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결심, 중동 질서 재편 신호

2025-06-18 13:00:05 게재

‘무조건 항복’ 요구하며 무력 개입 논의…정권교체 가능성 거론해 국제정세 불안

17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이란 간 공중전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발생한 화재 현장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이란에 ‘무조건 항복’을 촉구하며 이스라엘과의 군사 공조 가능성을 시사한 발언은 중동 정세의 중대한 전환점을 예고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직접 주재한 직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전화 통화를 가졌다. 이후 사회관계망서비스 ‘트루스소셜(Truth Social)’에 “이란 최고지도자의 은신처를 정확히 알고 있다. 지금은 제거하지 않겠다”고 적어, 정권 핵심부를 겨냥한 군사 작전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이번 발언의 배경에는 미국 내 이란 핵협상에 대한 실망과, 네타냐후 총리의 오랜 군사 개입 요청이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초기에는 외교로 이란 핵 개발을 억제하려 했으나, 반복된 협상 거부와 지연 끝에 군사 옵션 쪽으로 입장을 선회했다고 전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10년 넘게 이란 핵시설에 대한 미국의 군사 동참을 요구해 왔으며, 현재는 그 어느 때보다 이를 실현할 기회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이미 중동 지역에 F-16, F-22, F-35 등 전투기를 대규모로 증파하고 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항공모함 니미츠호의 아시아 입항 일정이 중단되고 중동으로 이동 중이며, 30대가 넘는 공중급유기도 현지에 배치되고 있다. 국방부는 이를 방어 목적이라 설명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상공에 대한 전면적 통제를 확보했다”고 밝혀, 실질적 제공권 장악과 공세 전환을 강조했다.

미국 매체 악시오스(Axios)는 트럼프 대통령이 NSC 회의 직후 네타냐후 총리에게 회의 결과를 공유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회의에서는 이란 핵시설, 특히 포르도우(Fordow) 지하 우라늄 농축시설에 대한 공습 시나리오가 핵심으로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군사개입 가능성이 커지며 국제사회의 우려와 반발도 거세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The Guardian)은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이 “군사력으로 정권을 바꾸려는 시도는 중동의 혼란만 심화시킬 것”이라며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독일 총리 프리드리히 메르츠도 이스라엘 단독으로는 핵시설 파괴가 어렵다는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외교적 해법을 강조했다.

군사 전략 측면에서도 난제가 많다. 이란 핵시설은 대부분 산악지대 깊숙한 지하에 위치하고 있어, GBU-57 벙커버스터와 B-2 스텔스 폭격기 같은 전략무기의 동원이 불가피하다. CNN은 이 사안에 정통한 미 정부 당국자를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핵시설 타격을 위한 미군 자산 사용에 점점 긍정적으로 기울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긴장은 국제 경제에도 타격을 주고 있다. 17일 뉴욕증시는 중동 지정학적 위험 상승으로 하락 마감했다.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0.7%, 나스닥 종합지수는 0.9% 하락했고, 국제유가는 하루 만에 4.4% 급등했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경우 전 세계 원유 수송량의 약 20%가 차질을 빚게 돼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이 가중될 수 있다.

미 정보당국은 이란의 핵무기 개발까지 수년이 걸릴 것이라는 평가를 내놓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핵무기 직전 단계에 있다”며 군사적 개입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그는 CBS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며칠 안에 모든 것이 결정될 것”이라며, 이스라엘의 단독 작전 개시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군사 압박이 단기 전술을 넘어서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재구상에 따른 전략적 행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란 핵 제거, 하마스와의 분쟁 종식,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국교 정상화 등 ‘신중동 구상’이 그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란이 물러서지 않고 강경 저항을 지속한다면 트럼프 행정부는 출범 초부터 복잡한 국제 안보 위기에 빠지게 될 가능성도 높다.

결국 트럼프의 이번 결단은 단순한 군사 행동 이상이다. 미국의 대외정책, 국제 질서, 그리고 중동의 권력구조 자체를 흔들 수 있는 신호탄이라는 점에서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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