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해협까지 봉쇄?…국제유가 급등 고물가 불안 확산
정부 대책마련 고심하지만 뾰족한 대응방안 없어
‘물가안정’ 지상목표인 이재명경제팀 ‘첫 시험대’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촉발된 중동위기가 때아니게 한국의 물가불안을 키우고 있다. 우리나라 물가전반을 좌우하는 국제유가는 급등세이고 금값도 더 오를 조짐이다. 중동리스크에 금융시장 불안도 확산되고 있다.
정부는 중동산 유가 급등 등의 여파로 물가 불안이 심화될수 있다고 판단,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중동사태 자체가 ‘통제 불가능한 대외불확실성’이어서 마땅한 대응수단이 없어 고심이 커지고 있다. 차관 체제로 출범한 ‘이재명 경제팀’이 ‘중동발 물가위기’란 첫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검토에 ‘화들짝’ = 16일 오전 9시 기준 런던 ICE 선물거래소의 브렌트유 8월물은 전장 대비 1.85달러(2.49%)상승한 배럴당 76.08달러에 거래 중이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도 7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은 1.87달러(2.62%) 오른 73.16달러를 돌파했다. 서부텍사스산원유 선물 가격은 이날 아시아시장에선 장중 한때 14% 넘게 급등했다.
유가 상승세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인 이란은 약 330만 배럴의 석유를 생산하고, 200만 배럴 이상의 석유와 연료를 수출한다. 특히 이란혁명수비대(IRGC)의 고위 지휘관인 이스마일 코사리 의원이 지난 14일 “중요한 해상 무역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는 조치를 검토 중”이라고 밝힌 것이 유가시장을 흔들었다. 전 세계 원유 소비량의 5분의1인 하루 1800만~1900만 배럴 규모의 석유연료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운송되고 있어서다.
이란은 이스라엘이 공격을 지속하는 한 휴전협상은 없다고 못박았다. 이스라엘도 이란의 핵 프로그램 해체 등 일련의 목표 달성까지 공격을 지속할 것이란 입장이어서 양측의 교전이 더욱 확대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국제금융센터는 최근 ‘이스라엘의 대이란 공습 관련 해외시각 및 평가’에서 “국제유가는 중동발 공급 불확실성 고조로 100달러 이상 초고유가 재연 가능성 우려가 급부상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JP모건은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거나 무력충돌이 중동 전역으로 확대되면 국제유가가 최대 배럴당 13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금값·국제금융시장 ‘출렁’ = 중동 무력충돌이 확대되자 금값도 급등했다.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화되는 분위기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금 선물 근월물 가격은 전날 온스당 3452.12달러로 사상 최고치였던 온스당 3500달러 돌파를 다시 눈앞에 뒀다.
미국 증시도 출렁였다. 이날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769.83p(1.79%) 하락한 4만2197.79에 거래를 마쳤다. S&P500 지수는 68.29p(1.13%) 떨어진 5976.97에 마감했다.
중동발 지정학적 위기가 수면 위로 다시 떠오르면서 물가당국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중동발 유가 불안은 운송비 등 부담을 늘려 향후 물가를 끌어 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어서다.
특히 우리나라는 중동 원유의존도가 70%를 웃돌아 수급 차질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일각에서 중동발 불안이 장기화하면 정부가 일부 환원했던 유류세 인하 혜택을 다시 확대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첫 시험대 오른 물가당국 = 차관 체제로 출범한 이재명정부 경제팀은 물가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다. 하지만 정권 초부터 대외 악재가 터지면서 첫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가공식품과 외식 등 먹거리 가격의 오름세가 큰 상황에서 국제유가 상승으로 공급물가 상승 압력까지 커지면 소비자물가 전반에 악영향을 준다. 특히 국제유가는 우리나라 소비자물가의 핵심변수 중 하나다. 유가 급등으로 국내 기름값이 오르면 석유류 가격뿐만 아니라 물가 전반이 상승 압력을 받게 된다.
최근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 안팎으로 비교적 안정된 흐름을 지속하고 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1.9% 올라 작년 12월(1.9%) 이후 5개월 만에 1%대 상승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런 물가 안정세에는 석유류와 농산물 등 공급물가 상승 압력이 축소된 영향이 컸다. 지난달 석유류와 농산물 물가는 각각 2.3%, 4.7% 하락했다. 석유류와 농산물은 전체 소비자물가를 각각 0.09%p, 0.2%p 끌어내렸다. 반면 가공식품(4.1%)과 외식(3.2%) 등 먹거리 물가는 여전히 높은 상승률을 지속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가 상승으로 공급물가 상승 압력이 커자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 위로 다시 고개를 들 수 있다.
새 정부 출범 직후 물가 상승률이 높아지는 것은 경제팀에겐 큰 악재다. 이재명 대통령은 경제부총리 지명에 앞서 기획재정부 1·2차관을 먼저 임명하고 생활 물가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주문했다. 이형일 기재부 장관 직무대행 1차관은 지난 12일 취임 직후 물가관계차관회의를 열고 “물가는 민생의 최우선 과제로 범부처 역량을 총동원해 체감 물가 안정에 총력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