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불합치’ 탄소중립기본법 개정 방향은
“탄소예산 명시·중간 목표 규정·거버넌스 마련 등 포함돼야”
서왕진 의원·플랜 1.5, ‘국가의 감축 책임 강화’ 토론회
지난해 8월 헌법재판소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 8조 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후 시민사회에서는 중장기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구체적으로 설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해 왔다. 헌법불합치된 조항에 대한 개정안 마련이 시급한 가운데 국회에서 ‘탄소중립기본법 개정과 국가의 감축 책임 강화’를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11일 플랜 1.5와 토론회를 공동개최한 서왕진 국회의원(조국혁신당)은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탄소중립기본법 개정은 늦어도 2026년 2월까지 완료해야 한다”며 “앞으로 남은 8개월 동안 치열한 토론이 필요하다. 개정안을 통해 새롭게 설정될 중장기 감축목표는 이재명 정부가 단계적으로 온실가스 감축을 실현하는 또 하나의 기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탄소중립기본법 8조 1항은 “2030년까지 2018년의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 대비 35% 이상의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율만큼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하는 것을 중장기감축목표로 한다”고 돼 있는데, 이에 대해 헌재는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감축목표에 관하여 그 정량적 수준을 어떤 형태로도 제시하지 않은 것은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헌법재판소 판결의 의미와 국가의 감축 의무’를 주제로 발제를 맡은 박시원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재 결정을 고려해 탄소중립기본법을 개정하려면 감축 원칙으로 ‘탄소예산’과 ‘형평성 원칙’을 명시해야 한다”며 “2035년, 2040년, 2045년 중간 목표도 함께 규정돼야 한다”고 밝혔다.
‘탄소예산’이란 지구 온난화를 일정 수준으로 제한하기 위해 설정된 ‘잔여 이산화탄소 배출허용 총량’을 뜻한다. 박 교수는 감축 실적을 확보할 수 있는 거버넌스와 관련해 “NDC는 단기적 사회·경제적 변수에 휘둘리지 않도록 상향식이 아닌 하향식으로 설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헌재 결정에 부합하는 감축경로 설정 및 기본법 개정방향’을 주제로 발제한 최창민 플랜 1.5 정책활동가는 “올해 9월 정부가 유엔에 제출할 예정인 2035년 NDC부터 탄소예산을 고려해 설정해야 한다”며 “헌재 결정을 반영한 우리나라의 탄소예산 최대치는 87.4억톤으로 산출되며 이를 기준으로 할 때 2035년까지 2018년 총배출량 대비 66.7% 감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토론에 참석한 패널들은 구체적인 수치 목표를 법으로 명시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고, 이를 이행할 수 있는 새로운 거버넌스 체계도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기후문제를 단순히 과학과 기술의 문제로만 바라봐서는 안되며 사회 경제적 전환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헌법소원 소송 당사자였던 류현정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는 “헌법소원 판결에는 기후 위기는 권리의 문제임이 담겨 있었다”면서 “기후 문제는 단지 환경 문제, 과학과 기술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기후 위기는 권리의 문제이기에 우리는 기후 대응을 어떻게 권리를 보장할 것인가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단지 설정해 놓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했다고 해서 기후 대응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모든 이의 권리가 지켜져야 기후 위기 대응에 성공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재홍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재의 불합치 결정은 기존 법이 국민의 환경권을 ‘최선’이 아닌 ‘최소한’의 수준에서도 보장하지 못했다는 의미”라며 “급속한 감축 목표 설정 여부는 환경권을 최소에서 최선으로 끌어올리는 핵심 요소”라고 말했다.
신근정 로컬에너지랩 대표는 “탄소중립기본법 개정을 통해 온실가스 감축의 실효성을 확보하고 지방정부의 책임과 권한을 함께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슬기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는 “근거와 수치가 강화됐다고 해서 이행이 자동으로 담보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감축 실행방안과 강화 논의에 다양한 주체가 참여할 수 있도록 민주적인 거버넌스를 재설계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
서 의원은 학계 및 시민사회의 의견을 수렴한 뒤 탄소중립기본법 개정안을 공개할 계획이다.
박소원 기자 hope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