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4개월 만에 사상 최고가 경신

2025-05-22 13:00:02 게재

제도금융권 본격 진입

글로벌 불확실성 영향도

가상화폐 시장의 대표주자인 비트코인이 4개월 만에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미국 현지시간 21일 오전 11시 7분 기준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Coinbase)에서 비트코인 가격은 전날보다 5.86% 상승한 10만9493달러를 기록했다. 지난 1월 21일 세운 10만9358달러를 넘어선 수치로 사상 최고가다. 역사상 처음으로 11만달러 돌파를 눈앞에 두게 됐다.

비트코인은 올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전 최고가를 기록한 후 미중 무역전쟁 등 외부 변수로 인해 한때 7만4000달러대까지 하락한 바 있다. 하지만 지난달부터 점차 반등세를 보였고, 최근 들어 상승폭이 더욱 가팔라지고 있다.

악시오스(Axios)에 따르면 이날 비트코인은 10만9565달러까지 치솟으며 이전 최고치를 800달러 가까이 웃돌았다.

이번 상승세의 핵심 요인은 제도권의 본격적 수용이다. 미국 상원은 19일 스테이블코인(stablecoin)의 발행과 담보 요건을 규정하고 자금세탁방지(AML) 의무를 부과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스테이블코인은 달러나 유로 등 실물자산에 가치를 연동시켜 가격 변동성을 최소화한 암호화폐다. 해당 법안은 비트코인 자체를 직접 규율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상화폐 전반을 제도권 금융으로 편입시키는 흐름으로 해석된다. 인베스토피디아(Investopedia)는 “워싱턴의 암호화폐 수용이 월가의 디지털 자산 접근을 가속화했다”고 평가했다.

텍사스주 하원도 20일 비트코인을 전략적 비축 자산으로 보유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는 주 단위의 자산 정책에서 가상화폐가 법정 자산에 준하는 지위를 확보하게 됐음을 의미한다. 기관투자자와 정부 부문의 수요가 장기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커졌다.

금융권의 입장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미국 최대 은행 JP모건체이스는 그동안 회의적인 입장을 견지하던 CEO 제이미 다이먼의 발표를 통해 고객들의 비트코인 거래를 공식 허용했다. 그는 “나는 흡연을 권장하지 않지만, 흡연할 권리는 옹호한다. 비트코인을 구매할 권리 역시 마찬가지”라고 발언했다.

이처럼 금융권의 진입과 함께 자금 유입도 가속화되고 있다. 인베스토피디아에 따르면 블랙록(BlackRock)의 iShares Bitcoin Trust에는 지난달에만 약 65억달러가 유입돼 미국 상장지수펀드(ETF) 가운데 다섯 번째로 많은 자금이 몰렸다. 이는 비트코인 펀드가 4월 하락장 이후 손실을 회복했음을 의미하며, 향후 자산 방어 수단으로서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는 신호다.

시장 분석가들은 기술적 지표 역시 강세 신호를 보여준다고 해석한다. 가상화폐 거래 플랫폼 페퍼스톤(Pepperstone)의 크리스 웨스턴은 “비트코인의 가격 움직임은 전형적인 상승 국면의 패턴”이라며 긍정적인 전망을 제시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디지털 자산 플랫폼 넥소(Nexo)의 공동 창립자 안토니 트렌체프는 “제도적 모멘텀과 유리한 미국 규제 환경이 비트코인을 낙관적인 흐름으로 이끌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현재는 비트코인 반감기 이후 첫해로 역사적으로 최고점은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며 2025년 말까지 15만달러 돌파 가능성도 언급했다.

이와 같은 상승세는 전통적인 자산시장과의 연동에서도 확인된다. 로이터에 따르면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NASDAQ)은 4월 저점 대비 30% 이상 상승했고, 미국 달러지수(DXY)는 약세를 이어가며 비트코인 환율 상승에 힘을 보탰다.

한편 이더리움(Ethereum), 리플(XRP), 솔라나(Solana), 도지코인(Dogecoin) 등 주요 알트코인도 비트코인을 따라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다만 그 폭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다. 코인게코(CoinGecko) 기준으로 이더리움은 2577달러, 도지코인은 0.23달러에 거래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관련된 밈코인 ‘오피셜 트럼프(Official Trump)’는 11.55% 급등한 14.63달러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비트코인 랠리가 과거와 다른 점으로 ‘안정적 조정과 회복의 반복’을 꼽는다. 악시오스는 “이전에는 최고가 후 급락이 일반적이었지만 이번 주기는 손실 폭이 작고 상승세가 길게 유지되고 있다”며 “다음 정점이 과거처럼 9월이나 10월에 도달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비트코인은 한때 주류 금융의 외면을 받던 자산이었지만 이제는 국가 정책과 제도, 월가의 투자 전략에 자연스럽게 포함되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따라서 이번 상승세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비트코인이 실질적인 금융자산으로 자리잡아가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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