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볼프람 호르스트만(Wolfram Horstmann) 독일 FIZ 카를스루에 라이프니츠 정보인프라연구소 CEO

“도서관, 신뢰할 수 있는 진실의 공간”

2025-05-22 13:00:01 게재

인공지능 시대에 정보 평가할 수 있는 사서 중요 … 전세계적 지식 개방, 사회적 과제

12~13일 국립중앙도서관 개관 80주년 기념 국제학술세미나 ‘오픈 메타데이터: 도서관과 오픈 사이언스(Open Metadata: Libraries & Open Science)’가 열렸다. 메타데이터는 문헌이나 디지털 자원의 서지 및 구조 정보를, 오픈 메타데이터는 상호운용성과 개방성을 지향하는 메타데이터를 뜻한다. 오픈 사이언스란 연구의 전 과정과 결과를 누구에게나 열린 방식으로 공유하고 협업하도록 하는 국제적 운동이다.

세미나는 국내외 도서관 및 연구기관이 오픈 사이언스 관점에서 협력과 실천 방향을 논의하는 장으로 마련됐다. 특히 세미나는 스탠퍼드대학교를 중심으로 구성된 OMLOS (Open Metadata: Libraries & Open Science)와 연계해 기획됐다. OMLOS는 도서관이 오픈 사이언스를 실현하는 주체로서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을 중심으로 국제적 논의의 장을 형성하고 있다.

13일 세미나의 기조강연을 맡은 볼프람 호르스트만(Wolfram Horstmann) 독일 FIZ 카를스루에 라이프니츠 정보인프라연구소 CEO를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만나 인공지능(AI) 시대 도서관 및 사서의 역할과 지식 공유의 미래에 대해 들었다.

사진 이의종

●뉴스와 소셜미디어가 넘치고 AI가 등장한 시대, 사회는 왜 더 혼란스러워졌나.

우리는 정보의 우주에서 살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스마트폰을 통해 언제나 정보를 접할 수 있지만 그만큼 환경은 소란스럽다. 100년 전보다 우리 뇌가 처리해야 할 정보는 훨씬 많아졌다. 정보의 질에도 문제가 있다. 예전엔 호랑이에 대해 알고 싶으면 책을 찾아봤지만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검색한다. 그러면 호랑이에 대한 정보뿐 아니라 호랑이 인형을 판매하는 광고도 접하게 된다. 정보의 질이 변했고 더 주관적으로 바뀌었다.

AI는 정보의 양을 더욱 증가시켰다. AI가 생산하는 정보는 대부분 산업적 상업적 맥락에서 만들어진다. 이제는 AI가 만든 정보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가 새로운 과제가 됐다. AI는 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지만 동시에 위험 요소도 존재한다.

●도서관이 중요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도서관은 지식을 관리하며 다수의 시민이 이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기관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정보 환경은 매우 소란스럽고 주관적이며 쉽게 조작될 수 있다. 이럴 때일수록 정보를 평가하고 신뢰할 수 있는 ‘진실의 공간(Temple of Truth)’이 필요하다. 도서관은 믿을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사회의 신뢰 기반을 형성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도서관은 시민들이 AI을 이해하고, 이를 올바르게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등 사회적 플랫폼으로 기능할 수 있다.

●인간은 AI 시대에도 지식의 주체일 수 있을까.

AI를 인공적 지능이라고 하지만 사실 인공적인 정보 생산 체계다. 정보와 지식은 동일하지 않다. 정보가 인간의 감각을 통해 뇌에 들어오면 뇌에서 정보를 처리해서 지식이 된다. 인간의 과제는 정보를 올바르게 해석하고 평가하는 것이다. AI는 사회적 혼란을 초래할 수 있고 이는 위험하기까지 하기 때문에 정보에 대한 해석과 평가 능력이 중요하다.

●AI 시대, 사서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사서들은 전통적으로 지식을 수집하고 조직하며 정리해왔다. 이러한 역할은 앞으로 상당 부분 AI를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AI 시대에는 정보를 비판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관이 필요하다. 이때 전통적으로 수집되고 보존된 지식을 평가하는 훈련된 사서들이 필요하다. 이제 사서들은 기존 자료를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AI가 생성한 정보와 지식을 사회적 맥락에서 평가하는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팔만대장경은 수백년 전 한국의 지식과 문화가 집약된 결과물로, 오늘날까지 목판 인쇄 형태로 남아 있다. 21세기에 이같은 팔만대장경을 만든다면 100년 후 후손들이 21세기의 지식과 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지금의 기록을 어떻게 남길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 작업은 사서가 할 수 있다. 사서는 AI 시대의 지식과 정보를 의미 있게 선별하고 체계화해 미래 세대가 참고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오픈 지식 인프라’란 무엇인가.

‘오픈 지식 인프라’는 현실에서 구현되기 어려운 꿈이자 이상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꿈을 가져야 한다. AI 등 새로운 기술이 가져오는 위험요소와 불확실성이 커지는 오늘날, 인류는 공동의 지향점을 필요로 한다.

도서관은 경쟁이 아닌 협력과 공존을 지향하는 사회적 기관이다. 또한 도서관은 중립적이며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를 초월한 공간으로 거의 모든 문화권에 존재한다. 이를 기반으로 도서관은 전세계적 개방형 지식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다.

과거 도서관은 지역사회 기반의 기관이었다. 주민들이 정보를 탐색하고 책을 읽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이제 도서관은 디지털을 기반으로 전세계적 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오픈 지식 인프라와 관련한 사례가 있나.

과학 출판물, 즉 과학 지식을 무료로 개방하는 ‘오픈 액세스(Open Access)’ 운동은 약 25년 전 시작됐다. 초기 오픈 액세스 논문 비중은 거의 0%에 가까웠지만 최근 상당수의 논문이 오픈 액세스로 출판되고 있다. 느리지만 확실한 진전이다.

지식의 개방은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과제이기도 하다. 관련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설득이 꾸준히 이뤄져야 한다.

독일은 역사 의학 수학 재료과학 물리학 등 27개 분야의 정보를 통합한 ‘국가 연구데이터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이 인프라는 연구 데이터를 개방해 활용하고 상호 교환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2020년부터 10년 계획으로 대규모 예산이 투입됐다. 이와 유사한 시도는 독일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들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오픈 지식 인프라는 오늘날에도 중요하지만 미래에는 더욱 중요한 인프라가 될 것으로 보인다. 철도 공원 학교 등 인프라 보다 더 중요해질 수도 있다. 이를 구축하는 작업은 거대한 도전 과제이며 인류는 이에 적극적으로 힘을 모아야 한다.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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