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지는 홍콩ELS 제재…연말 과태료 제척기간 도래
조단위 과징금 부과기준 못 정해, 제재 1년 넘게 공전
과태료 규모도 수천억원 이상, 시간 촉박해진 금융당국
판매사에 대한 과태료 조치만 분리해 제재 착수 가능성도
홍콩 H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상품의 대규모 손실 사태가 발생한 지 1년 이상 지났지만 금융당국이 판매사인 은행·증권사에 대한 제재 절차에 착수하지 않으면서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는 법적 기한이 촉박해졌다. 올해 연말 과태료 제척기간이 도래하는 만큼, 제재 절차가 늦어질수록 불완전판매 행위에 대한 과태료 부과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2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3월 홍콩 H지수 ELS 상품을 판매한 은행 5곳(국민, 신한, 하나, 농협, SC), 증권사 6곳(한국투자, 미래에셋, 삼성, KB, NH, 신한)에 대한 검사결과를 발표한 이후 1년 4개월이 지났지만 제재 절차를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홍콩ELS 상품은 2020년 하반기부터 팔리기 시작해 2023년말 기준 판매잔액은 18조8000억원, 계좌수는 39만6000개에 달했다. 지난해초 홍콩ELS 상품의 대규모 손실이 가시화되면서 금감원은 주요 판매사들을 상대로 현장검사에 착수, 다양한 불완전판매 사례 등 위법·부당사항을 확인했다.
불완전판매에 따른 법적 제재는 기관제재, 임직원 제재, 과징금 및 과태료 부과 등이 있다. 그 중에서 과태료 부과의 제척기간은 5년이다. 불완전판매가 발생한 날로부터 5년이 경과한 경우에는 과태료를 부과할 수 없다는 말이다.
홍콩ELS 상품은 코로나19 이후 반등 기대감 속에서 2020년 하반기부터 수요가 증가했다. 금융당국은 과태료 제척기간 도래 시점을 올해 연말로 보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과태료 제척기간을 인지하고 있으며 제재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제재 절차를 시작하지 못하는 이유는 금융상품 불완전판매에 따른 금융소비자법(금소법)상 ‘징벌적 과징금 부과’ 문제 때문이다. 금소법 시행 이후 은행과 증권사가 판매한 홍콩H 지수 ELS 상품 규모는 약 17조1000억원으로 추산된다. 금소법 위반에 따른 과징금 법정부과한도는 불완전판매액의 50%다. 불완전판매 비율이 판매액의 30%라고 가정했을 때 법정부과한도는 약 2조5000억원이 넘는다.
금소법 57조는 금융회사가 불완전판매 등 위반행위와 관련된 계약으로 얻은 수입 또는 이에 준하는 금액의 100분의 50 이내에서 과징금 부과가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계약으로 얻은 수입을 어떻게 볼 것인지 여부다. 홍콩 ELS 판매금액(매출)을 계약으로 얻은 수입으로 보면 과징금 부과액은 2조원 이상이지만, 판매 수수료(순익)를 수입으로 판단하면 수백억원 수준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TF를 구성해 관련 논의를 진행했지만 아직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금소법 과징금 부과 기준이 단순히 이번 ELS 상품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출, 보험, 펀드 등 성격이 다른 금융상품에 따라 과징금 부과 기준이 달라질 수 있어서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는 데 골머리를 앓고 있다. 금감원이 과징금 부과와 관련한 금융업권별 상황과 의견을 취합해서 금융위에 전달했지만 여전히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금감원은 과태료 제척기간이 도래하고 있어 하루빨리 제재 절차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과징금 부과에 대해 결론이 나지 않을 경우 과태료 부분만 별도로 제재 절차를 진행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라임 펀드를 불완전판매한 우리은행에 대해서도 과태료 제척기간이 도래함에 따라 과태료 부분만 분리해서 먼저 제재 조치를 한 적이 있다.
펀드 판매금액을 기준으로 부과할 경우 과징금 규모가 조단위에 이를 수 있다는 것 뿐만 아니라 과태료 부과 규모 역시 최소 수천억원에서 많게는 조단위에 달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판매 계좌수 39만6000개 중 불완전판매 비율이 30%라고 가정할 때 11만8800개이고 불완전판매 건당 과태료를 1000만원씩 부과하면 1조원이 넘는다. 물론 여러 요인들을 고려해 감경될 수 있지만 최소 수천억원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과태료 부과의 상한선이 있지만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건에 대해서는 예외를 두고 있는 만큼 천문학적인 액수의 과태료 부과가 가능한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과징금과 과태료가 합쳐질 경우 판매사가 떠안을 부담이 커서 금융당국이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 과징금의 경우 해석의 여지가 있는 만큼 수수료 수입을 기준으로 하면 대폭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 경우 ‘징벌적 성격’의 금소법 과징금 부과 취지가 훼손될 수 있고, 결국 국회의 입법 취지에 어긋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금융위의 결정이 늦어질수록 과태료 부과 시한은 촉박해진다. 금감원이 제재심의위원회에서 과태료 부과를 결정해도 이후 금융위원회 정례회의를 거쳐야 과태료 부과가 확정되는 만큼 최소 2~3개월이 소요된다. 늦어도 8~9월에는 제재 절차에 착수해야 한다.
한편 지난달 25일 홍콩 ELS 피해자들은 하나은행, 국민은행, 신한은행, 농협은행 등 시중은행 4곳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사기 등 불법행위에 의한 계약 무효 및 부당이득 반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