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수입원유 68% 호르무즈 통과
봉쇄 현실화시 직격탄 … 글로벌 원유운송 마비시킬 수 있는 ‘요충지’
세계 주요 원유 수송로이자 ‘병목 지점’인 호르무즈 해협이 사상 처음 봉쇄될 위기에 처했다. 우리나라는 해외에서 수입하는 원유 중 약 70%가 호르무즈 해협을 경유해 들여오고 있어 이 해협이 봉쇄될 경우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우려된다.
23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지난해 원유 수입량 281만3000톤(1일 기준) 중 중동산이 201만1000톤으로 71.5%를 차지했다. 이중 호르무즈해협을 경유해 들여온 원유는 191만7000톤으로 총 수입량의 68.2%에 이른다.
호르무즈해협 봉쇄 위기는 미국이 이란의 핵시설을 공격해 이스라엘-이란 전쟁에 직접 개입하면서 비롯됐다. 이란 의회가 보복조치 일환으로 호르무즈 해협 봉쇄안을 의결한 것이다. 최종 결정은 이란의 최고국가안보회의(SNSC)에서 할 전망이다.
석유·가스업계에 따르면 호르무즈해협은 북측의 이란을 기준으로 쿠웨이트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오만(시계 반대방향)이 둘러싸고 있다. 호르무즈해협은 길이 약 160㎞에, 좁은 곳은 폭이 약 50㎞ 정도에 그치지만 페르시아만을 대양으로 이어주는 유일한 해로로, 지정학적 중요성이 막대하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 보고서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석유 운송량은 2024년 기준 하루 평균 2000만배럴로, 전 세계 석유소비량의 약 20%를 차지한다. 액화천연가스(LNG) 세계 운송물량도 약 20%가 이곳을 거친다.
이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는 대부분 한국을 포함해 중국 일본 인도 등 아시아시장을 향한다.
호르무즈 해협은 수심이 비교적 얕아 대형 유조선이 지나갈 수 있는 해로가 한정돼 있다. 이런 대형 선박은 대부분 이란 영해를 지나야 하기 때문에 이란이 사실상 해협을 통제하고 있다.
다만 지금까지 이 곳이 봉쇄된 적은 없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때 호르무즈 해협에서 이란의 유조선 공격과 기뢰 설치 등으로 이곳의 통항이 위협받았던 적이 있지만 전면 봉쇄로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2010년대 초반 미국 등 서방의 대이란 제재 때도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현실화하진 않았다.
하지만 최근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 미국의 공습 참전은 과거와 양상을 달리한다는 점에서 해협 봉쇄 위험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경제 전문가들은 호르무즈해협 봉쇄 시 국제유가가 급등하게 돼 세계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해협 차단 가능성에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국제유가는 12일 이스라엘의 이란 핵시설 공격 이후 중동 지역 지정학적 위험을 반영해 이미 약 10% 넘게 급등했는데, 유조선 항로 차단이 현실이 될 경우 유가가 더욱 가파르게 오를 수 있다는 게 월가 전문가들의 보편적인 전망이다.
이와 관련, 봉쇄가 이뤄지더라도 지속기간이 장기화될 가능성은 적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란의 경제가 호르무즈해협을 통한 석유수출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란 입장에서도 수출통로가 막히면 경제가 버틸 수 없을 것이란 평가다.
한편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이 있기 전날인 12일 브렌트유 가격은 배럴당 69.36달러였으나 23일 10.1% 오른 79.49달러에 달했다.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