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의약품에 200% 관세” 트럼프 경고에도 월가·제약사는 침착
1년 넘는 유예기간에 미국 생산 확대 계획
WSJ “제약업계 ‘관세 충격 제한적’ 판단”
미국 트럼프정부가 수입 의약품에 대해 200% 관세를 꺼내들었지만, 미국 제약업계와 월가는 침착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13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트럼프정부가 8일 각료회의에서 수입산 의약품에 대해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밝힌 이후NYSE 아카 제약주지수는 약 1%가량 상승했다. 반면 지난주 S&P500지수는 보합세였다.
WSJ는 “이같은 상황은 이례적”이라면서도 “월가는 200%라는 관세 규모보다 타이밍을 더 중요하게 보고 있다”고 전했다. 즉, 투자자들이 트럼프정부가 예고한 유예기간에 더 관심을 쏟았다는 의미다. 트럼프 대통령은 “약 1년 또는 1년반 유예기간을 둘 것”이라며 “이후에는 관세를 매기겠다”고 밝혔다.
유예기간 1년반은 상당히 긴 기간으로, 실제 관세부과까지는 더 오래 걸릴 수 있다. 투자은행 제퍼리스의 애널리스트 아카시 테와리는 투자자노트에서 “유예기간이 올해부터 시작해 1년반 동안 지속된다면, 제약사들은 2027년까지 관세 없이 의약품을 수입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유예기간 동안 수요를 충족할 재고픔을 쌓아둔다면 제약사들은 최소한 2028년까지 시간을 더 벌 수도 있다. 이는 미국에 새로운 제약시설을 구축할 충분한 기간이다. 일반적으로 4년이 걸린다.
WSJ는 “이같은 상황이 트럼프정부의 의도와 배치되는 건 아니다”라며 “결국 관세는 기업들에게 보다 많은 제품을 미국에서 생산하라고 강제하는 수단이다. 제약부문의 경우 그같은 의도가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현재 미국 제약업계는 2가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우선 기업들은 충격 완충을 위해 맹렬한 기세로 의약품 재고를 쌓고 있다. WSJ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으로 올해 아일랜드에서 수입된 비만·당뇨병 환자를 위한 호르몬 치료제는 360억달러에 달했다. 지난 한해 수입액 대비 2배 이상 늘었다.
둘째 제약업계는 미국 생산을 위해 거액의 투자를 선언했다. 대표적으로 일라이릴리는 미국 생산시설 확대에 27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제약업계가 아일랜드처럼 저세율 국가들로 생산시설을 외주하는 이유는 미국에서 의약품을 생산하고 미국에 지적재산권을 등록하게 되면 세금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통과된 트럼프정부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감세안)은 세금 부담을 상당부분 완화하는 혜택을 제공한다. 기업들의 연구개발(R&D)과 장비구매 비용을 즉각 공제하고 이자비용 공제한도도 크게 높였다. 이 덕분에 미국에서 신규공장을 구축하는 부담이 크게 줄어들었다.
WSJ는 “준비할 시간이 넉넉하고 세금 관련 친기업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에 제약기업들은 관세 충격을 최소화할 전망”이라고 전했다. 머크의 경우를 보면 면역항암제 ‘키트루다’의 최신버전을 미국에서 생산할 계획이다. 제퍼리스 추산에 따르면 수입의약품 재고를 쌓아두고 점차 생산시설을 미국으로 옮겨 일부 비용을 줄일 경우, 머크가 2027~2028년 관세로 입을 충격은 전체 매출의 1~2%에 그칠 전망이다.
관세충격이 최소화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기업들도 속속 인수합병 거래에 나서고 있다. 머크는 최근 약 100억달러를 들여 영국 ‘베로나파마’를 인수한다고 밝혔다. 그에 앞서 일라이릴리는 ‘버브테라퓨틱스’를 13억달러에 사들인다고 선언했다.
WSJ는 “트럼프 2기정부가 종료될 시점엔 미국 제약부문 공급망이 현재와 매우 달라질 수 있다. 미국에서 혁신적인 의약품 생산 비중이 훨씬 커질 것”이라며 “백악관과 제약업계 모두에게 보기 드문 윈윈 사례”라고 전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