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배럴당 150달러 현실화되나

2025-06-23 13:00:02 게재

골드만삭스 “호르무즈 봉쇄땐 글로벌 공급망 타격" … 약세 보이던 달러 반등

B-2 폭격기가 21일(현지시간) 이란 핵 시설에 대한 대규모 공습을 마치고 22일 미주리주 화이트먼 공군 기지에 도착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스라엘과 이란 간 무력 충돌이 미국의 이란 핵시설 공습으로 확전되며, 중동 정세가 극단적 긴장으로 치닫고 있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을 시사했고, 이에 따라 원유 공급 차질 우려가 급격히 확산되면서 금융시장 전반이 유가 급등 가능성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23일 오전 10시 기준 서부텍사스산원유(WTI) 8월물 선물 가격은 배럴당 74.83달러로 전일 대비 2.46% 급등했다. 영국 브렌트유도 배럴당 79달러로 2.30% 올랐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 핵시설을 폭격한 뒤 시장은 ‘전면전’ 시나리오를 가정하기 시작했고, 에너지 수급 불안이 금융시장 전반의 리스크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골드만삭스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두 가지 주요 유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첫 번째는 이란 단독 공급 차질 상황이다. 이 경우 브렌트유는 배럴당 90달러를 상회할 것으로 예상되며, 시장은 OPEC+의 생산 확대 여부와 이란 공급 회복 속도에 따라 가격 수준을 결정하게 된다. 두 번째는 호르무즈 해협이 물리적으로 봉쇄되는 고강도 시나리오다. 전 세계 원유 및 LNG 수송량의 20%가 이 해협을 통과하는 만큼, 글로벌 공급망 전체에 타격이 가해질 경우 유가는 120달러에서 최대 150달러까지 급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유가 급등은 외환시장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현재까지는 달러가 다시 안전자산으로 주목받으며 강세를 보이고 있다. 골드만은 유가가 100달러를 넘어서면 유로화, 엔화, 원화, 남아공 랜드화 등 주요 통화가 달러 대비 급격히 약세를 보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최근까지 달러 매도, 신흥국 통화 매수 포지션이 쌓여 있었던 만큼, 해당 포지션이 빠르게 청산되면서 외환시장의 변동성은 더욱 확대될 수 있다.

주식시장에서는 투자자들이 위험 회피에 나서며 기술주 중심의 조정 가능성이 제기된다. 골드만은 “유가가 100달러를 돌파할 경우 S&P500은 200~300포인트 하락할 수 있다”며 “최근 과열된 AI 관련 종목에 타격이 집중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23일 S&P500과 나스닥 선물은 각각 1% 하락했고, 비트코인도 4% 넘게 하락하며 10만달러 밑으로 거래됐다. 금 가격은 온스당 3400달러를 돌파하며 안전자산 선호 흐름이 이어졌다.

채권시장에서는 유가 급등에도 불구하고 금리 인하 전망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연준은 최근 고용 둔화 조짐과 낮은 물가 지표에 주목하고 있으며, 올해 하반기 두 차례 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했다. 유가 상승이 단기적으로 물가를 자극하더라도, 연준은 일회성 충격에는 반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특히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는 최근 “노동시장 둔화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발언한 바 있으며, 이는 오히려 금리 인하를 앞당길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다만 관세 인상에 따른 인플레이션 영향은 아직 지표에 본격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연준은 물가 흐름을 계속 지켜보고 있다. 골드만은 “12월 FOMC에 대한 시장 기대는 경기 둔화와 인플레이션 리스크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이어가고 있다”며 “중동 긴장이 지속될 경우 단기물과 장기물 간 수익률 곡선이 불안정해지며 채권시장도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지정학적 리스크는 여전히 시장의 가장 큰 불확실성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란 외무장관은 미국의 공습에 대해 “매우 큰 레드라인을 넘었다”며 “모든 수단을 동원해 주권을 방어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란이 향후 걸프 해역의 미군 기지나 선박을 대상으로 보복에 나설 경우 유가는 물론 안보 불안에 따른 글로벌 자산시장의 충격도 확대될 수 있다.

최근 환율 반등은 달러 자산에 투자해온 국내 투자자들에게 단기적으로는 긍정적인 신호일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인 달러 약세 흐름과 유가 급등이 겹칠 경우 환차손뿐 아니라 원자재 수입 물가 상승 등의 리스크가 확대될 수 있어, 투자자들은 환 헤지와 인플레이션 방어 전략 등 포괄적인 리스크 관리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할 시점이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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