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그들은 몰랐고 국민들은 알았다
지난 3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업재해 현황을 살펴보면 2022년 13만348명, 2023년 13만6796명, 2024년 14만2771명으로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에서 집중 관리한 사고사망자 현황을 보면 2022년 874명으로 높은 수치를 나타냈고 2023년 812명으로 감소하다가 2024년 다시 827명으로 증가했다.
윤석열정부에서는 2022년 11월 중대재해감축 로드맵을 발표하고 2021년 0.43에 이르는 사고사망만인율(노동자 1만명당 산재 사고사망자수)을 2024년 0.34를 거쳐 2026년까지 OECD 평균 수준인 0.29로 감소시키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하지만 2024년 사고사망만인율은 0.39로 나타나 계획된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자기규율 예방체계의 실패
정부에서 중대재해를 감축하기 위한 제1의 전략으로 삼은 것은 위험성평가를 중심으로 한 자기규율 예방체계를 확립하는 것이었지만 이 전략은 결과적으로 목표를 달성하는데 실패했다. 한국보건안전단체총연합회가 2025년 6월 한국 갤럽에 의뢰해 전국 성인남녀 100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국민들은 산재 예방과 감소를 위해 가장 우선시해야 할 것으로 ‘정부의 철저한 관리와 감독’을 꼽았다. 자기규율 중심의 정부정책과 다른 의견을 제시한 것이다.
이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정부가 가장 중요하게 추진해야 할 안전분야로 ‘산업안전 및 재해예방’을 1순위로 꼽아 건축물 등 노후시설안전, 홍수・화재 등의 재난, 폭염 등 기후변화, 학교안전, 교통안전 보다 산재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인식했다.
특히 국민 대부분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중대재해법)이 산재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인식하고 중대재해법을 현재보다 더 강화해야 한다고 대답해 정책 추진자들과 차이를 보였다. 2022년 윤 전 대통령이 취임 전 당선자 신분으로 경영계 대표들을 만났을 때 경영계가 가장 먼저 요구했던 내용이 중대재해법 완화였다. 21대 대선에서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중대재해법이 악법이라며 처벌이 능사가 아니라고 했다. 그들은 몰랐던 것이다.
최근 사망사고가 발생한 SPC삼립 시화공장과 태안화력발전소는 유사한 재해가 반복해서 발생한 사업장이다. 이들 사업장의 사업주는 중대재해법에 의해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고 결국 예방할 수 있던 사고를 막지 못해 안타까운 희생이 재차 발생했다. 처벌은 예방을 위한 가장 강력한 수단임에도 불구하고 중대재해법의 처벌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것이다.
이번 조사에서 중대재해법을 현재보다 더 강화해야 한다는 응답은 50대에서 72.9%로 가장 높았고 60대에서 63.3%로 두번째로 높았다.
2024년에 발생한 사고사망자 중 60대 이상이 48.5%를 차지했다. 50대 이상으로 확대하면 74.4%로 나타나 사고사망자 10명 중 7명이 50대 이상에서 발생했다. 이와 같은 현실에 비추어 보면 50~60대에서 중대재해법이 더욱 강화돼야 한다고 응답한 것은 그들이 처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들은 알고 있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4월 대통령 출마선언을 하면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정부와 국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며 생명존중 안전유지를 3대 목표 중의 하나로 제시했다.
이것이 목표로 끝나지 않고 반드시 실현돼 더 이상 일터에서 반복되는 죽음이 발생하지 않기를 기대한다. 안전이 멈추면 미래도 멈춘다.
정혜선
가톨릭대 교수
(사)한보총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