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벤처, 사모펀드 ‘롤업’ 전략 채택

2025-07-03 13:00:04 게재

소기업 모아 대기업 만든 뒤 시장장악

인공지능 등 첨단기술로 효율성 제고

굴지의 벤처투자사들이 사모펀드의 ‘롤업(roll-up)’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기술 스타트업들에 돈을 투자해 경쟁기업들을 합병한 뒤 해당 부문의 지배적인 기업으로 키우는 전략이다.

2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인공지능 스타트업 ‘오픈AI’와 온라인결제 스타트업 ‘스트라이프’를 키워낸 ‘스라이브 캐피털(Thrive Capital)’은 롤업 전략을 채택한 대표적 기술벤처투자사다. 스라이브는 최근 자산관리 스타트업 ‘새비 웰스(Savvy Wealth)’의 7200만달러 신규 펀딩라운드에 참여했다. 새비 웰스 가치를 약 2억2500만달러로 평가했다. 새비 웰스는 조달한 자금으로 소규모 자문기업들을 인수하고 개인 어드바이저들을 고용할 방침이다. 동시에 기업 경영 전반에 AI를 도입한다.

실리콘밸리 최대 벤처투자사 중 하나인 ‘제너럴 캐털리스트’도 롤업 전략을 위해 7억5000만달러를 배정했다. 투자 부문은 콜센터에서부터 법률서비스업, 부동산임대업 등이다. 코슬라 벤처스와 베세머 벤처 파트너스, 8VC 등도 롤업전략을 검토하고 있다.

이 전략은 오래 전부터 사모펀드업계에서 애용했다. 헬스케어와 폐기물관리, 부동산관리 등 지배적 사업자가 없는 업종에서 소규모 기업들을 모아 운영비를 함께 쓰면서 거대기업을 만들어 시장을 장악하는 전략이다.

이는 전통적으로 신생업종 기술 스타트업들을 빠르게 키우는 데 집중했던 벤처투자사들에게는 새로운 방향이다. FT는 “기업공개(IPO)와 인수합병이 둔화된 현재, 롤업 전략을 통해 유동성을 창출할 기회를 엿보는 차원”이라고 분석했다.

다른 점도 있다. 사모펀드 기업들은 일반적으로 빚을 대거 동원해 비용을 절감하는 데 주안점을 두면서 롤업 전략을 실행한다. 반면 벤처투자자들은 해당 기업들에 AI 등 최신 기술을 주입하면서 효율성과 수익성을 제고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새비 웰스는 AI를 활용해 백오피스 업무를 처리한다. 자산관리 거래 1건당 평균 6건의 복잡한 양식서를 작성해야 한다. AI는 백오피스 업무에서 데이터를 뽑아 학습하면서 이를 더 정확하고 빠르게 처리한다.

스라이브 캐피털의 파트너 카림 자키는 “AI로 새비 웰스의 복잡다기한 업무를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과거엔 매우 개인화된 서비스를 기술적으로 처리하는 데 고전했다”고 말했다. 새비 창업자이자 CEO인 리틱 말호트라는 “금융자문이나 부동산처럼 지배적 사업자 없이 고만고만한 소기업들이 모여 있는 업종에선 롤업 전략이 적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제너럴 캐털리스트가 지원하는 ‘드웰리’는 영국 부동산임대시장에서 비슷한 방법을 쓰고 있다. 3개 임대업체를 인수한 드웰리는 현재 영국 전역 2000개 이상의 부동산을 관리한다. 드웰리는 AI를 통해 임대차 거래와 물건 관리, 임대료 징수 등의 과정을 자동화할 계획이다.

일각에선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미국의 한 벤처투자사 대표는 “일반기업을 AI기업으로 탈바꿈시키는 전략은 사람으로 치면 뇌를 이식하는 수술과 비슷하다. 사업을 발전시키고 상품을 팔고 기업을 운영하는 방식 등 모든 구조를 다시 세워야 한다”며 “벤처업계의 롤업전략이 성공할 수 없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전략을 쓰는 건 매우 어렵다”고 주장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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