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대선 뒤에 기다리고 있는 것들
대선이 10일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각 후보 진영도 잰걸음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측은 보수와 중도 쪽으로 영역을 확장하며 압도적 승리에 더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측도 홍준표 전 대구시장에게 특사를 보내고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후보에게 구애하는 등 ‘스몰텐트’라도 쳐보려고 안간힘이다.
그러나 유권자들의 시선은 이미 대선 너머로 가 있는 것 같다. 그것도 그럴 것이 아직 몇가지 변수들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현재까지의 흐름이 바뀔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여서다. 이재명 김문수 후보 지지율 격차는 공식선거운동일 후에도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한국갤럽의 13~15일 조사에서도 이재명 51%, 김문수 29%, 이준석 8%이었다. 국민의힘이 바라마지 않는 김문수-이준석 단일화가 이뤄진다고 해도 판을 뒤집기는 역부족인 셈이다.
새 정부 인사가 향후 정치의 가늠자 될 듯
이재명 후보의 대선 후 행보에 대해서는 진보진영뿐 아니라 보수진영에서도 촉각을 곤두세운다. ‘이재명 시대’를 기정사실로 보고 과연 그가 잘 해낼지, 장담한 대로 실용적인 행보를 보일지, 언제 본색을 드러낼지 등등 나름의 통밥을 굴려보는 것일 게다.
이 후보는 “진짜 대한민국을 만들 것”이라고 장담하지만 여전히 믿음을 주지 못하는 건 사실이다. 완강한 안티층뿐 아니라 중도층에서도 그동안 이 후보나 민주당이 보여준 모습에 불안감을 얘기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런 불신을 눅여낼지의 첫번째 가늠자는 인사가 될 전망이다. 그동안에도 새 정부의 임기 초 인사는 그 정권의 앞날을 규정하는 좌표가 됐다. 윤석열정권의 몰락도 ‘검찰공화국’으로 상징되는 집권 초 인사 때 이미 예견됐던 부분이었다.
이 후보와 민주당의 태도 변화 여부도 관심사다. 보수진영에서는 이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입법 행정 사법의 3권을 모두 장악해 권력을 전횡할 것이라고 공격한다. 이런 공세가 어느 정도 먹히는 것은 민주당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그동안 민주당은 오뉴월 수캐 뭐 자랑하듯 툭하면 쪽수의 완력을 과시해왔다. 최근의 사법부에 대한 태도도 비슷하다.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 마크 터쉬넷이 ‘헌법적 강경 태도(constitutional hardball, 제도적 특권을 마구 휘두르는 행위)’라고 명명한 이런 모습은 이 후보가 장담한 ‘국민통합’과도 거리가 멀다. 그런데 이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민주당은 어떻게 바뀔까.
국민의힘 내부가 염불(대선승리)보다 잿밥(당권)에 관심을 가진 지는 오래다. 한덕수 전 총리로 후보교체를 시도한 친윤의 한밤 친위쿠데타나, 공식선거운동 후에도 극우본능을 감추지 않는 김 후보의 태도는 당권을 염두에 둔 게 아니라면 달리 해석이 되지 않는다. 뒷짐 지고 있다가 뒤늦게 나홀로 지원유세에 나선 한동훈 전 대표도 마찬가지다.
국민의힘 당권싸움은 김 후보의 득표율에 따라 결정될 전망이다. 김 후보가 유의미한 득표를 하면 그가 가장 유력한 당권주자가 될 것이다. 하지만 예상보다 큰 격차로 패배하면 그동안 누적된 당 내부의 모순이 한꺼번에 폭발할 수 있다.
지금 국민의힘은 자당이 배출한 대통령의 연이은 탄핵으로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은 상태다. 특히 윤석열의 내란사태를 옹호하면서 스스로 확인사살까지 한 형국이다. 어쩌면 대선 다음날부터 “서까래 몇개 바꾸면 된다”는 수구파와 “썩은 기둥을 뽑아내고 주춧돌부터 다시 놓아야 한다”는 개혁파들이 서로 삿대질하며 으르렁거릴 수 있다. 그런데 내란사태와 대선패배의 폐허 위에 개혁보수의 새집을 지을 대목수가 있기나 한가.
환호도 비난도 경계하는 ‘총욕약경’의 지혜를
이제 10여일 뒤면 새 정부가 출범하게 된다. 아마도 새 대통령은 역대 정권과 다른 환경에서 집무를 시작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이 후보의 경우 골수 지지층의 요구와 극렬한 안티층의 반대가 뒤섞이면서 자신의 의지와 무관한 방향으로 국정이 흘러갈 수 있다.
이럴 때 지도자에게 필요한 것은 ‘총욕약경(寵辱若驚)’의 지혜일 것 같다. 2500년 전 노자는 지도자의 치세(治世)와 관련해 ‘총애를 받을 때나 욕을 먹을 때나 다 같이 놀란 듯 경계하라’는 경구를 남겼다.
실제 앞선 대통령들의 실패는 골수 지지층의 ‘총(寵, 환호)’을 경계하지 못하고, 골수 안티층의 ‘욕(辱, 비난)’을 그냥 무시한 데서 비롯된 측면이 없지 않다. ‘0.73%p 차이’보다 ‘대선 승리’만 봤던 윤석열정권의 몰락이나, 촛불시민과 ‘557만표 역대 최대 득표 차이’만 믿었던 문재인정권의 실패가 가장 비근한 사례다. 새 대통령이 전임자의 이런 ‘오답노트’에서 무엇을 배웠는지는 그리 오래지 않아 판명될 것이다.
남봉우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