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사전투표율이 높아지는 이유

2025-05-19 13:00:02 게재

투표는 언젠가부터 ‘올무’였다. 투표권은 소중한 것이고 이를 행사하지 않는 것은 시민의 의무를 외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투표행위가 곤혹스러울 때가 적지 않았다. 특히 누군가를 찍어야 할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지 못했을 때 더욱 그랬다. “인물보다 당이 중요하지”라며 누가 묻지 않을 텐데도 애써 변명거리를 찾기도 했다.

벽보에 붙어있는 후보들 중에 눈길을 멈추게 하는 후보가 왜 없었을까. 벽보의 인물들은 모든 것을 다해 줄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당선 후엔 너나없이 달라졌다. “근데 어쩌지, 이미 당선됐는데”라며 놀림 당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런 푸념을 어딘가 풀어내면 훈계조를 듣기 십상이다. “투표는 최선이 아닌 차선, 그것도 안 되면 차악을 선택하는 것”이라는 ‘국룰’ 조언을 듣기 십상이다. 대한민국 유권자라면 다 아는 정답을 정치부 기자 경력 10년을 넘겼는데도 모르느냐는 핀잔도 곁들여진다.

일단 안심했다. 투표에 대한 ‘습관적 의무감’을 공유하는 공범 의식마저 들었다. 신성한 투표권을 놓고 함부로 무용론까지는 아니더라도 유권자를 괴롭히는 제도로 변질됐다고 생각하는 게 기자만이 아니었구나 싶었다.

차선, 차악은 어떻게 찾아내는 걸까. 차선은 ‘가장 좋지는 않아도 그래도 괜찮은’ 정도로 해석되는데 사실 이런 인물조차 찾는 게 쉽지 않았다. 그렇다면 ‘소거법’이다. ‘덜 나쁜’ 차악을 골라내는 거다. ‘절대 돼선 안되는 인물’을 순서대로 없애다가 마지막에 남는 사람을 선택하는 방식이다.

그러고 나면 더 비참해진다. ‘차악’까지 선택해서 내 권한을 맡기려, 내 삶의 결정권을 일정기간 내주기 위해 투표장에 가는 게 뭔가 께름칙했다.

왜 이렇게 됐을까. 거대양당을 빼면 누구에게 주든 내 표가 쓸모없는 ‘사표’가 될 각오를 해야 한다. 거대양당이 만들어놓은 구조다. 유권자는 ‘둘 중 하나’를 찍도록 강요당하고 있는 셈이다. 선택권이 없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6.3 조기대선도 예외가 아닐 것 같다. 5월 3주 한국갤럽조사에서 ‘어느 정당이 싫거나 어느 후보가 싫어서 상대 정당, 또는 상대 후보를 지지한다’고 응답한 유권자가 10%를 넘어섰다. 호감도가 50%를 넘는 후보도 없다. 1987년 대선 이후 과반 득표 당선자가 나온 건 2012년 대선 때(박근혜 당선)가 유일하다. 유권자들은 고민 중이다.

그래서 사전투표 참여율이 높아지는지도 모르겠다. 사전투표는 ‘전국 어디서든 쉽게’ 미리 투표할 수 있다. 투표권을 행사해야만 하는 부담이나 죄책감을 빠르게 벗겨준다. 그러곤 국가로부터 경품처럼 ‘휴일(투표일)’을 받는다. 올해는 사전선거 투표율이 더 높아질 것 같다.

박준규 정치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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