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분야 정책제안

“문화사회, 국가 운영의 핵심가치 돼야”

2025-05-15 13:00:01 게재

문화민주주의 위한 국정 운영 방식 전환 요구 … 표현의 자유·문화자치·문화노동권 강조

문화사회 실현을 위해 활동하는 문화운동단체 문화연대는 제21대 대통령선거를 맞아 문화사회로 대전환을 위한 문화정책 제안을 발표했다고 8일 밝혔다. 제안서에는 ‘블랙리스트와 미투를 겪고 내란범들까지 만난 후에야 문화와 일상의 소중함을 알았네’라는 제목이 붙었다. 문화정책을 한 부처의 업무가 아닌 국정의 중심 가치로 삼고, 행정 주도가 아닌 시민 주도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안서에 담겼다.

“문화정책을 국정 운영의 가치이자 원리로 재개념화해야 합니다. 문화사회는 업종이나 분야의 경계를 넘어, 사회 구성과 국가 운영의 핵심 가치로 구현돼야 합니다. 문화정책은 문화체육관광부의 개별 사업이 아닌, 국가 정책 간 연결과 공유의 매개로 자리매김해야 합니다. 또한 국가가 직면한 정책 과제와 의제에 문화적 가치와 접근을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합니다.”

14일 이동연 문화연대 공동대표의 제안서에 대한 설명이다. 문화연대는 문화정책이 문체부만의 과업이 아니라 국정 운영의 가치가 돼야 하며 사회의 다양한 현안에 대해 문화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12.3 내란사태 이후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문화예술인대회 ‘예술난장’. 사진 문화연대 제공

◆“국가 주도 문화행정은 한계 도달” = 문화정책의 주요 방향으로 문화연대는 삶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성장과 경쟁이 아닌 대안적 문화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대안적인 세계관이 필요한 시기”라면서 “기후위기, 기술과잉, 지역소멸, 불평등 양극화, 고립감과 혐오범죄 등 지구적 차원의 문명 전환과 환경 변화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불로소득 자본주의의 성장, 개발, 경쟁, 가속주의 등이 가져온 인류 문명 다중 위기와 한계에 대한 본질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문화연대는 문화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기반으로 국가권력 주도가 아닌 문화자치의 시대를 열자고 밝혔다. 동일한 맥락에서 문화정책의 사회적 가치와 역할을 회복하자고 강조했다. 문화연대는 “2000년 이후 압축적이고 맹목적으로 추진돼온 한국식 국가 주도, 동원 중심의 문화행정은 한계에 도달했다”면서 “문화정책에 대한 개념 자체를 국가권력 중심에서 시민 주도, 문화 자치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가 문화정책은 시민과 공동체 그리고 문화생태계의 공존과 상생을 우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나아가 문화민주주의는 관료주의 문화행정에 대한 대개혁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반복되는 블랙리스트 국가범죄, 정부 및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하청 계열화된 문화행정 체계 자체의 개혁 없이는 새로운 문화정책이 수립돼도 실제로 작동될 가능성이 없는 상황”이라면서 “다음 정부의 문화정책은 문체부를 비롯해 문화 분야 공공기관들에 대한 개혁과 혁신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화부총리, 대통령실 문화수석 신설 = 핵심 개혁과제로 문화연대는 문화적 가치에 기반을 한 통합적 국정 운용을 위해 문화부총리 제도를 도입하고 대통령실에 문화수석을 신설할 것을 제안했다. 또한 문화정책을 예술 지역문화 스포츠 문화경제(문화산업 및 관광산업) 문화유산 중심으로 재구성할 것을 밝혔다. 문체부의 공보처 업무는 폐지할 것을 주장했다.

이어 문화재정 중장기 정책으로 문화예산을 전체 예산의 3%로 확대하며 다양한 기금을 통한 재원 다각화를 추진할 것을 제안했다. 또한 지원사업의 경우 사업을 위한 사업이 아니라 창작자와 시민들을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법제도 정비와 관련해선 △블랙리스트 특별법 제정 △헌법 개정 및 제7공화국 준비 △지역문화 재구조화 및 활성화를 위한 법제도 정비 △예술 창작과 노동에 대한 기본권 보장을 위한 법제도 정비 △사회적 가치와 창작자의 권리 확대를 위한 저작권법 정비 등을 제안했다.

◆문화경제청·한국문화기술연구원 설립 = 다음 정부 10대 문화정책 제안을 통해 문화연대는 이같은 제안들을 보다 구체화했다. 우선, 문화연대는 ‘표현의 자유 확대와 블랙리스트 국가범죄 진상규명’을 주장했다. 이를 위해 블랙리스트 특별법을 제정하고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를 설치하자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 8일 ‘블랙리스트 특별법 제정 사회적 대토론회’에서는 블랙리스트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법 제정 필요성이 공유된 바 있다. 강신하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문화예술스포츠위원회)는 “문화예술인을 실질적으로 보호할 법이 없는 한 블랙리스트는 언제든 재작동할 수 있다”면서 “표현의 자유와 창작의 자율성을 지키기 위해 특별법 제정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문화연대는 문화자치를 위한 지역문화정책 협력체계 확보를 위해 지역문화위원회 출범을 제안했다. 지역문화진흥원을 지역문화위원회로 전환하고 이를 거점으로 광역 및 기초 문화재단 등이 참여하는 지역문화협력체계를 구축하자는 제안이다.

아울러 문화산업 기반 마련을 위해 문화경제청을 설립하자고 제안했다. 문화기술 연구개발을 확대하기 위해 한국문화기술연구원 설립도 제안했다.

이들은 “정부의 대표적 지원기관인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경우 국내외 문화산업 환경이 크게 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개별화된 지원사업 배분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서 “국가 차원에서 문화의 경제적 가치를 다각적으로 조망, 연구하며 지원 플랫폼을 중장기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화연대는 지역 문화예술인들을 위한 ‘지역문화 통합 일자리 지원센터’ 설립도 제안했다. 지역을 기반으로 문화예술 스포츠 관광 분야의 일을 사회적 정책으로 연결하고 기획, 조정하는 플랫폼이다. 중장기적으로는 프랑스 국립예술직업센터처럼 고용노동부 문체부 교육부가 연계하는 국가 단위 기관으로 확대될 수 있다.

문화 분야 노동의 지위와 권리보장을 위한 계약 준수와 노동권 보장을 위한 법제도 개선 필요성도 지적됐다. 문화 분야 노동의 경우 프리랜서의 비율이 70%를 차지함에도 고용 불안정을 해소할 수 있는 사회보장제도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문화예술 분야 노동의 정체성과 특성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책과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외에도 문화연대는 △성평등 문화정책 추진기반 구축 △기후위기 시대에 적응하는 지속가능한 문화정책 기준 마련 및 제도화 △소수자문화권 지원 확대 △생활스포츠에 기초한 삶의 질 개선 등을 제안했다.

한편 문화연대는 더불어민주당 개혁신당 민주노동당에 정책제안서를 전달했다. 또한 문화단체들과 함께 각 후보 진영 문화정책 책임자들과 공개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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