에 따른 부실 가능성 등을 적절히 반영하는 등 최대한 보수적으로 운용해 위험에 대비하고, 책준형은 사업장별 공정관리에 힘쓰고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충분한 대응여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