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전후 경제 연착륙 고심…내년부터 국방비 감축 예고

2025-07-08 13:00:03 게재

현재 GDP 6.3%에서 5%대로 낮추는 방안 등 검토 지시

10% 안팎 높은 인플레, 20% 기준금리로 민간부문 고통

나토, 국방비 5% 증액 … 러, 실제 군비지출 삭감 불투명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최근 내년부터 국방비를 줄일 계획이라고 밝혀 주목된다. 우크라이나와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국방비 감축을 공언하는 데는 전쟁이후 경제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말 벨라루스 민스크에서 열린 유라시아경제연합(EAEU) 정상회의 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국방비 지출을 줄일 계획”이라며 “내년부터 향후 3년간 그렇게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그러면서 “현재 국방부와 재무부, 경제개발부 사이에 합의가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전반적으로 이 방향으로 작업하고 있다”고 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개시한 2022년 이후 국방비를 빠르게 늘렸다. 올해는 전년 대비 25% 증가한 13조5000억루블(약 236조원)을 책정해 전체 국가 예산의 1/3 수준에 이른다.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로는 전쟁 전 2%대 수준에서 6.3% 규모이다. 내년도 예산안은 올해 가을 의회에 제출할 계획으로 GDP의 5.5% 수준으로 낮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푸틴 대통령이 막대한 국방비 지출을 줄이겠다고 나온 배경에는 경제를 연착륙시킬 필요가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풀이된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러시아는 전쟁 이후 실질GDP가 큰폭으로 상승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2020년 실질GDP 성장률이 -2.7%로 추락했다 이듬해 5.9%로 회복했지만, 2022년 전쟁 개시와 함께 서방의 경제제재 등으로 -1.4%로 추락했다.

하지만 2023년부터 국방비가 크게 늘어나고 군수산업이 활기를 띄면서 실질GDP도 상승세로 전환해 2023년과 2024년 두해 연속 4.1% 높은 성장세를 보였다. IMF는 올해도 1.5% 성장을 내다봐 비교적 견실한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문제는 높은 인플레이션이다. 러시아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하반기 8%대 수준에서 올해 들어 줄곧 10% 안팎의 높은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4월(10.2%)과 5월(9.9%)도 10% 안팎 상승률을 보였다. 푸틴 대통령도 “(군사비 지출의 확대가) 그 대가를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치르고 있다”고 인정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높은 소비자물가 상승률로 긴축적인 통화정책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지난달 러시아 중앙은행의 기준금리는 2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러시아 경제가 전쟁특수로 일시적인 호황을 누린다고 하지만 높은 물가상승률과 기준금리로 전쟁 이후 급격한 침체를 불러올 수도 있다. 레세트니코프 러시아 경제개발부 장관도 “(높은 기준금리로 인해) 경기 후퇴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결국 푸틴 대통령의 국방비 감축 계획은 물가상승률을 중앙은행 목표치인 4% 안팎으로 끌어 내리고, 금융완화 정책을 통해 민간부문의 투자와 소비를 촉진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푸틴 대통령도 올해 성장률은 지난해보다 크게 낮아질 것임을 인정하면서 “(일련의 경제정책은) 의도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의 이러한 계획이 실제 의도대로 실현될지는 미지수라는 관측도 있다. 당장 전쟁이 이른 시일 안에 끝날지 불투명하다. 양측간 종전협상에 의미있는 진전이 없는 가운데, 미국의 중재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지난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 정상회담에서 나토가 국방비를 GDP의 5%까지 증액하기로 결정한 점도 변수다. 나토가 향후 10년 동안 단계적으로 국방비를 늘려나갈 경우 러시아도 무작정 국방예산을 줄일 수 없다는 전망이다. 여기에 미중간 군비경쟁이 격화하고, 동아시아와 중동지역도 군사적 긴장이 높아질 수 있어 군사비 지출의 증가는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7일 “푸틴 대통령은 미국과 군비확장 경쟁 끝에 붕괴한 소련의 경험을 피하고 싶을 것”이라며 “푸틴은 미국과 군비축소 협상을 통해 관계개선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한편 푸틴 대통령은 최근 러시아가 참여하는 ‘석유수출국기구 플러스’(OPEC+)가 전세계 원유와 석유제품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증산을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유럽연합(EU)이 러시아산 원유 거래가격 상한을 현재 배럴당 60달러에서 45달러로 낮추려고 하는 것에 대해 “제재가 더 강해질 수록 제재를 도입한 쪽에 악영향이 간다”고 주장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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