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부실채권비율 4년 만에, 저축은행 연체율 9년 만에 최고치
경기 침체에 금융권 부실 점차 커져 … 거액 차입 기업그룹 10년 만에 최다
1분기 국내은행의 부실채권비율이 4년 만에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저축은행 연체율은 9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경기 침체로 채무를 갚지 못하는 기업들이 늘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이 증가하면서 갈수록 금융권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30일 금융감독원은 3월말 국내은행 부실채권비율이 0.59%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전분기말(0.54%) 대비 0.05%p, 전년 동기 대비 0.09%p 상승했다. 2023년(0.41%)과 비교하면 0.18%p 오른 것으로 2021년 3월말(0.62%) 이후 가장 높다.
부실채권 규모는 16조6000억원으로 전분기말(15조원) 대비 1조6000억원 증가했다. 총여신이 2799조1000억원에서 2817조원으로 17조9000억원 증가하면서 부실채권 규모가 커진 측면이 있지만, 부실채권비율이 상승한 것은 단순히 총여신이 늘었기 때문이 아니라 부실 증가 속도가 더 빨랐다는 의미다. 1분기 중 신규발생 부실채권은 6조원으로, 기업여신이 4조5000억원을 차지했다.
기업여신 부실채권 규모는 2023년 1분기 1조9000억원, 지난해 1분기 3조1000억원, 올해 1분기 4조5000억원으로 급격히 늘고 있다. 가계여신 부실채권 규모가 같은 기간 각각 1조원, 1조2000억원, 1조4000억원으로 소폭 증가한 것과는 차이가 크다.

◆기업은행, 부실채권 4.4조 가장 많아 = 기업여신 부실채권비율은 0.72%로 전분기말(0.66%) 대비 0.06%p 상승했다.
대기업여신은 0.45%로 0.03%p, 중소기업여신은 0.89%로 0.09%p 상승했다. 중소기업여신 중 중소법인여신 부실채권비율은 1.08%로 0.09%p, 개인사업자여신은 0.60%로 0.08%p 증가했다.
중소법인 부실채권비율은 작년 6월말 1.0%를 기록한 이후 0.99%로 하락했지만 다시 1%를 넘어섰다.
국내은행의 부실채권비율 상승은 지방은행에서 두드러졌다. 시중은행 부실채권비율은 0.36%인 반면 지방은행은 0.98%로 1%에 육박했다. 하나은행이 0.29%로 가장 낮고, 제주은행이 1.66%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특수은행의 부실채권비율도 0.88%로 높게 나타났다. 기업은행이 1.34%로 가장 높고 수출입은행(0.97%), 수협은행(0.72%) 순이다.
이밖에도 씨티은행(1.38%)과 부산은행(1.10%)이 1%를 넘겼다. 인터넷전문은행 중에서는 토스뱅크가 0.98%로 1%에 육박했다.
부실채권 규모는 기업은행이 4조4000억원으로 가장 많고, 농협은행(1조8000억원), 국민은행(1조6000억원), 수출입은행(1조3000억원), 산업은행(1조2000억원), 우리은행·신한은행(각각 1조1000억원) 순으로 나타났다.
◆저축은행, 기업대출 연체율 13.65% = 1분기 저축은행 연체율은 9.0%로 2015년말(9.2%) 이후 9년 만에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년말(8.52%) 대비 0.48%p 상승했다.
기업대출 연체율은 13.65%로 전년말(12.81%) 대비 0.84%p 상승했다. 토지담보대출 등 부동산PF 부실 여파에 개인사업자대출 부실이 늘면서 연체율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 가계대출 연체율은 4.72%로 전년말(4.53%) 대비 0.19%p 상승했다.
저축은행중앙회는 “부실채권 감축을 위한 매각·상각(1조3000억원) 등 적극적인 자구노력에도 불구하고, 연체 여신 증가와 여신규모 감소(1.4%)에 따른 모수효과로 연체율은 전년말 대비 증가했다”고 밝혔다.
저축은행은 여신과 수신이 모두 감소했다. 총자산은 118조6000억원으로 전년말(120조9000억원) 대비 2조3000억원(1.9%) 줄었다. 여신은 96조5000억원으로 1조4000억원(1.4%), 수신은 99조6000억원으로 2조6000억원(2.5%) 감소했다. 기업대출은 48조2000억원으로 1조2000억원(2.4%) 줄었다.
다만 저축은행 79곳의 1분기 당기순이익은 440억원으로 작년 1분기 1543억원 순손실에서 흑자로 전환됐다. 자본 적정성과 유동성 등 경영안전성은 법적 기준으로 볼 때 양호한 수준이다. 저축은행 자기자본(BIS)비율은 15.28%로 전년말 대비 0.26%p 상승했다. 법정 기준(자산1조원 이상 8%, 1조원 미만 7%) 대비 크게 높은 수준이다. 유동성 비율도 207.30%로 법정 기준(100%) 대비 107.30%p 높게 나타났다.
저축은행중앙회는 “연체율 등이 전분기 대비 다소 악화돼 경영안정성에 대한 금융시장의 우려가 있으나, 손실흡수능력은 충분한 상황”이라며 “당분간은 경영안정성을 중심으로 한 리스크 관리 강화 기조가 지속돼 본격적인 턴어라운드는 연말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금감원, 주채무계열 41곳 지정 = 기업들의 금융권 차입이 늘면서 금융감독원은 41개 기업집단을 주채무계열로 지정했다. 2015년(41개) 이후 10년 만에 최대다.
29일 금감원에 따르면 작년말 기준 총차입금이 2조4012억원 이상이고 은행권 신용공여 잔액이 1조4063억원 이상인 41개 계열기업군을 올해 주채무계열로 선정됐다. 주채무계열로 지정되면 주채권은행이 재무구조를 매년 평가해 평가 결과가 미흡할 경우 재무구조개선 약정 등을 체결, 자구계획 이행을 점검하고 재무구조 개선을 유도하는 등 관리를 받게 된다.
올해는 유진, 부영, 한국앤컴퍼니그룹, 영풍, 엠디엠, 현대백화점, 애경, 글로벌세아, 세아 계열이 총차입금과 신용공여 증가로 주채무계열에 새롭게 편입됐다. 금호아시아나, 한온시스템, 호반건설, SM은 제외됐다.
4월말 기준 41개 주채무계열 소속 기업체수는 6928개사로 전년보다 507곳(7.9%) 증가했다. 총차입금은 708조8000억원으로 전년(641조6000억원) 대비 67조2000억원(10.5%) 늘었다.
금감원은 “주채권은행이 금년도 주채무계열로 선정된 41개 계열에 대한 재무구조평가를 실시할 예정”이라며 “정성평가시 재무제표에 반영되지 않은 잠재 리스크를 충분히 반영하는 등 엄정한 평가가 이루어지도록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취약업종의 경우 영업 부진 등으로 인한 실적 악화 추세, 향후 자금유출 전망 대비 자금조달 여력 등도 평가하겠다는 것이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